2
부산메디클럽

류제성의 페미니즘을 읽다<4>경찰 폭력, 굶주림, 빈곤, 젠트리피케이션은 왜 페미니즘 이슈가 아니란 말인가

  • 류제성
  •  |   입력 : 2021-06-13 07:14:40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의 표지


3회 방송은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 모두의 페미니즘에서 누락된 목소리>를 번역한 이민경 작가님과 함께했습니다. 이 책과 유사성이 많은 <시스터 아웃사이더>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했습니다. 페미니즘을 남성보다 여성을 우대하고 혜택을 줌으로써 남성을 역차별하는 사상이라거나, 남성의 몫을 빼앗아 오로지 여성의 권리만을 향상시키려는 주장 정도로 폄하하고 오해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총기, 경찰 폭력,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교육, 의료, 빈곤, 굶주림,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성, 성적 지향, 인종, 국적, 나이, 종교, 민족, 계급 등의 차이를 왜곡해 발생한 차별과 억압을 극복해 평등하고 평화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철학이자 실천임을 이 두 책을 읽으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류제성 부산시 감사위원장과 이민경 작가가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이민경 작가님은 페미니스트 작가, 활동가, 연구자로서 ‘여성이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글을 쓰고 옮기고 있습니다.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봄알람(Baume a l’ame, 불어로 ‘마음의 연고’, ‘영혼의 안식’이라는 뜻)’ 출판사를 설립해 ‘현실에 즉각적으로 개입해 여성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시도를 하자’는 지향을 지니고 ‘여성과 연대하는 출판사’로서 페미니즘 책만을 내고 있습니다. 봄알람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내기 시작해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쓴 <김지은입니다>, <페미니즘을 퀴어링!> 등 다수의 페미니즘 책을 출판했습니다.

뒷골목에서 배운 후드 페니미즘 hood feminism

책의 원제는 후드 페니미즘 hood feminism입니다. 후드 hood는 흔히 뒷골목에 대한 은유로 쓰이는 단어로 이 책의 저자 미키 캔들이 자라난 사우스사이드와 드렉사우드를 의미합니다. 캔들은 흑인이 밀집되어 있고 빈곤층 비율이 높은 이 지역에서 형성한 자신의 관점을 미국 중산층 백인 중심의 페미니즘과 대비하며 서술하고 있습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표지.



한편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쓴 오드리 로드는 서인도 제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흑인, 레즈비언, 여성, 페미니스트, 시인, 엄마, 교사, 암 투병 생존자, 활동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모두 존중받는 온전한 자아를 찾고자 분투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쓴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로드의 사상적 핵심과 삶의 궤적을 담고 있고, 1970, 80년대 미국 페미니즘의 진화한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한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입니다.

교차성, 통합성의 페미니즘

캔들은 책 도입부터 시작해서 전반에 걸쳐 인종, 성적 지향, 계급 같은 차이들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을 무시한 채 중산층 백인 여성의 좁은 관심사만을 페미니즘 다루는 백인 주류 페미니즘의 협소성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여성이 아닌 백인을 보호하는 것, 권력을 오직 백인 여성에게만 이양하는 것이 주된 목표이면서 아니라고 거짓말하는 백인 주류 페미니즘은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 백인 여성의 이득에 복무하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백인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지도 못하고 부유한 백인 남성이 아닌 모두에게 불이익을 안겨줄 뿐이라고 합니다.

피부색이 검다는 것은 단지 아름다운 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두운 피부색을 가졌다는 것은 직업적 전망이 낮고, 진급하기 어렵고, 결혼율이 낮고, 체포율이 높고, 복역기간이 더 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백인 중산층 페미니스트가 ‘린 인’(필자 주 : lean in,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세릴 샌드버그가 더 적극적으로 기회를 받아들여 높은 자리까지 승진하라고 여성들을 독려하며 쓴 표현)하라고 할 때(이를 캔들은 ‘기업 페미니즘’ corporate feminism 이라고 합니다), 정작 흑인 여성들은 고용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거나 불안정,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일터에서 일상적인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고통당하는 현실은 얘기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백인 주류 페미니즘의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은 너무도 자주 다른 여성들과 공동체를 억압받는 방식에 도전하기 직전에 멈춰”버립니다(235쪽). 그래서 캔들은 백인 여성들이 페미니즘 이슈로 다루지 않는 총기 문제, 성폭력, 경찰 폭력, 빈곤, 식품 불안정성, 양육,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의료접근성 등이 모두 페미니즘 이슈이고 이슈여야 한다며 “모든 여성과 관련한 통합적이고 교차적인 이야기는 진작 나왔어야 했다”(23쪽)고 합니다.

이런 캔들의 비판은 “오늘날 여성운동에서 대개 백인 여성은 여성으로서 자신들이 경험하는 억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인종, 성적 취향, 계급, 나이 같은 차이들은 무시하고 있다. 그들은 자매애라는 말로 아우를 수 있는 동질적 경험이 있다고 믿는 척하는데, 사실 이런 동질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갈한 로드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시스터 아웃사이더, 196쪽). 로드도 차이를 왜곡하는 억압의 위계를 직시하지 못하고 흑인 (레즈비언) 여성을 배제하는 백인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오히려 백인 가부장 지배체제를 공고히 할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로드의 비판이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옮긴이는 로드가 교차성을 선구적으로 이론화하여 현대 페미니즘 이론과 비판 이론이 그간 사용해 온 틀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 불귀의 지점을 형성했다고 비평하고(시스터 아웃사이더 349쪽), 통상 1990년대에 시작된 제3의 페미니즘 물결은 인종, 문화, 국가 등 다양한 집단을 포함해 여성주의의 주제를 확장한 것으로 이야기되는데, 두 책 출간에 약 40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간 전혀 진전이 없었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한편 이민경 작가님은 이 책을 번역하면서 양가감정을 느낀 듯합니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평소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통찰을 중요하게 받아들였지만, 캔들이 미국에서 일어난 지엽적 사건들을 언급하면 백인 여성을 낱낱이 비난하는 방식이나 그들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집단으로 환원하는 서술이 과하다고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 자신이 좋아하는 백인 페미니스트 작가인 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으면서 마치 솔닛과 캔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대결하는 듯한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스터 아웃사이더’와 ‘후드 페미니즘 사이’의 간극과 번역자이자 한국의 페미니스트로서 느낀 캔들에 대한 양가감정에 대해 이민경 작가님께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민경 작가님은 로드가 교차성 이론을 선취해 불귀의 지점을 형성했다는 평가에 동의하고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고, 로드의 이론적 틀이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캔들이 문제의식을 벼릴 수 있었고 여성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흑인 여성의 문제도 충분히 재현되지 않는다는 점, 흑인 여성이 이야기를 가진 존재로 등장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점이 캔들로 하여금 목소리를 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간 흑인 여성의 목소리는 가려져 있어서 이입할 공간이 없었던 반면 백인 여성의 서사는 너무 많아서 우리가 이입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았는데,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함께 읽으면서 흑인 여성의 목소리를 충실히 전달하는 번역자이자 동아시아 한국의 페미니스트로서,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 간의 대립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합쳐지거나 동일시할 수 없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당사자, 주체로서의 흑인 여성

캔들은 “너무나 많은 페미니즘 텍스트들이 나 같은 소녀들에 대해 쓰면서도 나 같은 소녀들에 의해서 쓰이지는 않았다.”(19쪽)며 흑인 여성의 ‘당사자성’과 ‘주체성’을 강조합니다. 백인 여성의 뒤처리를 해주거나 무기를 들어주거나 손을 잡아주러 오지 않았다며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백인 여성에 의한 구원도 거부합니다. 흑인 여성 편에 서겠다며 앨라이(ally 필자 주 : 소수자 지지를 표명하는 다수자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칭하는 용어)를 자처하지만 인종주의, 가부장제라는 근원적인 벽 앞에서 쉽게 돌아서버리는 백인 여성을 비판합니다.

캔들의 흑인 여성으로서의 당사자성과 주체성의 강조는 로드의 유명한 문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주인의 도구로 만들어 놓은 게임 안에서 일시적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라도 진정한 변화는 결코 일으킬 수 없다, 이 사실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은 주인의 집을 여전히 자신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생각하는 여성들뿐이다.”(시스터 아웃사이더 178쪽)

‘존중받을 자격의 정치’를 버려야 한다

캔들이 반복해서 비판하고 강조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존중받을 자격의 정치’라는 것입니다. 이는 백인 주류 사회가 설정해 놓은, 흑인 여성과 같은 주변화된 존재들이 발언권을 얻고 인정받기 위한 기준점 같은 것입니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은 투명인간처럼 취급받거나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다수의 흑인, 유색인, 성소수자 등이 존중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재정적, 감정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말투와 헤어 스타일을 바꿔야 하고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에서 배운 것들을 부정해야 합니다. 주류가 설정한 가치로의 동화와 수용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렇게 다수의 주변화된 이들을 배제하고 희생함으로써 극소수의 특권을 유지하는 부정의한 체제가 유지됩니다.

캔들은 존중받을 자격의 정치에 매달려 백인의 인정을 구하고 후드에서 빠져나온 이들만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곳에 있는 소녀들과 여성들, 특권을 덜 가진 이들의 자율성을 온전히 포용해야 하고, 그들이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할 것이 아니라 기회에 도달하는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는 평등을 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백인 여성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통해 정절을 지닌 유일한 여성으로 거듭났으나, 밧줄은 점점 더 목을 조여왔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술을 마셨는지 아닌지, 몸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따위는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가장 주변화된 여성들을 논의하지 않는다면 어떤 여성이든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다. 대신 존중받을 자격이 목표로 설정된 임의적인 골대가 세워져 모든 여성이 자기 행동을 검열해야 한다고 주지시킨다. 이는 자유가 아니다. 그저 절대로 안락하거나 안전할 수 없는 울타리의 정교한 버전일 뿐이다. 행동의 좁은 기준에 따라 기본적인 인권을 부여하는 체제는 잠재적인 피해자들로 하여금 서로를 물어뜯게 하며, 그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이들에게만 득이 된다.”(98쪽).

유색인 여성의 몸을 둘러싼 대상화 문제와 이를 다루는 데 실패함으로써 인종주의와 여성혐오가 결합한 강간 문화에서 결과적으로 그 자신도 피해자가 되어 버린 주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대목이지만, 존중받을 자격의 정치를 버리지 않는 한 성폭력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맞게 될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분노하라

무엇이 캔들로 하여금 이런 목소리를 내게 했을까요. 저는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바로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흑인 여성이 공적인 분노를 표출할 때에도 백인들은 그들에게 존중과 점잖음을 요구하고 호통치며 맹종과 복종을 요구합니다. 너무 화났다, 무례하다, 과하다고 평가절하합니다. 그러나 캔들은 누구도 착하게 굴어서는 스스로를 억압으로부터 구할 수 없기에 싸워야 한다고 합니다. 분노는 청원을 만들어내고 행진하게 하고 사람들을 투표소에 모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로드도 분노를 표출하는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이야기하면 들을 수 없다고 한 백인 여성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혐오에 맞서는 흑인 여성의 분노를 회피하거나 죄책감으로 덮어 버리는 식으로 도망쳐 버리는 백인 여성을 비판하고(시스터 아웃사이더 224쪽). 정확한 대상에 초점을 맞춘 분노는 진보와 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시스터 아웃사이더 217쪽).

이민경 작가님의 설명에 의하면 미국에는 ‘화난 흑인 여성’ angry black woman 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합니다. 흑인 여성들은 발언만 하면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고, 흑인 여성의 말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 한 말이기 때문에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흑인 여성이 분노에 찬 존재가 되게 한 원인인 식민 지배와 노예제의 역사, 계속되는 흑인 여성에 대한 혐오, 폭력, 차별이라는 맥락을 걷어버리고 화가 난 상태로 말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는 것입니다.

많은 흑인 여성들조차 angry black woman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고 다른 화법으로 말하려 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흑인 여성이 흑인 여성의 말할 기회를 차단한다고 비판하는 내부 분열이 있습니다. 캔들은 존중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 분노를 버리라는 일부의 요구를 비판하고 분노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총기, 경찰 폭력, 주거, 빈곤, 기아, 양육, 의료서비스...모두가 페미니즘 이슈

구체적으로 캔들이 제기하는 페미니즘 이슈를 살펴볼까요. 총기 문제, 경찰 폭력, 흑인 살해, 학교에서의 교사에 의한 폭력과 경찰 의존이 왜 페미니즘 이슈일까요. 간단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늘, 일상적으로 흑인, 특히 흑인 여성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부’ 여성들에게만 페미니즘 이슈가 아닐 뿐입니다.

경찰폭력은 흑인 남성이 피해를 입는 인종문제로만 여겨지고 젊은 흑인 여성,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 흑인 아닌 유색인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은 가려집니다. 주류 페미니즘은 경찰에 의한 과도한 감시와 폭력을 페미니즘 이슈라 말하지 않지만 유색인 여성들에게 경찰 문제는 구조적 억압의 주요한 원인이며 경찰에 의한 성폭력도 심각합니다(333쪽). 백인 여성들은 조용한 거리, 경찰이 자주 돌아다니는 곳을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유색인 여성에게 경찰이 상주하고 출몰하는 공간은 국가의 대리인과 폭력적인 상호작용을 하리라는 전조처럼 느껴집니다(294쪽).

백인 여성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을 때와 달리 주변화된 공동체에서 사라진 여성들은 관심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현재 시카고에는 2001년 이후 살해당한 흑인 여성과 갈색 피부를 가진 여성의 시체가 수없이 쌓여 있다. 그리고 이들 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다.”(213쪽) 경찰이 상주하는 학교에서 유색인 (여)학생들은 비폭력적 비행조차 범죄로 취급당하고 폭력을 당하지만 주류 페미니스트 그룹은 대응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경찰 폭력 피해를 입는 이들, 감옥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따라 가는 이들, 추방되는 이들은 많은 경우 유색인이지만 페미니즘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281쪽).

굶주림, 식품 불안정, 식이장애, 주거 위기, 젠트리피케이션, 이 모든 무거운 짐을 경감하는 것은 핵심적인 페미니즘 이슈임에도 주류 페미니스트 집단에 속한 이들은 식품이 장기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음식이 인종주의나 빈곤, 혹은 둘 다에 대한 또 다른 전쟁일 때에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질 수 없고 단지 몸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와도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몸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용어로 말해지지 않습니다.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장애인, 빈곤층, 성노동자, 노인 그 누구든지 뒤에 남겨놓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접근, 그들의 삶이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모든 조직에서 우선순위로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298쪽).

막대한 부의 격차가 인종에 따라 발생하는 나라에서 가난하고 백인이 아니라는 것은 곧 좋은 양육자가 될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가 됩니다. 양육자가 최선을 다할 때에도 빈곤은 방치처럼 보이고 흑인의 현실을 알지 못하는 백인들은 아이가 혼자 집에 걸어가는 일상적 일조차 방치라 여기고 당국에 신고합니다. 진정 아이의 최선의 이익을 원한다면 저소득 양육자의 빈곤을 경감하는 일이 주된 페미니즘 이슈가 되어야 합니다(338쪽).

이민경 작가님은 빈곤의 문제 외에도 백인들이 흑인들의 양육 문화와 방식을 무시하고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의 양육 방식과 문화를 기준으로 흑인을 비난하지만, 백인들이 숭배하는 양육의 규범이라는 것이 너무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거나 아이들을 과잉보호하거나 신경질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흑인 여성들이 양육하면서 백인처럼 아이에 대해 전전긍긍하지 않으면 무심한 엄마, 나쁜 엄마, 학대하는 엄마, 방치하는 엄마라는 식으로 규정되고 신고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미국이나 호주에서 좋은 시민을 길러낼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원주민들에게 강제 불임 수술을 시키거나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분리시키는 명분으로 작동했습니다. 백인 여성은 좋은 국민인 아이를 낳아야 함에도 낳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신 중지에 대해 비난받고, 흑인 여성은 나쁜 국민이어서 아이를 낳으면 안됨에도 너무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이유로 임신 중지를 강요받았다는 것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임신중지, 에리카 밀러 지음, 이민경 번역>에 나온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임신 중지를 이어서 말하자면, 캔들은 임신 중지나 재생산권에 대해서 상세한 논의를 하지는 않지만, 재생산과의 관련성 여부와 무관하게 재생산 정의는 여성 건강의 모든 단계를 아우르는 것으로 틀 지워져야 하고, 수형자들, 이주민 수용소에 있는 이들에게도 같은 접근을 제공해야 하고 여성, 유아, 어린이들 위한 영양보조와도 직결된다고 강조합니다.

페미니즘과 기후 위기

저는 캔들이 페미니즘 이슈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반드시 기후위기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는 인종과 젠더에 직접적으로 관련됩니다. 흑인과 유색인들은 기후재난 피해가 집중되기 쉬운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많고 실외 작업, 육체노동에 종사할 공산이 큽니다. 대부분 인구밀도가 높고 미세먼지 피해가 큰 동네에서 살기 때문에 고혈압, 당뇨, 암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릴 확률이 높습니다, 일상적으로 경찰 폭력과 위협이 심한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유색인종들은 심신의 방어기제가 무너져 이상성 스트레스 부하 발생합니다. 이런 상태는 당뇨, 뇌졸중, 위궤양, 인지능력저하, 자가면역질환, 조기 노화 및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낮은 고용률, 돌봄노동 수행, 임금없는 가사노동, 장시간 노동 등 여성은 남성에 비해 기후위기의 고통을 불평등하게 경험하고. 기후재난에 의해 이산민이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고통에 더해 다양한 폭력으로부터 피해를 입고, 복구과정의 노동 부담도 대폭 증가하며, 이는 남반부 빈곤국일수록 더 심해집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 관련 정책 과정은 남성 중심적, 관료적, 산업기술중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책 과정 전반에 성별 가치와 관점의 균형을 이루는 젠더정의의 관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조효제 저, 탄소사회의 종말>의 필독을 권유드립니다).

동시대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

표면상 미국과 같은 극도의 인종차별이 없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이 책의 내용이 너무 미국적인 이야기로 치부되지는 않을까요? 우리 사회에 어떤 함의가 있을까요?

이민경 작가님은 우리 사회도 서구 중산층 백인 중심적인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어 흑인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고 아시안들도 흑인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캔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한국에서도 장성한 이민자 자녀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인종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들이 충분히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인 중심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의 강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나 서울·수도권 중심주의를 감안할 때 중심과 주변을 성찰하게 하는 캔들의 이야기가 시사점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캔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폭력, 기아, 빈곤,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의료, 교육, 정치, 노동의 문제가 단지 피부색에 따른 차별의 결과이기만 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페미니즘이 흑인 여성이나 유색인 여성, 트랜스젠더, 난민, 이민자 등 주변화되고 비가시화된, 존중받을 자격을 갖췄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종이나 성적 지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을 모두 같은 여성이라고 뭉뚱그릴 수 없듯이 동시대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한국인’, ‘한민족’이라는 말로 모두를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국에서도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고 성소수자, 난민, 이주민 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배제되는 이들이 바로 ‘모두’에서 누락된 이들이고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을 교차하며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캔들의 관점이 우리에게도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북위드유 페미니즘을 읽다 3회 방송 보기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스쿨존 이제 車 못댑니다…골목 주차대란은 ‘어쩌나’
  2. 2불러도 응답 없는 서구청장…구의회 출석요구 상습 거부
  3. 3정부 ‘집값 고점’ 재차 경고에도…“부산 상승세 이어갈 듯”
  4. 41900명 육박…또 최다 확진
  5. 5근교산&그너머 <1238> 함양 지리산 한신계곡
  6. 6팬심 커밍아웃 부울경 의원들, 윤석열·최재형 띄우기 본격화
  7. 7전기차 쓰고 남은 전기 되팔 수 있다…정관發 기술 혁신
  8. 8황의조, 드디어 터졌다…김학범호 조 1위 8강행
  9. 9폭염에도 꽃밭 사진은 포기 못 하지
  10. 10‘부산 엑소더스’ 경남행 289% 급증
  1. 1팬심 커밍아웃 부울경 의원들, 윤석열·최재형 띄우기 본격화
  2. 2박형준 시장, 야권 대권주자에 연일 ‘부산 세일즈’
  3. 3여당 대선 경선, 부산 표심은 박재호·전재수에 달렸다?
  4. 4재정분권 7 대 3 무산…지방소비세율 인상폭 4.3%P로 후퇴
  5. 5청와대 “남북통신선 복원, 평화 출발점”…야당 “북한 치트키 쓰려는 문 정권 잔꾀”
  6. 6최대 5배 배상 ‘언론중재법’ 여당 강행…야당 “집권 말 언론에 재갈”
  7. 7이낙연 “날치기? 할 말인가” 이재명 “사면 왜 말 바꾸나”
  8. 8박병석 의장 “부산엑스포 국회도 적극 돕겠다”
  9. 9윤석열 부산일정 키워드 #지역현안 #민주화성지 #민생
  10. 10김두관 여당 모두 까기…김태호 공존의 행보
  1. 1정부 ‘집값 고점’ 재차 경고에도…“부산 상승세 이어갈 듯”
  2. 2전기차 쓰고 남은 전기 되팔 수 있다…정관發 기술 혁신
  3. 3‘부산 엑소더스’ 경남행 289% 급증
  4. 4‘SPC삼립 카페스노우’ 신상 디저트 출시
  5. 5부산은행 일자리 으뜸기업 선정
  6. 6SKT, 창원 국가산단에 5G·AI 기반 스마트공장 개소
  7. 7폭염에 시金치…작년보다 가격 76% ↑
  8. 8주가지수- 2021년 7월 28일
  9. 9작년 부산 수출기업 감소율 전국 최고
  10. 10부산시- ‘오시리아 루지’ 벌써 10만 명 탑승…9월 롯데월드 신세계 열린다
  1. 1스쿨존 이제 車 못댑니다…골목 주차대란은 ‘어쩌나’
  2. 2불러도 응답 없는 서구청장…구의회 출석요구 상습 거부
  3. 31900명 육박…또 최다 확진
  4. 4코로나 4차 유행 시국인데 사천시의원 제주 연수 논란
  5. 5참전용사 숭고한 희생…이젠 우리가 ‘위트컴 정신’ 되살릴 차례
  6. 6오늘의 날씨- 2021년 7월 29일
  7. 7위기가정 긴급 지원 <7> 전남편 빚 떠안은 김수혜 씨
  8. 8[단독] ‘집단 식중독’ 부산 연제구 밀면집 폐업 시도
  9. 9[뉴스 분석] 그때는 선물, 지금은 뇌물?…검찰 겨눈 공수처 수사 부담됐나
  10. 10[기자수첩] 토양 오염 별일 아니라는 공무원…파 보고 얘기합시다 /신심범
  1. 1황의조, 드디어 터졌다…김학범호 조 1위 8강행
  2. 2‘괴물’ 황선우, 자유형 100m 아시아 기록 7년 만에 경신
  3. 3중국·일본 탁구의 벽은 높았다…한국 남녀 잇달아 고배
  4. 4부산 女검객 송세라, 화려한 은빛 찌르기로 세계 홀렸다
  5. 5[올림픽 통신] 숨 막혔던 양궁 한일전, 2.4㎝ 명승부에 일본 후끈
  6. 6태권도 세계인의 스포츠 됐지만, 종주국은 첫 노골드
  7. 7‘괴물’ 황선우, 한국 넘어 아시아 수영 역사도 새로 썼다
  8. 8펜싱男 사브르 단체 2연패 위업
  9. 9도쿄 올림픽 한국 메달 현황- 28일 오후 8시30분 기준
  10. 10김경문호 이스라엘과 야구 조별리그 1차전…첫 승전보 기대하세요
최원준의 음식 사람
순천만 대갱이(개소겡)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박희자 시인 첫 시집 ‘부산공동어시장’
리뷰 [전체보기]
옥주현·정선아 7년 만의 만남…‘초록매직’ 부산을 홀리다
살인마도, 그를 쫓는 경찰도 모두 괴물…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스릴러’
새 책 [전체보기]
맑음, 때때로 소나기(비온뒤 지음) 外
청년 도배사 이야기(글·사진 배윤슬)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창조형 인적자본이 필요한 이유
인도사 속 힌두교 제대로 알기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허물 /정애경
섬-고시촌 /이광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랑종’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빛나는 순간’의 고두심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모가디슈’ ‘싱크홀’…여름 대작들 개봉 노심초사
‘돌싱 예능’ 봇물…더 과감해진 방송가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일본 영화의 현실 도피…공동체 문제엔 침묵만
‘기담’, 장르를 통해 역사를 질문하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7월 29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7월 28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7월 29일(음력 6월 20일)
오늘의 운세- 2021년 7월 28일(음력 6월 19일)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우리 인생의 드라마 ‘연애시대’(2006)
트로트 팬덤의 진화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의미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고 강조한 이색(李穡)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명심보감’
  • 2021극지체험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