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 출신… 출판사서 사회 첫발
- 교사 된 뒤에도 문인의 꿈 갈망
- 2015년 ‘유심’ 신인상으로 등단
- ‘눈먼 말의 해변’ 이어 두번째 책
책 한 권을 다 읽는 동안 천천히 감동에 젖을 때가 있는가 하면, 짧은 글에도 벼락을 맞은 듯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이 시의 매력이다. 그런 시를 만나면, 가슴이 뛴다. 기쁘고 고마워서 당장이라도 시인을 만나고 싶어진다.
 |
| 서울에 사는 류미야 시인은 인터뷰를 청하자 고향인 경남 진주로 내려와 주었다. 진주성에서 만난 류 시인. |
류미야 시인의 시집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에서 만난 시 ‘자존’이 그랬다. “난데없는 돌멩이에 물낯이 깨졌으나/ 이내 심연 속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오늘 그 강변으로 가 내 얼굴 씻고 왔다” 한 수의 시조, 짧은 시이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는지 더듬어볼 겨를도 없이 읽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많은 사람들이 근거도 없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들에 마음을 상했다가 겨우 일어섰던 지난 시간들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잊힐만하면 계속 생긴다. 서러움에 밤새 시인을 붙잡고 하소연했는데, 그 마음을 위로해주는 시로 응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필자의 것만이 아닐 터. 보이지 않는 말의 돌팔매질에 마음을 다쳐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일일운세에 ‘구설수를 조심하라’가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큰 원인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무책임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시에 위로를 받을 것 같다. 필자에게 시의 재능이 있었더라면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조의 형식이라 더 좋다. 운율에 맞춰 읽기도 쉽고, 달리 외울 필요도 없이 마음속으로 쏙 들어왔다. 경남 진주에서 류미야 시인을 만났다.
■시를 향해 걷는 삶
 |
|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류미야 / 서울셀렉션 |
진주사람인 류미야 시인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고향인 진주에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며 인터뷰를 청했다. 류 시인은 “나서기 쑥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시에 대한 자리이고 시간이라 생각하니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며 기꺼이 진주까지 내려와 주었다. 점심 때가 조금 지나 진주역에서 만났기에 밥부터 먹기로 했다. 날은 화창하다 못해 더운 기운도 있고 해서 진주냉면을 먹기로 했다. 진주에 올 때부터 진주냉면이 먹고 싶었던지라 맛나게 먹었다. 진주냉면은 집밥이 아니라 진주에 살 때도 자주 접하지 못했다는 시인도 그랬다. 진주성과 촉석루를 보면서 천천히 걸으며 시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낮은 목소리이지만 부드러웠고 분명했다. 진주성의 역사를 품은 성곽너머 푸른 남강이 흘렀다. 시인의 목소리는 남강처럼 잔잔한 물결이었으나, 폭포처럼 힘차고 굳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마음은 오직 ‘시’를 향해 있었다.
류미야 시인은 1969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오빠 셋 아래 태어난 막내딸을 무릎에 앉힌 아버지는 ‘주말의 영화’를 보고, 동서양의 작가와 음악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교실은 도서실과 겸용이었다. 시인은 그 시절을 “거대한 책들의 보물선에 승선한 것 같았다”고 추억했다. 좁은 다락에서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던 어린 류미야의 마음에는 문학이 서서히 움텄다. 중학교 때 전국적 종합예술제로 자리 잡은 개천예술제에서 수상했고, 고등학교 때도 교내외 백일장에서도 매번 상을 받았다. 글을 쓰면서 살고 싶었는데,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집안 분위기에 국어교육과로 진학했다. 우리말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학과, 치열하게 한 곳을 향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문학을 더욱 갈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출판 관련 일을 했다.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았고, 뭘 해도 적당히 못하는 성격에 일에 짓눌려 지낼 즈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시인은 그 시간을 “평화로운 항구에 정착하고픈 ‘약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교직생활을 했다. 그 사이 교육 풍경을 담은 글이 국립국어원 소식지에 게재되고, 중2 국어교과서에도 수록됐다. 대학원을 다니며 문학이 있는 현장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직업’이 아니라 ‘시를 쓰는 류미야’를 선택했다. 2015년 ‘유심’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눈먼 말의 해변’과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를 냈다. 2018년 공간시낭독회문학상, 2019년 올해의시조집상, 2020년 중앙시조신인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피어나는 꽃, 詩
류미야 시인에게 시는 전부이다.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온 생애를 다 바쳐 품고자 하는 것이 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부러웠다. 그는 오직 시를 생각하며 사재를 털어 월간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를 인수했다. 무모하다며 지인들이 걱정했지만, 시만을 생각하는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2018년 첫 호를 발행했다. 시인은 “필자들에게는 고료를, 독자들에게는 대가없이 시를 나누는 뜻을 머리에 두고 지금까지 잘 버텨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이 고맙다. 그 고마움에 답하기 위해 시집을 사는 독자로 남고 싶다. 류미야 시인에게 시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아름다움의 결정체일지도 모른다. 그의 시 ‘꽃과 책’을 읽어보자. “바람이/ 넘겨보는 꽃잎은/ 시간의 책장// 생각이/ 넘겨 가는 책장은/ 시간의 꽃대// 각자는 절로 꽃피어/ 서로 닮아 있지요”
그의 시집에서 시조와 시를 구분해 생각하며 읽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냥 시인의 목소리로 자연히 마음에 스며들어온다. 류미야 시인은 시조로 등단했고, “어린 날부터 시조는 모국어로서의 내 언어의식과 감각 속에 깊숙이 스며든 무엇이었다”고 표현했다. 시조든, 자유시든 어떤 형식으로 쓰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답게 쓸 뿐이고, 쓰고 싶은 것을 쓸 뿐”이라는 류미야 시인의 목소리가 독자의 마음에 닿으면 될 일이다.
우리가 태어난 땅의 말, 모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일일이 표현할 길이 없다. 매일 쓰는 말로 아름다움 기쁨 슬픔을 엮어낸 시가 있어 우리는 오늘도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류미야 시인이 가장 자신답게, 쓰고 싶을 것은 마음껏 쓰기 바란다. 독자들은 읽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류미야의 시 ‘꽃과 책’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피어나 빛나면 될 일이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