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패한 공간 다루는 美와 달리
- 욕망 등 인간 내면 어둠에 집중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는 다음달 16일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누아르 영화를 소개하는 ‘유러피언 누아르 특별전’을 개최한다.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 장르를 유럽의 정서로 재해석한 명작 19편을 선보인다. 프랑스 영화 비평가들이 이름 붙인 ‘필름 누아르’는 폭력적 범죄나 타락한 도시 등을 소재로 어둡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1940년대 미국 영화를 지칭한다. 어두운 조명과 음영 효과, 불안정한 화면 구도 등의 필름 누아르 스타일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필름 누아르는 누벨바그를 이끈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 등 감독에 의해 창조적으로 재탄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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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베케르 감독의 ‘구멍(왼쪽 사진)’과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두 번째 숨결’ 스틸컷. |
할리우드식 필름 누아르가 어두운 밤거리나 도시의 뒷골목같은 음습하고 부패한 공간을 주로 보여줬다면, 유럽 필름 누아르는 인간의 정신적 혼란이나 뒤틀린 욕망 등 내면의 어둠에 집중했다. ▷명예와 도덕 사이의 표면적인 모순을 다룬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밀고자’(1962) ▷과거의 아픔을 가진 가족의 갈등과 사랑을 다룬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희미한 곰별자리’(1965) ▷결혼식장에서 자신의 남편을 잃은 한 신부의 복수극을 그린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검은 옷의 신부’(1968) ▷시골 학교 교사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푸줏간 주인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모호한 심리와 불안을 표현해 긴장감을 유발하는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도살자’(1970) 등이 대표적이다. 거장 감독의 장편 데뷔작도 선보이는데,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어느 사랑의 연대기’(1950)는 모호한 이야기 속에서 부르주아의 우울과 허무를 담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1969)는 질투와 배신, 회의로 가득 찬 세계를 냉담하게 보여준다.
범죄 소재 작품도 다양하다. 자크 베케르의 걸작 ‘구멍’(1960)은 형무소에서 탈옥 계획을 꾸미는 인물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관찰한다. 앙리 베르누이의 대표작 ‘지하실의 멜로디’(1963)는 감옥에서 출소한 두 남자가 카지노 금고를 털려는 이야기를 그린다. 도덕성이 전복된 범죄자와 경찰의 어두운 세계를 잔혹하게 그린 장-피에르 멜빌의 ‘두 번째 숨결’(1966),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통해 다양한 인물의 군상을 드러낸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장편 데뷔작 ‘냉혹한 학살자’(1962) 등은 어두운 현실 속 인간 본성의 모순을 미묘하게 포착했다.
이번 시네마테크 기획전은 지난 3월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허문영 전 프로그램 디렉터의 마지막 기획 작품이다. 후임 프로그래머는 영화의전당 시네도슨트로 활약해온 박인호 영화평론가가 맡았다. 박 프로그래머는 다음 달 열리는 ‘서머스페셜-영화를 통한 바캉스’ 기획전 준비를 시작으로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을 책임지게 된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