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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 동행 <16> 유리 작가 이재경의 ‘유니크’한 유리 세계

유리에 생명 불어넣는 장인 “익스트림 스포츠보다 더 짜릿한 매력”

  •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1-06-22 19:14:4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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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전역 후 유리예술 세계 심취
- 日타마미술대서 석사 학위 취득
- 불어 만드는 ‘블로잉 기법’ 사용
- 몇 없는 전용 설비 갖춘 작업장
- 2년 전 서울서 부산으로 옮겨와

- “재료 예민해 숙련된 감각 필요
- 불가마서 견뎌낼 체력도 있어야
- 25년 일했지만 아직 갈 길 멀어
- 내 작업·전시 꾸준히 이어갈 것”

“부산 금정구 체육공원로 ○○○로 (내비게이션에) 찍고 오시면 됩니다.” 전화기 저쪽에서 유리 작가 이재경(49) 씨가 작업장 위치를 설명했다. 안내대로 길을 나서니, 차는 신천교를 건너 이내 논밭과 화원 사이로 달렸다. 천변에서는 여름철새가 귀한 자태로 너울너울 날아올랐다. 도심을 빠져나오자 푸르른 마을이었다. 이재경 작가의 작업장은 소통이 원활한 길가에 있다. 유리 작가의 공간답게, 이 집에서 빛의 알갱이들이 탱글탱글 익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유리 작가 이재경 씨가 고온의 유리 작품을 불어서(blowing) 다듬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블로잉’ 기법으로 작품 활동

작업장 앞쪽에는 이재경 작가가 만든 유리 작품을 전시해 놓아, 여기 들어서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어머 어머’ 또는 ‘우와 우와’하게 된다. 기능성을 갖춘 찻잔 컵 접시 같은 작품도 있고 실용성을 일단 분리하고 예술적으로 조형하는 데 집중한 오브제(object)도 있다. 어느 쪽에서든 예술 매체로서 유리의 유혹은 강하다. 유혹에 끌려 작품 진열장 뒤로 들어서면, 딴 세상이다. 불과 땀과 열의 공간이며 이 작업장의 심장부다. 엄청난 온도를 내는 가마 2기, 갓 태어난 유리 작품을 천천히 식히는 서냉고 그리고 낯익은 듯 낯선 견고한 도구와 장치가 여럿 있다.

여기서 이재경 작가는 원재료를 녹이고 덧대고 불고(blowing·블로잉) 굴리고 구부리고 늘여가며 끈기 있게 형체를 잡아 유리 작품을 만든다. 유리 공예에는 다양한 기법이 있다고 한다. “블로잉(파이프 같은 도구로 불면서 만드는 기법)은 그중 한 종류죠.” 그는 블로잉 기법으로 작업하니 ‘블로잉 작가’로 줄여 말해도 될 것 같다. “블로잉 장비와 설비를 갖춰놓고 작업하는 곳은 드뭅니다. 제가 서울에 하나뿐이던 (블로잉) 작업공간을 접고 2019년 4월 부산에 와서 이 작업장을 열었는데요, 그 뒤로 아직 서울에 새로운 공간은 안 생긴 것으로 알아요.”

■ ‘동명일기’ 해돋이 같은 붉음

가마에 유리를 넣어 녹이는 모습.
이재경 작가가 작업 시연에 나섰다. 보고 있자니 고교 시절 배운, 의유당이 쓴 ‘동명일기’해돋이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밤(먹는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 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赤色)이 온 바다에 끼치며…황홀히 번득여 두 눈이 어질하며….” 큰 가마에서 ‘씨앗’처럼 따온 작고 붉은 유리 덩이를 그 곁 작은 가마에 넣고 빼고 하면서 불고 다듬는 동안 불덩이 그 자체인 유리는 형체를 잡아갔다. 이 장면이 언뜻 ‘드라마틱’할 것만 같지만, 실은 워낙 여러 번 반복하는 데다 고도의 집중력, 숨 막히는 긴장이 필요해 보는 사람, 하는 사람 모두 인내가 필요했다.

“블로잉에서는 ‘어시스트(assist)’가 정말 중요합니다.” 어시스트는 작업을 돕는 사람이다. “작은 작업은 저 혼자 할 수 있지만, 대체로 적게는 2명 많게는 5명이 필요합니다. 블로잉의 어시스트는 ‘보조’가 아닙니다. 기량을 갖춘 이들이 서로 돕는 개념이죠. 저도 ‘메인’을 하다가 다른 분의 어시스트가 돼 돕고는 하죠.” 이번 시연에서는 동료 이정윤 작가 등 2명이 도왔다.

■ 유리, 극도로 예민한 재료

이재경 작가가 벌건 유리 덩어리를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장면.
이번 취재는 지난 2일과 14일 두 차례 이뤄졌다. 갈 때마다 ‘유리 예술의 매력’을 물었다. 답변 중 한 가지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젊은 날 헬리 스키(헬리콥터로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가 스키 타고 내려옴)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졌다는 그는 “그런 익스트림 스포츠보다 더 ‘익스트림한’ 면이 유리 예술에 있다”고 했다. 많은 사례 가운데 간단한 걸 든다면 이런 것이다.

유리라는 재료가 정말로 예민해 지극히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온도 1200℃에서 떠내 만지던 유리가 500℃ 이하로 내려가면 터집니다.” 그런 일을 ‘감각’으로 감당해야 할 만큼 숙련이 필요하다. “수십 년 경력의 외국 작가와 얘기해봐도 결론은 이구동성 ‘프랙티스(practice·익혀라) 프랙티스 프랙티스죠.” 작업 중 한 번 잘못되면, 작품은 그 길로 끝. 돌이킬 수 없다. 문양 색상 형태 크기 등 요소도 다양하다. 예민한 감각 못지않게 체력도 긴요하다. “마무리한 작품을 천천히 식히는 게 더 중요해(잘못 식히면 터진다)” 벼락치기형 작업도 못 하니 꾸준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토·일요일에 온종일 집에서 쉬어본 적이 없죠.” 전기·가스 모두 필요하다. “전기 비용이요? 큰 공장 돌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웃음).” 게다가 그는 전기 설비나 가마를 직접 설치해왔다.

■ 서울 작업장, 통째로 부산으로

작업장에 진열된 유리 작품.
유리 작품이 갖는 유니크(unique)함에 관한 자긍심이 그에게서 미덥게 묻어나왔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도자를 전공했는데 큰 재미를 못 느끼고 군대에 갔다 왔다. 그즈음 조형예술에서 표현의 재료가 금속·도자에 그치지 않고 유리로 확장되고 있었다. “내가 원하고 생각했던 예술 표현이 유리로도 되겠다는 개념이 서자, 이걸(유리를) 꼭 해야겠다고 판단했죠.”

전공을 찾아 새로 대학에 진학했는데, 그때까지는 환경이 좀 열악했다. 미국 유학을 생각하던 중 뜻밖의 계기로 2000년 일본으로 갔고, 명문 예술대학인 타마미술대학교의 미술연구과(유리 전공) 연구생을 거쳐 독한 경쟁을 뚫고(외국인특별전형 같은 제도가 없었다고 한다) 같은 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학위를 땄다. 2004년 귀국한 뒤로 쌓은 경력도 인상 깊다. 2004년 제주도 유리의 성 기획 일을 했다. 당시 명소로 떠오른 남이섬에 2008년 들어가 문화원장을 지내고 2010년 나왔다. 2011~2015년에는 한국도자재단 유리예술감독으로 일했다. 그 사이 많은 전시에 참여하고 기획(특히 한·일 교류)도 하며 여러 대학에 출강했다. 동아대 미술학부에서 외래교수로 강의한 경험이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온 단초가 됐다고 한다. 최근엔 금정문화회관 리모델링에 참여했고 부산 동구 초량천에 공공예술작품을 세웠다.

■ 꾸준히 땀 흘리는 유리 작가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개척자 풍의 노마드(유목민) 느낌을 받았다. 그가 줄곧 ‘유목’하게 한 힘은 “내 작업”을 하겠다는 의지에서 나왔다. “제가 작업한 지 25년쯤 됐는데, 아직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줄어드는 걸 느낀다”는 말을 그는 여러 번 했다. “오는 7월 1일 동료 이정윤 작가의 춘천 이상원미술관 전시를 도와 유리공방 일을 한다. 꾸준히 작업하고 꾸준히 전시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다만, 한여름에는 작업을 좀 줄일 것 같다”고 시연 직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덧붙였다. 이해한다. www.boomvill.com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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