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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빛나는 순간’의 고두심

33살 차 파격 멜로는 뜨겁고, 일흔의 제주 사랑은 빛난다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1-07-06 19:37:48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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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대 해녀·30대 PD 특별한 러브스토리
- 고향민의 삶 조명 위해 선뜻 출연 결심
- 4·3사건 회고 땐 놀라운 즉흥연기 선봬
- 물질 연기 위해 수영 트라우마도 극복
- 29년 만에 멜로 “지현우 매력 빠져들어”

‘국민 어머니’ 고두심이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휴먼 멜로 영화 ‘빛나는 순간’(개봉 6월 30일)으로 올여름 극장가의 포문을 열었다. 그것도 제주를 대표하는 해녀가 되어 연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관한 영화를 주로 연출해 온 소준문 감독의 신작인 ‘빛나는 순간’은 평생 물질로 생계를 책임진 70세 해녀 진옥과 서울에서 온 30대 다큐멘터리 PD 경훈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표면적으로는 서른세 살의 나이차를 지닌 두 사람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제주 4·3사건이나 바다와 관련한 개인적인 아픔이 배어 있다.

“해녀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돼서 너무 좋고, 그분들의 정신, 혼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 4·3사건의 아픔도 담겨 있어 의미가 크다”는 고두심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일흔의 나이지만 언뜻언뜻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열정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제주 해녀 진옥 역을 맡아 제주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제주 해녀를 대변하고, 33년 나이차를 넘어서는 멜로 연기를 보여준 ‘제주의 딸’ 고두심. 명필름 제공
■‘제주의 딸’고두심

역대 방송사 연기대상 최다 수상자로서 ‘국민배우’ ‘국민 며느리’ ‘국민 어머니’ 등 다양한 수식어로 표현되는 고두심. 그런데 영화 ‘빛나는 순간’과 가장 어울리는 말은 ‘제주의 딸’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할 때까지 제주에서 자란 그는 지금도 자주 제주를 찾는다. 실제 ‘빛나는 순간’ 촬영 때 제주도 지인들이 오메기떡을 비롯해 다양한 제주 음식을 촬영장에 보내주기도 했다. “소 감독님이 ‘제주하면 고두심, 고두심 얼굴이 제주의 풍광’이라고 예쁘게 말해줬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그 안에 묻어 있는 제주의 풍광이 너무 크게 와닿았다. 처음 소 감독님을 만났을 때 장문의 손편지를 주고 갔는데, 그 안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과 내가 왜 이 작품에 출연해야 하는지가 쓰여 있었다.”

제주도, 그것도 해녀 삼촌(제주에서는 이웃 어른을 삼촌이라고 부른다)에 대한 이야기니 ‘내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 고두심은 두 말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친척 중에 해녀 삼촌들이 있었는데, 어머니 손을 잡고 싱싱한 해산물을 얻기 위해서 보리빵을 가지고 바다에 나갔다. 당시에는 해녀 삼촌들이 지금 같은 고무 잠수복이 아니라 무명옷을 입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해녀들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터다.

특히 진옥은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지닌 인물로 표현되는데,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고두심도 그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영화에는 진옥이 제주 4·3사건에 관해서 말하는 인터뷰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원신 원컷으로 무려 6분 정도 이어진다. “소 감독님이 써준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를 마치고도 계속해서 애드리브를 했다. 나도 어떻게 그 긴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소 감독님, 스태프 모두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봤다고 하더라. 나도 컷 소리가 나고 먹먹해하며 ‘어떻게 내가 이것을 해냈지?’ 했다.” 실은 이 첫 번째 테이크가 너무 길어서 원래 대사만으로 한 번 더 촬영을 했는데, 결국 짙은 여운이 남는 첫 번째 테이크를 사용했다는 후문이다. “마치 방언처럼 제주 4·3사건의 아픔에 대해서 말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사건을 몸소 겪은 것처럼 살아왔더라.”

■물에 대한 공포심을 이겨내다

영화 스틸컷.
촬영 전 고두심을 가장 심란하게 한 것은 물질이었다. 진옥은 제주 최고의 해녀이기 때문에 바다 물질 장면은 필수였다. 그런데 중학생 때 바다에서 물을 먹고 죽을 뻔한 기억이 있어서 지금껏 바다 수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제주에서 자랐다면 수영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농사를 짓는 집이라 바다와 상관이 없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바다에서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물질은 안 해봤다. 게다가 중학생 때 바다 수영을 하다가 죽을 뻔해서 트라우마가 있었다. 예전에 영화 ‘인어공주’를 촬영하며 물에 들어갈 때 고두심의 얼굴이었다가 나올 때는 전도연의 얼굴로 나오는 한 커트를 위해서 수영을 다시 배웠는데, 결국 대역이 촬영했었다.” 이 정도로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게 있었던 고두심이었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이겨냈다. “내가 수영을 못하면 대역도 쓸 수 없고 영화가 망하는 것이었다. 7학년(70세)이 됐는데 몸을 사리겠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바다에 들어갔는데 고향 바다라서 그런지 뭔가 안도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해녀 삼촌들이 함께 촬영을 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건져주겠지 하면서 믿는 구석이 너무 컸다. 나중에는 감독님이 오케이 해도 한 번 더 하자고 했다. 바다에서 리듬이 타지니까 부력이 생겨서 더 하고 싶더라. 이제 물에 대한 공포심은 없어졌다. 다음에도 제주도 바다면 들어갈 것 같다. 다른 바다는 겁나고.”

고두심에게 수영이 두려움이었다면, 제주도 사투리는 자신감이었다. 혹시 ‘이녁 소랑햄수다’가 무슨 뜻인지 아는지. 제주도 사투리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으로, 진옥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다. ‘빛나는 순간’에는 이처럼 생경한 말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한국 영화임에도 자막이 등장한다. “가족들과 대화를 할 때는 제주도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전혀 어색하진 않았다. 제주도가 바람이 세서 된 발음이 많고, 말을 줄인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좀 더 웃으라고 된 발음을 더 세게 하기도 했다.”

■서른세 살 나이차의 파격 멜로

영화 스틸컷.
‘빛나는 순간’은 제주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서른세 살 나이차를 지닌 남녀의 파격적인 멜로 영화이기도 하다. 그 점이 혹시 부담되지 않았을까? 열세 살도 아니고 서른세 살이니 말이다. 그런데 고두심의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너무 좋았다. 웬 떡이야 했다.” 그리고 더 사실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특별한 사랑이라고 해서 거기에 포커스를 두기보다는 제주의 모든 것을 담은 영화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젊은 친구와의 로맨스는 사실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젊은 친구 중에 누가 걸릴까 하는 생각은 했다. 요즘 연상도 괜찮다고 하지만 서른세 살의 갭은 힘들어서 젊은 배우가 안 할 것 같더라.” 그런데 지현우가 다큐멘터리 PD 경훈 역으로 낙점이 됐다. “처음 현우를 만났을 때는 비리비리해서 사랑을 논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라고 우습게 봤다. 그런데 리딩을 하고 같이 연기를 하는데 점점 매력에 빠져들게 하더라. 외유내강이어서 남성의 매력을 내면에서 끄집어내더라.”

바다에서 각각 딸과 애인을 잃은 기억이 있는 진옥과 경훈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이해하며 사랑의 감정을 쌓아간다. 고두심의 말을 빌리자면 소위 ‘살이 맞닿는 일(포옹 및 키스)’은 아름다운 동굴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장면에 대한 고두심의 추억은 독특했다. “지난해 5월에 촬영을 했는데 코로나19 시대에 (키스를) 하는 게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현우가 어떻게 생각할까 싶기도 하고. 특히 바다에 빠진 현우를 데리고 나와서 인공호흡을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부는 척만 할 수도 없고.”

‘국민 며느리’ ‘국민 어머니’라는 수식에서 알 수 있듯 일찌감치 며느리, 어머니 역할을 했기 때문에 멜로 연기에 목마르다는 고두심.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멜로 연기는 29년 전 영화 ‘이혼하지 않는 여자’다. “‘빛나는 순간’은 그런 아쉬움을 풀어줬다. 젊었을 때 이런 역할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싶다.” 50년을 연기해 온 고두심의 ‘빛나는’ 멜로 연기는 이제 시작이다.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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