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을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는 판타지 전성 시대를 연다. 매력적인 스토리 라인만 있으면 극장이 아닌 TV에서도 판타지를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 제작진은 판타지 서사의 기본인 타임슬립 스토리를 쏟아낸다. 할리우드도 막대한 제작비가 드는 블록 버스터 대신 ‘미드나잇 인 파리’ ‘어바웃 타임’처럼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는 사유적 에세이 영화를 많이 만든 때였다. 시트콤 작가였던 송재정은 ‘인현왕후의 남자’로 사극과 판타지를 결합한 타임슬립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선보였고,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W’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통해 시공간 초월 서사의 독보적 작가로 꼽히게 된다. ‘나인’은 배우들의 명연기, 탄탄한 스토리 라인으로 지금도 웰메이드 드라마로 회자된다. 미국 ABC 방송사와 포맷 수출 계약을 한 뒤 리메이크가 최종 성사되진 못했지만, 마니아들이 열광한 타임슬립 드라마였다.
2014년 인상 깊은 작품이 방영되는데 바로 ‘신의 선물-14일’이다.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의 14일간 시간여행을 그렸다. 첫 회에서 죽음의 신이 데려간 아이를 애타게 찾아가는 엄마의 여정을 그린 안데르센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삽입한 강렬한 영상이 나온다. 긴장·이완을 오가는 이보영-조승우의 몰입 연기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스킬이 돋보였다. 타임 슬립 이야기는 고도의 핍진감이 형성돼야 하는데 동화/신화, 꿈/현실, 과학/감성을 넘나드는 탄탄하고 촘촘한 구조로 전혀 허술함이 안 느껴지는 서사를 보였다.
백미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기동찬(조승우 분)이 자신이 범인임을 인지하고 저수지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2010년 이후 등장한 타임슬립 드라마 중 최고 결말이 아니었나 한다. 인간 운명은 비로소 비극으로 완성된다는 말처럼 애초 해피엔딩일 수 없었던 드라마.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충격적 선택으로 막을 내리지만, 그만큼 강렬한 엔딩을 남겼다. 유아 납치, 무능한 공권력 같은 사회문제를 판타지 프레임 속에서 제기한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타임 슬립 드라마 퀄리티를 끌어올렸고 사회비판적 판타지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