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1905년 경부선 개통
- 1908년부터 부산역 업무 시작
- 식민·6·25 등 민족 상처 서린 곳
- 울금향 부른 ‘눈물의 경부선’부터
- 남인수의 절창 등 테마곡 줄줄이
- 역 광장에 노래비 하나는 있어야
부산역의 역사는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된다. 1905년 1월1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세상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충격과 격변으로 이어진다. 무려 4년에 걸친 부설기간 동안 철도가 지나는 구간의 한국인들이 일본인들로부터 겪은 피해는 말로 형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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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사의 아픔과 역동성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부산역은 한국 가요사에서 중요한 장소다. 사진은 1950년대의 부산역사. 국제신문DB |
일제가 경부선 철도건설을 급속히 서두른 배경에는 러일전쟁과 관련이 있다. 전쟁터로 일본군을 실어 나르기 위한 운송수단으로서의 필요성이다. 원래는 일본에서 제물포(인천)로 말과 포병을 실어 날랐으나 워낙 급박한 전황 속에서 완공된 경부철도는 그들에게 너무도 요긴한 수송로였다. 이 때문에 경부철도의 건설은 일본군의 지휘 속에서 총력 건설체제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이미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한반도의 슬픔이었다. 당시 문단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육당 최남선은 개통식에 헌정했던 창가가사작품 ‘경부철도노래’를 통해 민족사의 비통한 현실을 아주 무시해버린 채 일본으로 상징되는 문명예찬에 흥분된 어조로 열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금역을 지나면 그 다음에는/해륙 운수 연(連)하는 구포역이라/낙동강의 어귀에 바로 있어서/상업번성하기로 유명한 데라//수백 년 전 예부터 일인(日人) 살던 곳/풍신수길 군사가 들어올 때에/부산으로 파견한 소서행장의/혈전하던 옛 전장이 여기었더라//일본사람 거류민 2만인이니/얼른 보면 일본과 다름이 없고/조그마한 종선(從船)도 일인이 부려/ 우리나라 사람은 얼씬 못하네/(최남선의 ‘경부철도노래’ 부분)
■부산역 아픈 기억 담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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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부산역 전경. |
이미 부산 일대의 분위기가 일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현황이 이 작품에서 리얼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초의 부산역은 1908년 4월, 초량역과 부산역 사이의 한 지점에서 업무를 보다가 그해 10월, 벽돌 2층의 르네상스 절충식 건물로 역사가 준공되었다. 1943년 일제말에는 역 이름이 ‘부산부두역’이었다. 그러다가 해방 직전인 1945년 6월에 드디어 부산역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6·25전쟁을 거치고 환도 직후인 1953년 11월에는 부산역 대화재가 발생했고, 두 해 뒤인 1955년에도 열차화재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부산역이 현재의 자리로 확정된 것은 1969년의 일이다. 그 후 증개축을 거듭해서 경부고속철이 개통과 더불어 현재의 부산역 건물이 완공되었다. 상하행선 하루 운행횟수는 평균 40회, 상하행선 연중 승객은 각각 940만 명 안팎에 이른다. 민족사의 격변기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경부선 철도의 종점인 부산역을 통해 부산에 왔고, 또 부산을 떠났을 것인가? 그들 가슴 속의 아픔과 상처, 이별과 눈물은 얼마나 눈더미처럼 쌓였을 것인까? 지금 부산역 자리는 예전 그대로지만 외형은 옛날과 아주 달라졌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연을 낱낱이 껴안고 있는 부산역은 오늘도 말이 없이 묵묵하기만 하다. 오는 이, 가는 이를 잠자코 맞이하며 떠나보낼 뿐이다. 하지만 송영(送迎)의 공간인 부산역의 숱한 애환을 다룬 노래들은 여전히 지난 세월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재생시켜 들려준다. 그것이 바로 노래의 생생함이며 위대성이다.
부산역을 비중 있게 다룬 노래는 과연 어떤 작품들이 있었던가? 최초의 부산역테마 노래는 1937년 10월에 발표된 ‘눈물의 경부선’(박영호 작사, 이용준 작곡, 울금향 노래, 태평레코드 8325)이다. 1919년 충남 논산 출생의 울금향은 본명이 박복순으로 그녀의 또 다른 예명은 남일연이다. 옛 SP음반으로 이 노래를 들어보면 부산역에서 출발을 알리는 열차의 기적소리가 전주(前奏)에서 들린다. 그리곤 사라사테의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인 ‘집시의 노래’로 이어진다. 부산역 주변의 전형적 분위기가 기묘한 여운과 애조를 머금은 채 노래로 접어든다.
구름다리 넘을 때 몸부림을 칩니다/금단추를 매만지며 몸부림을 칩니다/차라리 가실 바엔 맹서도 쓸 데 없다/아, 부산 차는 떠나갑니다
플랫트홈 그늘 속에 소리소리 웁니다/붉은 댕기 매만지며 소리소리 웁니다/차라리 가실 바엔 눈물도 보기 싫소/아, 부산 차는 떠나갑니다
-울금향의 노래 ‘눈물의 경부선’ 전문
■근대사의 온갖 사연과 곡절 담겨
펼쳐지는 노래는 사설이 아니고 통곡과 몸부림이다. 처연한 이별 앞에서 그 어떤 위로와 변명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 무엇이 이처럼 이별의 아픔을 불러왔던 것일까? 부산역 이별의 이유와 배경이 자꾸만 궁금해진다. 우리는 눈물의 습기로 흥건히 젖어있는 노래가사만 자꾸 음미하며 짐작해보려 한다. 이 노래를 필두로 해서 ‘인생선’(김다인 작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 노래, 오케 1942) 등이 출현했고 해방 후로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무정열차’, ‘울리는 경부선’, ‘경부선 엘레지’, ‘달리는 완행열차’, ‘비 오는 정거장’, ‘이별의 종열차’ 등 남인수의 피를 토하는 듯한 여러 절창이 그 뒤를 이어갔다. 가요황제 남인수는 부산역과 경부선테마 노래를 가장 많이 불렀고, 놀라운 가창력으로 그 고유의 정서를 담아낸 불세출의 대중음악인이었다.
이후로 출현한 부산역, 혹은 경부선테마 노래로는 ‘달리는 경부선’(최갑석), ‘설움 실은 경부선’(안다성), ‘경부선 엘레지’(시민철), ‘울고 싶은 인생선’(시민철), ‘원한의 북행열차’(정향), ‘부산역 이별’(방운아), ‘정든 부산 잘 있거라’(방운아), ‘애수의 밤 열차’(고대원), ‘울리는 야간열차’(반야월), ‘밤비의 정거장’(백야성), ‘경부선 밤 열차’(명국환), ‘청춘 실은 경부선’(박경원), ‘부산역 이별’(장고), ‘남행열차’(남상규), ‘떠나가는 경부선’(이상열), ‘경부선 천리 길’(김우정), ‘비 오는 부산역’(김수동), ‘밤 깊은 부산역’(안세건), ‘부산유정’(옥금옥), ‘비 오는 부산역’(김창욱), ‘부산이여 안녕’(이예나), ‘부산 발’(마에다 유키), ‘이별 없는 부산정거장’(현숙)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례들이 확인된다. 우선 제목만으로 찾아봐도 이 정도인데, 가사 본문에 부산역이나 경부선이 등장하는 노래까지 찾는다면 그 분량은 기하급수로 늘어날 것이다. 노래 제목에 나타난 느낌만으로 보더라도 철도는 인생의 우여곡절과 동일한 상징적 비유로 다루어진다.
근대사의 온갖 사연과 곡절을 껴안고 있는 부산역, 경부선테마 노래는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영원히 우리 곁에 있다. 그런 점에서 부산의 최초관문인 부산역광장에 노래비조차 하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시인·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