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3 때 시네마테크 비평수업 듣고
- 대학진학 미룬채 영화공부 시작
- 서울행 대신 고향서 인맥 넓히며
- 부산 촬영·제작·배급 작품 결실
- “아름답지만 지역민도 잘 모르는
- 공간 담아내 신선함 주고 싶었죠”
- “진정한 영화의 도시 발돋움 위해
- 市, 인재·콘텐츠 육성 힘 써주길”
부산에서 학창 시절부터 영화를 꿈꿨고,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영화를 공부하면서 감독의 길을 찾아온 서른 살 청년이 드디어 자신의 첫 장편 영화로 전국 관객과 만난다. 부산에서 올로케이션 촬영했으며, 부산의 제작사와 배급사가 힘을 합친 영화 ‘영화의 거리’의 연출을 맡은 김민근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화의 거리’는 영화 로케이션 매니저와 감독으로 부산에서 다시 만난 과거 연인 선화와 도영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난 9일 영화의전당에서 선개봉했고 16일 전국 개봉한다. 최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 감독은 “첫 장편 영화이기도 하고, 전국적으로 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설렘과 긴장감, 두려움이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조금은 들뜬 듯 떨리는 목소리에서 현재 그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부산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김 감독과 배우, 스태프의 진정성이 스며든 ‘영화의 거리’에 관해 김 감독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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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을 배경으로 한 데뷔 장편 영화 ‘영화의 거리’를 연출한 김민근 감독. 그는 부산 출신으로 부산 영화인들과 힘을 합쳐 연출한 ‘영화의 거리’에 지역 청년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씨네소파 제공 |
“하고 싶은 것을 찾던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영화 비평 수업을 듣고는 영화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졸업 후에는 영화의전당에서 진행하는 아카데미나 인문학 강좌가 있어서 1년만 경험해보고 부족하면 대학에 가자고 생각했다.” 김 감독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로 했다. 그래서 영화의전당 아카데미 과정을 통해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다양한 강좌를 들으며 인문학적 교양을 쌓았다. 시네마테크에서 계속 영화를 봤고 이런 활동으로 영화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친구들도 만났다. “아카데미를 마치고 뭔가 해야 하는 시점이 됐는데, 주변에 영화를 하는 사람도 없고 선후배를 끌어주는 네트워크가 없어서 힘들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 영화의전당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동료가 되어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부산에서 영화를 하다 보니까 부산 안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 생기기 시작했다.” ‘영화의 거리’의 제작을 맡은 제작사 눈의 김예솔 대표와 촬영을 맡은 박천현 촬영감독, 그리고 조연출을 맡았던 친구들이 바로 그들이다.
영화의전당 아카데미에서 만난 친구들과 작은 사무실을 내며 공동 영화 작업을 하던 그는 단편 ‘엄마 풍경 집’ ‘나는 보았다’를 연출했다. 이후 여러 장편 아이템을 개발했지만 영화화되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그중 하나의 아이템이었던 ‘영화의 거리’가 부산영상위원회 지원 사업에 선정돼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2019년 11월 촬영을 했고,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영화의전당이 지원하는 부산 영화 배급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돼 현재에 이르게 됐다. “촬영할 때만 해도 전국 개봉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극장에 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배급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돼 개봉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부산 영화 ‘영화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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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연인이었지만 꿈을 위해 헤어진 선화와 도영이 영화 로케이션 매니저와 감독이 되어 부산에서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영화의 거리’의 한 장면. 씨네소파 제공 |
‘영화의 거리’는 영화감독 도영이 연출하는 영화의 촬영지를 로케이션 매니저 선화가 찾아주면서 진행된다. 그래서 부산의 인상적인 장소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선화가 부산 지역 로케이션 매니저로 나오니까 이제껏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선보이지 않은 장소를 찾고 싶었다.” 영화에는 해운대, 광안리 등 ‘부산’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장소도 등장한다. 하지만 용소웰빙공원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장소가 새로움을 준다. “영화에서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 용소웰빙공원이나 용소골 저수지는 나를 포함해 스태프 중 누구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가보니 정말 좋더라.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라는 대사로 유명한 남천동 골목골목도 예뻐서 많이 촬영했다.”
이외에도 금련산 천문대, 부산현대미술관, 송도해상케이블카, 민락항 방파제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 감독은 “촬영 여건상 쉽지 않아서 남포동이나 자갈치, 감천문화마을, 영도 등 익숙한 공간을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2019년 11월, 2주간 9회 차의 짧은 촬영으로 진행된 것을 감안하면 현재 영화에 담아낸 부산의 풍광도 대단하다.
‘영화의 거리’를 부산 영화로 확실하게 방점을 찍어준 것은 바로 부산 출신 배우 한선화를 캐스팅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캐릭터인 선화 역을 맡아 부산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한다. “부산의 정서를 살리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연 배우들이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경상도를 연고로 한 배우들을 리스트업했고, 그중 한선화 씨가 있어서 시나리오를 드렸는데 출연해줬다.” 한선화는 열악한 촬영 현장 여건에도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후반작업을 하면서 한선화 씨의 연기를 더 자세히 봤는데, 그의 연기가 우리 영화의 매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 주인공 도영 역에도 울산 출신의 배우 이완을 캐스팅했다. 아름다운 부산의 풍광과 어울리는 두 배우의 사투리 연기는 부산 영화의 정서를 뚜렷하게 만든다.
■부산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
‘영화의 거리’는 이별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한 남녀의 이야기 속에 지역 청년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 고민은 김 감독의 자전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선화와 도영의 연애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영화를 하는 지역 청춘의 고민이 반영됐다. 부산뿐만 아니라 지역 청년들은 서울로 가서 활동들을 영위할지 지역에 남아서 삶을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고등학교 졸업 때는 진학 때문에, 대학교 졸업 때는 취업 때문에 한다. 이후에도 그 고민은 계속된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이나 청년들을 위한 직장이 많지 않아서 상경에 대한 고민을 열에 아홉은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배우나 영상 스태프를 하려는 사람은 거의 서울로 가는데, 영상산업의 인프라가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에서 촬영되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부산을 ‘영화의 도시’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부산 영화인들은 부산은 ‘영화의 도시’가 아니라고 한다. 부산에서는 장편 영화가 1년에 겨우 두세 편 제작되고, 거기에 스태프로 들어가기도 힘드니까 다들 서울로 가는 것이다.”
실제로 김 감독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웨딩 촬영 등과 같이 영화 이외의 영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밥벌이를 했다. 무엇보다 ‘영화의 거리’에 조연출로 참여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영화와는 관계없는 다른 직업을 택해 흩어졌다는 것이 부산 영화인들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산에 일자리만 있어도 부산을 안 떠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산시에서 부산 영화인들과 콘텐츠 육성에 더 투자하고 지원해야 한다.”
한편 올해 초 ‘영화의 거리’의 후반작업을 마무리한 김 감독은 차기작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인 공포나 스릴러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코엔 형제와 히치콕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를 보며 시나리오나 연출을 더 공부할 예정이다.
“영화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영화의 거리’를 세상에 내놓으며 다음 작품은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모자란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영화를 더 공부하려고 한다.” 차기작도 부산 영화였으면 한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