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기자들이 취향껏 보고 듣고 즐긴 뒤 가볍게 추천하는 문화 콘텐츠. ‘벌크업’한 남궁민의 변신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 ‘검은태양’, 역사의 반복으로 끝없이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현실을 담은 영화, 후기 한국단색화를 대표하는 미술작가의 전시를 보고 왔다.
★아프가니스탄 영화 ‘천상의 소녀’(2006)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이 재점령하고부터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산 지옥’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거리에서 사살됐다.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은 온데간데 없다. 학교에서 여학생을 내쫓거나 남학생과 분리하고 최근에는 여성 공무원에게 출근 금지명령을 내렸다. 남성을 동행하지 않고는 여성이 아예 바깥 출입을 못하게 하던, 1996년 이후 탈레반 집권기의 모습이 하나도 바뀌지 않고 재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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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생존을 위해 남장을 해야 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자아이의 비극을 그린 영화 ‘천상의 소녀’. |
그래서 30년 전의 모습을 그린 이 20년 전 아프간 영화는 현재의 아프간을 비춘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금지하자 할머니, 엄마, 딸(레일라)만 있는 한 가정은 먹고 살 방도가 없어진다. 엄마는 어린 레일라의 머리를 깎아 남자아이처럼 꾸며서 죽은 남편 친구의 가게에서 일하게 한다. 그러나 레일라는 곧 남자아이를 탈레반 전사로 키우는 학교에 강제로 소집되고, 얼마 안가 성별이 탄로난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픽션이라서 다행’이라며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없다. 행복한 결말을 기대해 볼 여지도 없이 점점 더 큰 불행 속으로 추락하는 레일라를 보며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레일라를 연기한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는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거리에서 구걸하다가 세디그 바르막 감독을 만나 캐스팅됐다고 한다.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 담긴 공포는 그저 연기가 아니다.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사회가 진보하거나 나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영화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MBC 드라마 ‘검은태양’
- 남궁민 몸도 액션도 ‘벌크업’… 한방 제대로 터졌다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던 MBC 드라마가 제대로 한 방을 터트렸다. 시작과 동시에 주인공을 맡은 배우 남궁민의 환골탈태급 근육질 몸매로 입소문을 타더니 영화같은 만듦새와 숨막히는 스토리 전개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국가정보원 내 비밀조직의 엘리트 요원 한지혁(남궁민)은 중국 선양에서 임무 중 1년간의 기억을 잃고 발견된다. 가족같은 팀 동료를 잃고 그에게 남은 것은 피의 복수 뿐. 조각난 기억 속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가정보원 내 밀고자가 있어 내부 정보가 밖으로 새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 실낱 같은 단서를 끌어모아 배신자를 추적하는 그를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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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남궁민 주연의 MBC 드라마 ‘검은태양’. MBC ‘검은태양’ 제공 |
수사물에는 흔히 쓰이는 장치이므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싶지만 총알도 튕겨 낼 것 같은 근육으로 거침없는 액션을 소화해내는 남궁민 덕에 설정이 자리를 잘 잡았다. 주로 드라마에서 단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실장님 역할을 주로 맡았던 그였는데 지금은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덩치에 어두운 눈빛으로 역할에 푹 빠져들었다.
다만 선혈이 낭자한 폭력 장면이 꽤 나오기 때문에 잔인한 장면을 보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렵다. 호쾌한 액션에 과연 누가 조직의 배신자일지 추리해 가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언제 한 회가 끝나는가 싶고 다음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리지 하는 기대감을 주는 작품을 오랜만에 만났다. 웨이브온에서 무삭제판을 볼 수 있는 건 또 다른 재미다. 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
★천광엽 미술전 ‘Omni(옴니)’
- 무수한 점들 모여 하나가 될 때
멀리서 볼 땐 그저 푸르고, 붉은 화면인데 가까이 다가서면 무수한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균일하게, 때로는 불규칙한 형태로 자리 잡은 점의 군집은 마치 착시를 일으키듯 일렁거리며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보는 이를 몽롱하게 끌어당기는 이들 작품은 후기 단색화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천광엽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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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광엽, omni_no.11. 데이트갤러리 제공 |
데이트갤러리가 ‘Omni’전을 열고 천 작가의 작품 20여 점을 소개한다. ‘Omni’란 모든 것을 포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특정한 것을 지향하지 않는, ‘전체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전체’란 뜻을 지닌다. 천 작가는 1990년대부터 점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해 출력한 작은 점들을 캔버스에 부착한 뒤, 그 위에 유화물감이나 안료를 바르고 말리고 사포로 갈아내길 반복하며 밀도 높은 화면을 만들어낸다. 묵묵히 수행하듯 이어지는 작업은 추상의 핵심 정신에 가까워지고, 정교하게 완성된 작품은 작가의 ‘몸성’을 머금게 된다. 데이트갤러리 김경애 대표는 “육체적 행위와 정신성이 결합한 한국 단색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단색화는 특히 실물과 사진이 천지차이다. 실제 작품이 주는 에너지와 아름다움이 사진에는 절반도 담기지 못한다. 천 작가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실물과 마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전시는 다음 달 8일까지.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