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다가오는 죽음의 강박에서…탈주하는 잠행자들

개막작 리뷰

  • 조재휘 영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10-06 19:53:55
  •  |   본지 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감옥에서 오랜 세월 복역해온 죄수 203(최민식)은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는다. 삶의 시간이 겨우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는 탈출을 시도하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필요한 약을 훔쳐 자신의 난치병을 다스리던 남식(박해일)은 우연한 계기로 휘말려 203의 탈주에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탈출을 위해 훔친 장의차에는 범죄 조직의 보스 윤여사(윤여정)에게 돌아갈 거금의 돈이 관에 실려 있었고, 탈옥수를 추적하는 경찰에 돈의 행방을 찾는 조직의 하수인까지 개입하면서 203과 남식의 탈주극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임상수 감독 ‘행복의 나라로’.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2021)는 버디 무비(buddy movie)의 공식을 답습하는 일종의 로드 무비이다. 203과 남식은 도주하는 와중에 서로를 도와가며 긴밀한 우정을 쌓아가고,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함께한다. 두 사람을 묶어주는 공통점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강박이다. 출소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그보다 먼저 죽음이 찾아올 것을 알게 된 203은 마지막으로 딸의 모습을 보길 원하고, 남식은 약물이 끊기면 목숨을 지속할 수 없다. 뒤를 쫓는 건 경찰과 범죄조직 뿐만 아니라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인 셈이다.

시한부 인생인 두 남자가 콤비를 이루며 추적을 뿌리치고, 마침내 도달한 바다에서 삶의 황혼을 맞이한다는 전체적인 얼개에는 어딘가 익숙한 기시감이 감돈다. 이 영화는 한국적인 배경에 맞도록 각색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7)의 리메이크에 가까워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는 형식을 위한 핑계’라는 로베르 브레송의 말을 살짝 비틀어 말하자면 이 영화의 이야기는 감독의 메시지를 위한 핑계일 뿐이다.

‘행복의 나라로’에는 세 개의 죽음이 배치되어 있다. 203과 남식, 그리고 윤여사. 영화의 편집은 세 사람에게 죽음을 번갈아 교차시킨다. 링거에 치료제를 주입하는 이미지가 겹치긴 하지만 필요한 약을 구할 돈이 없어 훔치는 남식의 가난은 안락한 침실에서 주치의의 치료를 받는 윤여사와 대비를 이룬다. 203에게 꺼져가는 생명을 지속해야 할 이유는 딸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지만, 윤여사에게 있어 삶을 이어가야 할 이유는 돈에 대한 탐욕과 갈증이다. 피하지 못할 죽음을 마주하고서도 엇갈리는 인간들의 서로 다른 양상을 통해 감독은 리메이크 버전 ‘하녀’(2010)와 ‘돈의 맛’(2012)의 주제의식을 이어가며 자본과 계급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함의를 담아낸다.

카메라는 이따금씩 203과 남식의 모습을 와이드숏과 부감으로 잡아낸다. 인물과 배경의 크기를 대비시키며 왜소해보이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촬영은 두 사람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권력의 시선이기도 하며, 이들이 사회의 정상성에 포섭되지 못하고 내몰리는 소수자임을 암시한다. 도로라는 선을 타고 추적하는 국가권력을 피해 두 사람은 산 속과 같은 선 밖의 면으로 도망치고 잠행하지만, 안식의 공간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내몰리며, 종국에는 트럭에 실린 흙과 함께 내다버려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까지 한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지그문트 바우만) 또는 모더니티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 마침내 도달한 바다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줄 신화적 공간이며, 목적지에 이르러서야 203은 죄수번호가 아닌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며 한 사람으로서의 인격성을 회복한다. 정상 사회의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시선의 따스함. 블랙코미디 속에서 피어오르는 일말의 휴머니티는 배우 최민식의 완숙한 연기에 실려 잔잔한 여운과 숭고를 자아낸다.

조재휘 영화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5. 5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6. 6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7. 7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8. 8[사설]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9. 9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10. 10“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1. 1820조 예산전쟁 개막…여야 ‘3대 메가·미래기금’ 격돌 예고
  2. 2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3. 3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4. 4“7개 정당 19명 치열하게 토론…대화·설득으로 의견 일치 봐”
  5. 5‘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6. 6민주, 조희대 ‘계엄 동조’ 여부 정조준
  7. 7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8. 8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9. 9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10. 10北, 집속탄두 위력 과시…‘축구장 18개 면적’ 초토화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5. 5편의점 번진 요거트 인기…세븐일레븐 ‘요즘’과 맞손
  6. 6부산은행 김해공항점 계속 운영
  7. 7중산층 10명 중 4명 벌이 줄었다
  8. 8조선 빅3 공동납품망 완성…부산 기자재 플랫폼 안착(종합)
  9. 9롯백 편집숍 ‘시시호시’ 부산 감성 입었다
  10. 10캐릭터로 동심 공략하고, 어른 향수도 자극하고
  1. 1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2. 2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3. 3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4. 4“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5. 5“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6. 6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7. 7여전한 특수학교 님비 “주민체육시설 끼워 짓자” 고육책
  8. 8국힘 과반 양산시의회, 민감한 3개 안건 부결 왜?
  9. 9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10. 10“부산형 상병수당, 고령노동자도 줘야”
  1. 1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2. 2“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3. 3“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4. 4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5. 5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6. 6‘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7. 7“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8. 8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9. 9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10. 10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송현화-Magic Air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2일 (음 9월 23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9일 (음 9월 19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