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온 소감요? 음… 제가 사실 24시간 걸려서 부산에 왔는데 온 지 24시간도 안지나서요. (웃음) 그 질문 만큼은 시간을 좀 더 주셔야 답변을 할 수 있겠습니다. 분명한 건 올 수 있어서 기뻤다는 겁니다.”
지난 10일 부산국제영화제(BIFF) 기자회견에서 프랑스 거장 영화감독 레오스 카락스 감독을 실제로 만난 느낌은 신기했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홀리 모터스’ ‘폴라X’ ‘소년 소녀를 만나다’…. 영화팬들에게 그의 이름과 필모그래피는 마치 교과서의 내용처럼 익숙해서, 첫 단어를 말하면 뒷 단어가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그런 대상이다. 그런 만큼 그의 영화를 사랑한지 20여 년 만에 레오스 카락스를 실물로 ‘영접’한 느낌이 비현실적이지 않기는 어려웠다.
카락스 감독은 그의 말대로 무척 피곤해 보였지만(생각보다 많이 마르고 몸집이 작아서 더 그래보였는지도) 영화 ‘아네트’를 본 뒤 기자들이 쏟아내는 질문의 의미를 곱씹으며 가능한 한 세심하고 성의껏 답변하려 애썼다. 단 마지막 ‘포토타임’만큼은 고민 없이 거절했다.
올해 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신작 ‘아네트’를 출품하며 부산을 찾은 카락스 감독과의 회견 내용을 1문1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서승희 BIFF 프로그래머가 회견을 진행했다.
-영화 ‘아네트’에서 스탠딩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톱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의 딸인 아네트는 대부분 ‘인형’(꼭두각시)가 연기한다.
▶영화에서 아네트는 노래를 잘 하는 0~5세의 여자아이다. 그런 아기배우를 찾지 못했다. 모든 영화적 표현은 이런 ‘불가능’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네트의 부분은 다 비워놓고 후반작업에서 3D로 표현하려던 게 처음 생각이지만, 어른 배우들이 아네트와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없다는 게 큰 문제였다. 그 걸 해결할 방법은 꼭두각시, 즉 인형 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영화 아네트는 스팍스라는 그룹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 영화 프로젝트 자체가 스팍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듣고 좋아했지만,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스팍스가 홀리 모터스 등 내 전작을 보고 이 뮤지컬 영화를 제안해왔다. 영화를 만들면 항상 음악이 걱정되는데(음악을 누구에게 맡길지, 어떤 음악을 쓸지, 과연 잘 만들어질지)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스팍스가 만든 15곡을 아네트에서 모두 다 썼다.
-비극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딸에게 바친다고 밝혔다.
▶최근 만든 두 작품에 딸과 함께 잠깐 출연했다. 내가 다작하는 감독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많은 영화를 만들지는 못했는데, 가족영화 같은 것을 한 번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 아네트는 ‘나쁜 아빠’에 관한 얘기라서 특이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버지에 관한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 역시 ‘나쁜 아빠’인가를 자문하기도 했다.
-두 주연배우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어떤 점이 좋았나.
▶나는 배우를 생각하며 영화를 구상한다. 이번에는 내가 아닌 스팍스의 영감이 영화의 시작아었기 때문에 배우를 나중에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뮤지컬이란 점도 고려해야 했다. 노래도 해야 하니까. 아담을 8년 전에 한 시리즈물을 통해 처음 봤고 마음에 들었다. 그는 ‘흥미롭고 이상한’ 배우였다. 8년 전에는 너무 어렸지만, 지금 그의 나이는 아빠 역할을 하기에 적당해졌기에 그를 캐스팅했다. 여배우는 미국인을 찾다가 나중에 마리옹을 발견했다. 아담과 무척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당신은 배우 드니 라방과 여러 영화를 찍었다. 아담 드라이버와 비교하면 어떤가.
▶드니는 20대에 만나 서너 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친구라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한동네에 살아서 길에서도 가끔 만난다. 그와의 작업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아담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또 다른 영화를 제안했는데 하도 다작하는 배우라 지금은 안 된다고 거절하더라.
-섹스 장면에서까지 노래를 하는 영화라서 신기했다.
▶뮤지컬 영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정말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스팍스의 제안은 그래서 내게 큰 행운이다. 말 대신 노래만 계속 하는 걸 보면 어떤 사람은 어색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만든 거니까. 대사를 모두 없애고 노래만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스탠딩 코미디언과 오페라 가수라는 남녀 주인공의 직업은 어떤 의미가 있나.
▶직업은 스팍스와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오페라를 전혀 몰랐는데 알고보니 매우 흥미로운 장르였다. 클래식 오페라는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끝 맺는 경우가 많다. 극단 선택을 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그들이 죽는 그 순간 오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른다. 그 비극적 아름다움을 영화에서 빌려오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나는 훌륭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몇몇 안다. 이들은 사람을 잘 자극하고, 죽음이라는 소재로 재미있는 소재를 만들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한 직업은 사람들이 고상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는 저급하다고 여긴다. 그 대조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국영화나 한국배우에 관해 아는가.
▶젊을 때 수많은 영화를 봤다. 유럽영화, 할리우드, 발리우드, 아시아 영화까지. 그런데 지금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도 배우도 잘 모른다. 그런데 홍상수 영화를 꽤 많이 봤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이름은 모르지만 배우 가운데 대단하다고 생각한 이가 몇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개인적인 생각이나 삶에 변화가 생겼나.
▶이 영화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할 때 프랑스에 봉쇄령이 내렸다. 물론 힘들었지만, 영화 상영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한 것은 좋은 점도 있다고 본다. 생각의 변화? 잘 모르겠다. 사람은 집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 안 된다는 건 확실하다.(웃음)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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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해운대구 KNN 시어터에서 열린 갈라 프레젠테이션 ‘아네트’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전민철 기자 j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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