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곳의, 詩와 그곳 <39> 길상호 시인 ‘오드 아이’
오드 아이
길상호
한없이 따뜻한 노랑
한없이 차가운 파랑
당신과 함께 머무는 동안
나의 무대는
희극과 비극을 한꺼번에 앓았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두 눈을 오가는 동안
이중국적의 감정을 익힐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나도
괄호 속 지문을 버리고
지루한 해설을 버리고
폴짝,
당신을 넘나들며
나만의 대사를 만들려 해요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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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오드 아이 고양이(odd-eyed cat). 오드 아이 고양이는 한 족 눈은 파랗고 다른 쪽 눈은 노랑, 초록, 갈색 등인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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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영국의 시인이자 극자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희극 소설 ‘뜻대로 하세요’를 통해 이 세상은 하나의 무대요, 모든 인간은 제각각 맡은 역할을 위해 등장했다가 퇴장하고 마는 배우라 표현 했다. 그렇다면 세상이라는 무대에 나는 어떤 배우일까? 시 ‘오드 아이’는 일반적이지 않은, 내게는 없던 또 다른 색깔의 특별한 눈을 뜨게 한다.
길상호 시인은 고양이들과 함께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고양이를 형상화 한 작품이 많다. 아마도 그의 무대에서 고양이가 좀 더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세상은 ‘한없’는 ‘노랑(따뜻한)’과 ‘파랑(차가운)’이다. 색깔이 다른 양쪽 눈(‘오드 아이’)을 가진 화자를 통해 동시에 상반된 시선으로 대조된 삶을 인식한다. ‘나의 무대는’ 나만이 아닌 ‘당신’이라는 존재와 함께 머무는 공존의 무대이기도 하다. 시적 화자의 표현처럼 ‘희극과 비극을 한꺼번에 앓았’기에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 서로의 결핍을 보완해주기에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동시에 보는 균형을 유지하고자 ‘이중국적의 감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형태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한 가지 색으로만 일관되게 보는 눈을 가진 배우는 아닐까? ‘괄호 속 지문’에 연연하며 ‘지루한 해설’을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슬럼프에 빠져 일상에 묻혀가는 어느날,
마지막 연에서 화자가 뛰어오른다 ‘폴짝’
‘당신’이라는 현실을 ‘넘나들’어야 ‘나만의’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나의 무대는 배우였다가 관객이 되어 박수도 보내는 또 다른 색깔의 눈을 떠도 좋겠다.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