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나 펍에서 못 다한 사랑을 향해 애절하게 울부짖는 발라드가 이어질 때는 난처해진다. 감정이입이 되면 슬퍼서 난처하고, 감정이입이 안 되면, 낮선 이가 울부짖는 걸 어쩔 수 없이 바라봐야 하는 것처럼 난처하다. 이 정도면 작사가, 작곡가들은 지나간 옛 사랑에게 도의적으로 어느 정도 저작권을 양도해야 하는 게 아닐까.
록 메탈 힙합 댄스 레게 트로트 등등 많은 장르가 인기가 치솟았다 떨어지길 반복하는 동안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발라드는 유행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늘 자리를 지킨다. 조덕배 이문세 김현식 유재하의 익숙한 옛 노래는 지금도 젊고 생소한 뮤지션에 의해 수도 없이 리메이크되고 있으니 클래식 반열에 끼워도 무방할 것 같다. 최근엔 20대 친구들 역시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을 옛 노래를 즐겨 듣는다. 이유를 묻자, 20대 친구는 옛날 노래는 무슨 얘기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요즘 노래들이 대체 뭐라는지 못 알아듣겠는 건, 어린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구나. 적잖이 위로가 되는 얘기였다.
애절하고 비통한 하소연은 시대를 넘어 꾸준히 공감대를 만든다. 물론 디테일 차이는 있다. 최근 신예 뮤지션의 노래를 듣다가 ‘너도 내 인스타 가끔 놀러오니?’ 란 가사를 듣고 이게 이토록 애절하게 부를 일인가? 의아했다. 꼰대스럽게 얘기하자면 옛날, 피 튀기는 고음 전쟁 중이던 록 발라드 전성시대엔 요즘같은 ‘썸’ 개념조차 없었다. 일단 사랑하면 천 년 가도 잊을 수 없거나, 다음 세상 기약하거나, 너의 결혼식에 가서도 촛불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하거나, 어쨌든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위험하고 살벌한 것이 사랑이었다.
이렇게나 위험한 사랑을 어찌 법적 제재 없이 방치했던 걸까 싶다. 훨씬 더 오래전 철사 줄에 꽁꽁 묶여 뒤 돌아보고 또 돌아봤던 처절한 사랑노래에 공감했던 어르신이라면 이게 다 젊은이들이 보릿고개를 못 겪어 그런 거라 혀를 찰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다는 큰 틀은 안 달라진다. 자동차가 날아다닐 미래 어느 날에도 우리 어느 후손은 술 취해 야심한 밤에 옛 연인에게 ‘자니?’ 라고 메시지를 보낼 거라 확신한다. 그러니까 발라드는 결코 죽지 않는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