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4세 나이 국한하지 않고
- 청년 정책과는 다른 결로 접근
- 저항·독립·계몽 등 단어만으론
- 청년문화 정의·규정 쉽지 않아
- 부산 기반 활동 밴드 ‘소음발광’
- 여성 뮤지션 브랜드 ‘반했나’ 등
-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 해나가며
- 빛나는 청춘이 청년문화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들과 쓸모없는 농담이 섞인 유쾌한 수다. 유난히 지친 날, 먹고 싶던 음식을 앞에 두고 보는 성룡의 액션 영화. 청량한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손에 들고 듣는 레게 음악, 그러다 흥에 취해 추는 춤. 이 모든 것이 한곳에 펼쳐져 있는 축제.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일을 하며 조금씩 지쳐있는 요즈음, 집에 돌아와 나지막이 숨을 내뱉고는 좋아하는 것을 나열해 본다. 만 31살의 청년(이라 규정된) 나의 문화·예술 향유는 이런 것들이다.
문화기획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해 보고 싶어 선택한 직업이었다. 문화기획이라는 용어를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싫은 것보다는 즐거운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직업이라기보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다 보니(매번 즐겁지는 않았다) 내 이름 앞에 어느덧 ‘청년문화기획자’라는 타이틀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문화기획자도 어색한데 청년문화기획자라니, 그렇게 불러주니 그런가 보다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다면 ‘청년’ 문화기획자인 건지, ‘청년문화’ 기획자인 건지, 이 말은 나를 어떻게 설명하는 걸까. 일을 시작할 시기부터 잊을 만하면 떠오르던 이런 고민은 지금까지도 오랜 시간 내 직업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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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1집 음반을 낸 지 1년 만에 최근 2집을 발매한 밴드 ‘소음발광’(왼쪽)이 공연하고 있다. 오른쪽은 부산 유일 여성 뮤지션 브랜드 공연을 이어가는 ‘반했나’ 팀이다. |
■ 청년과 청년문화
‘19~34세’.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청년을 위해 정해진 기준이다. ‘청년을 어떻게 나이로 규정하느냐’는 말도 더러 등장하였으나, 따지고 보면 청년을 나이로 규정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청년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해 기준은 필요했고, 청년에게만 특별히 부여한 것이 아니라 아동(0~18세), 청소년(9~24세), 노인(65세 이상)에게도 적용한다.
문제가 된 건 문화였다. 청년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청년문화도 함께 지원하게 됐다. 청년을 위해 정한 기준을 문화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청년문화 관련 지원사업 참여에는 19~34세 나이제한이 적용됐다. 일부 청년문화를 키워드로 활동하던 기획자와 예술가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 탓에 자신들이 가꾼 문화 터전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청년문화를 청년정책과 같은 것으로 인식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청년에 의한 문화이니 청년문화를 통해 청년을 지원한다는 생각은 특수성과 관계없이 19~34세 기준에 맞는 ‘청년’들이 참여하는 문화와 기존 ‘인디펜던트’를 가치로 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 만들어내던 청년문화의 충돌로 혼선이 빚어지게 했다.
■ 청년문화를 향한 오해
“근데 청년문화가 뭐야?”
혼선은 오해가 되고, 청년문화 기획 워크숍이나 모임에서 위와 같은 질문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어질러진 채로 남아있어 언제나 어려운 질문이다. 청년문화는 이른바 ‘계몽적인’ ‘저항적인’ ‘독립적인’ ‘대안적인’ 같은 단어로 인식돼왔다. 지금의 청년과는 그 이미지가 사뭇 다른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년문화’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전에는 ‘대안문화’ ‘독립문화’로 부르기도 했다. 인디음악, 독립영화와 같은 장르도 그 시기에 함께 태동한다. 청년문화라는 낱말이 지금 시대에는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인디음악과 독립영화만 놓고 봐도 두 장르가 청년만이 향유하는 문화가 아니다. 요즘처럼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에 ‘한 세대를 대표하는 문화’라는 게 가능한 건지도 자문도 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청년문화의 시작은 청년에 ‘의한’ 문화였지만 청년만을 ‘위한’ 문화는 아니었고, 대다수가 향유하는 주류문화에 반하는 대안문화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기 힘든 특수하고 독특한 문화다. 세대를 이야기하는 문화가 아닌,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적합하다. 따라서 청년문화가 청년의 보편적인 삶을 다루는 청년 정책과는 다른 결로 접근하는 것이 알맞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나는 갖가지 청년정책 문화 분야 라운드 테이블에서 쭈뼛거리며 앉아 있다 집에 오기를 수십 번 반복해야 했고, ‘청년문화 하신다면서 왜 청년의 공감대를 얻을 콘텐츠를 기획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질문에 얼버무리기를 수십 번 되풀이했다.
■ ‘무엇’은 ‘무엇’이 꼭 돼야 할까
청년정책 간담회 자리에 여러 번 불려 다녔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여느 때와 같이 병풍처럼 앉아있던 어느 날, 손에 마이크가 쥐어지고, 발언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도무지 할 말이 없어 “청년문화와 관련한 이야기는 별개로 테이블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보편적인 청년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는 내가 ‘청년문화’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 청년과 문화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자리는 많지만, ‘청년문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는 많지 않다. ‘정리되지 않았고,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하고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무어라 규정하려 하는 순간 그들의 빛이 사라질까 염려된다. 개개인의 특성을 인정하면서 그 독특함을 고스란히 빛나게 하는 건 불가능할까.
■ 여전히 꿈틀대고 있는 힘
부산에서 활동하는 음악 밴드 ‘소음발광’은 1집을 발매한 지 1년여 만에 곧바로 2집 ‘기쁨, 꽃’을 발매했다. 정규 음반 하나 내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 왕성한 에너지로 2집을 연달아 공개했다. 뮤지션 윤도경도 2년 6개월 만에 역시 2집을 선보였다. 작업 과정을 공연을 통해 공유했고, 꾸준히 SNS와 블로그로 소식을 알리며 최근 2집 쇼케이스를 치렀다. 연출자 강정환은 50년이 넘은 세월을 간직한 빈집에서 ‘찰(察-살피다)나’라 이름 붙인 전시를 열었다.
부산 유일 여성 뮤지션 브랜드 공연인 ‘반했나’는 올해도 그들 목소리를 이어나갔고, 작가 조시안은 친구들과 재미난 비디오를 찍고, 홍대와 춘천 부산을 아우르며 전시했다. 신진문화예술행동 ‘흥’은 문화예술단체로선 최초로 제30회 민주시민상을 수상했다. 뚝심 있게 걷더니 값진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설렘을 간직한 공간 ‘노드’는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운영을 이어나가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 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빛나는 친구들이 스스로 ‘청년’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꿋꿋이 이어나가는 모습은 이미 무엇으로도 이들을 규정할 수 없게 한다. ‘청년문화’라는 낱말 앞에 낯간지러워하는 이들의 표정과 오그라드는 어깨를 바라보는 것이 차라리 재미있고 즐겁다.
■ 꼭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청년문화’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고, 입고 마시며, 유행을 선도하는 ‘힙’한 것들은 청년문화에 갇혀있지도, 청년에 갇혀있지도 않다. 어쩌면 지역에 청년들이 머물고 청년들만의 문화가 문화로서 작용하게 하는 일은 그들을 청년문화라 부르지 않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무어라 규정 짓지 않은 채로 가만히 관찰하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지역의 청년 이탈을 막고, 조금이나마 젊어지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시작점이다.
다시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좋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기 위해 시작한 일들은 때로는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과제가 된다. 일상처럼 누리던 것들은 점점 귀하디 귀한 순간으로 남게 되고, 피곤에 허덕이다 잠들기 마련이다. 그런 순간 경계를 허무는 무언가를 또 한 번 만나고 싶다. 사실은, 그런 무언가와 함께 책임을 벗어 던지고 재미나게 놀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을 뿐이다.
시민기자·기획자·밴드 해피피플 멤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