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세계적 권위자 수 블랙
- 쓰나미 사망 신원확인 등 활약
- 공포·혐오 대상으로서가 아닌
- 이해해야 할 존재로 죽음 강조
- “사인·신원 확인받을 권리 있다”
죽음을 꺼리는 것이 생명체의 본능이라고는 해도 인간의 두려움은 훨씬 더 크고 절망적이며 히스테릭하다. 상대적으로 죽음과 멀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는 죽음을 외면하고,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불안해한다. 이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사람들은 죽음 따위 별 것 아니라는 듯 허세를 떨거나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도 담지 않을 정도로 금기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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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소보 내전이 최악으로 치닫던 1999년 비극의 현장인 코소보로 파견돼 활동한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 밤의책 제공 |
죽음은 왜 공포의 대상이 됐을까. 죽음이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겪는 평범한 일이란 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대하는 사람, 주검을 많이 보는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세계적인 권위의 영국 법의학자 수 블랙은 이번에 국내출간된 저서 ‘남아있는 모든 것’에서 이런 질문에 답한다. 수 블랙은 2004년 인도양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사망자 신원 확인을 위해 태국에 파견된 최초의 법의학자이며, 2016년 법의인류학 분야에 공로가 인정돼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언론매체의 찬사를 받고 문학상을 휩쓸었다.
많은 경우 ‘죽음의 첫인상’은 조부모의 임종이 결정한다. 저자의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밥을 먹다가 ‘토마토 수프 그릇에 얼굴을 박고’ 사망했다. 목격한 가족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기억이 될 수 있지만 고통도 번뇌도 없었던 그 죽음이 축복이 아닐 것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례식날 “할아버지가 잘 계시는 지 확인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저자는 시신의 맥박을 재고 피부색을 살피고 혹시 불법 장기적출이 없었는지 확인한 뒤 할아버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10대 시절 정육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 저자는 고기의 살과 근육, 뼈의 모양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해부학을 탐구했다. 그때 이미 그는 자신의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죽음을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태도를 잠시 거두기를 제안한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하나도 슬프지 않다는 다소 당혹스러운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단지 죽음이 ‘악마’가 아닌 것은 물론 운명처럼 ‘순응’하거나 부정할 대상도 아님을 강조한다. 우리가 죽음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터부시하거나 신성시할수록 죽음은 어두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죽음을 나의 마지막 모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내 인생에서 죽음은 단 한 번밖에 경험하지 못할 사건이니까. 나는 죽음을 알아보고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보고 만지고 냄새도 맡고 맛도 보고 싶다. 내 모든 감각으로 죽음을 느끼고, 마지막 순간이 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있는 최대한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
저자는 무엇보다 우리가 ‘죽음을 둘러싼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 사람이 정체성을 가질 권리가 있듯, 죽은 사람의 신원과 사인도 명확히 확인받을 권리가 있다. 산 사람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가지듯, 삶의 연장선인 죽음도 스스로 계획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사회는 서서히 그런 권리에 눈을 뜨고 있으며 반드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확신한다. 죽음에 대해 이렇게 냉철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읽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안도가 된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