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대학가를 걷다 보면 문득, 타임리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990년대, 대학생 시절 터져 나오던 익숙한 노래들이 다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 나 이 노래 좋아하네? 이 노랜 또 뭐지? 새롭게 발견하는 노래도 꽤 많다. 정작 1990년대에 20대를 보내던 나는, ‘왜 때문인지’ 당시 가요들에 거부감이 있었고, 가능하면, 남이 잘 모를 것 같은 인디음악과 서양 음악에 푹 빠져있었기에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당시 대중가요는 무시한 채,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펄잼, 너바나, 라디오헤드에 빠져있었다.
어르신들이 즐기던 옛 노래는 더 극렬히 싫어했다. 당시 히트곡 가사로 변명하자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교실이데아-서태지와 아이들)’ ‘닥쳐! 닥쳐! 닥치고 가만있어. 우리는 달려야 해.(말달리자-크라잉넛)’ 등, 기성세대와 그들이 만든 사회에 분노한 노래가 주류였다. 심지어 k-pop의 시조새 격인 H.O.T나 젝스키스까지 분노·반항을 외치곤 했다. 새로운 뭔가가 경쟁하듯 쏟아져 나와, 어쩐지 오래된 것은 낡고 촌스럽다는 강한 편견이 있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대한민국 건국 후 가장 말 안 듣고 반항하던 세대가 엑스세대 아닐까 싶다.
어느덧 내가 기성세대로 또는 꼰대라고 불릴 나이가 되니, 지금의 노년층, 당시 기성세대 어르신들께 죄송스럽다. 세상에! 얼마나 난처하셨을까. ‘그때는 어려서’라고 변명하기엔, 새로운 음악과 옛 노래를 구분 없이 즐기는 요즘의 어린 친구들을 보니 더더욱 죄스럽다. 나름 반성의 의미로 옛 노래들을 취미 삼아 발견해가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시대에도 파격적인 음악적 시도에 매번 놀라곤 한다.
랩퍼 제이통과 ‘부산그루브’의 조태준 이전에 한대수 선생님은 1989년에 ‘무한대’ 앨범의 ‘고무신’으로 거칠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랩을 선보였고, ‘연안부두’의 김트리오와 솔로 데뷔 전 ‘나미와 머슴아들’이란 밴드로 활동한 나미 선생님은 영미권 본토와는 사뭇 다른 독특한 그루브로 찰진 소울, 펑키 사운드를 앞서서 구사하셨다. 최초 걸 그룹이라 할 ‘김 시스터즈’는 BTS 이전에 일찍이 ‘에드 설리번 쇼’에 수 차례 출연해 한류 씨앗을 심으셨다. 다행히 아직 발견하지 못한 훌륭한 유산이 차고 넘친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