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변에 살고 있다. 연변에 오기 전 한국에서 생활할 때는 연변에 대한 많은 편견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연변 사람들, 즉 조선족은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3년간 연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위험한 건 아닌지, 친구들도 걱정을 해주었다. 예전엔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조선족이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민족이지만 지금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흡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변에 대한 나의 편견을 보다 확실하게 바꾸어준 또 다른 사실은 바로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는 사실이다. 목숨을 걸고 항쟁했던 항일비밀결사 의열단이 바로 이곳 길림성에서 조직되었다. 봉오동 전투로 알려진 의병장 홍범도는 연길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왕청현에서 대한독립군을 창설했다고 한다. 두만강 건너 북한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국경도시 도문과 왕청 사이가 가슴 벅찬 봉오동 전투지라고 한다.
중독성 있는 투도온면을 찾아 코로나 이전엔 한국 관광객들이 제법 오던 옆 동네 훈춘, 이곳은 바로 끔찍한 간도참변이 일어났던 곳이다. 근처인 용정에는 바로 별을 노래한, 독립을 꿈꾼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다. 그리고 6일 동안 일본군과 사투를 벌인 청산리대첩, 해란강을 따라 이동하고, 백운평 계속에서 매복하고, 연변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의 한인촌인 어랑촌에서 주민들이 싸준 주먹밥을 먹으며 투쟁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청산리 전투 역시 다 지척에서 일어났고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다.
또 길림성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의 총을 쏘았던 하얼빈역이 있다. 그리고 하얼빈에는 일본이 생물학 무기 개발을 위해 마루타 실험을 했던 731부대가 있다. 이곳에 방문했을 때 나는 재현해 놓은 생체 실험 장면들이 너무 끔찍해서 눈을 계속 감아야 했고, 식은땀이 나고 종일 배가 아팠다. 또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면 해군기지가 있는 여순이라는 도시가 있고 여기에 안중근 의사, 신채호 선생, 이회영 선생 등이 구금된 여순감옥이 있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고문실과 고문 도구들, 황망한 사형집행장. 이 모든 것들이 가슴에 새겨졌고,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감옥이 나에겐 핏빛으로 보였다.
독일 쾰른에서 게슈타포 지하감옥에 가본 적이 있다. 그땐 그냥 무섭다는 느낌, 잔인하다는 생각만 들었고 빨리 그 기분을 잊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에 있는 우리 조상들의 독립유적지와 투옥되었던 감옥들에 가서는 그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에 대한 존경심과 침략자의 잔인함에 대한 울분, 그리고 안일하게 생활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독립이 열강들의 전쟁 결과 국제적 흐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 과정에는 나라를 사랑한 수많은 사람의 투쟁과 희생, 염원이 있었을 것이다. 목숨을 바친 희생이 바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룬 힘이었고 지금 우리가 행복하게 지내는 토대가 된 것이라 믿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은 독립운동 이후에도 위기가 있을 때마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으로 나타났다. 앞서 어랑촌 주민이 앞치마로 독립열사들에게 주먹밥을 날랐던 것처럼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린 학생들을 위해 광주 시민은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종로, 청계천의 상인도 주먹밥을 만들었다. 이 모든 주먹밥은 자발적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졌을 것이다. 위기 때마다 국민이 하나가 되어 누군가는 스스로 깃발을 들고 누군가는 기꺼이 주먹밥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다친 사람을 치료하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유적지를 돌아보며 내가 대한민국 국민임에 큰 자긍심을 느끼며, 나 또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