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22> 재영 책수선 배재영 대표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세상 단 한 권 나만의 책 복원…추억은 살리고 낡음은 걷어드려요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1-09 19:38:24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미국 대학원서 북아트·제지 공부
- 세월 자취 묻은 책·지류 등 수선
- 사연 담긴 그림책 등 의뢰 꾸준
- “훼손된 책에 담긴 시간의 흔적
- 그 매력에 매료돼 이 일 택했죠”

대학 시절,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한 권 두 권 사서 읽었다. 처음 몇 권은 세로 2단 편집, 그 다음 몇 권은 가로 편집, 그 다음부터는 출판사가 다르다. 필자가 책을 사는 동안 본문 편집 형태가 바뀌고, 판권이 다른 출판사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이도 두께도 들쭉날쭉한 상태로 꽂혀 있다. 영 폼이 안 난다. 하지만, 새로 출간된 전집세트로 바꿀 생각은 없다. 필자의 ‘토지’는 차비 아끼느라 걸어 다니고, 점심 굶어가면서 모은 돈으로 책을 사 읽었던 시간의 증명이다. 구입한 날짜와 다 읽은 날짜가 적혀 있고, 밑줄이 그어져 있다. 낯선 토속어는 국어사전을 찾아 뜻을 적어 둔 메모도 있다. 그 책을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든 오래 간직하고야 말 것이다.

재영 책수선 배재영 대표의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만났다. 책 수선이라니! 책을 사자마자 마음이 급해 근처 카페로 가서 읽었다. 무너진 책, 그 책의 주인들, 낡은 책을 수선하는 재영 대표의 마음, 파손 형태와 수선된 후의 책 사진…. 이런 책을 쓴 작가라면 무조건 만나고 싶어 연락을 했다. 현재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 바쁘지만 서울까지 가겠다고 하니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재영 책수선 대표를 서울에서 만났다.

■ 낯선 직업, 책 수선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재영 책수선’ 작업실에서 배재영 대표가 책 수선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작업실을 찾아가는 동안 스마트폰의 길 안내를 받았다. 직진, 좌회전, 우회전 하며 성미산로 15길을 찾아갔다. 도착해서 보니, 랜드마크가 될 만한 큰 건물이 없는 주택가였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번지수를 확인했다. ‘재영 책수선’이라는 간판도 잘 안 보인다. 그 과정이 마치 서가에서 책을 찾는 기분이었다. 여기 어디쯤 꽂아두었는데 하면서 제목 하나하나를 짚어가는 그 기분 말이다. 책 표지를 넘기듯 문이 열렸고, 배 대표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책 수선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난 건 필자로서도 처음이다.

배 대표는 198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순수미술과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2014년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북아트와 제지(Papermaking)를 다시 공부했다. 졸업 후 대학교 내 ‘책 보존 연구실’에 취직해 3년6개월간 일했다. 파손된 책과 희귀서적을 직접 수선하고, 보존방법을 찾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다루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2000여 권의 책을 수선했다고 한다.

2018년 2월부터 서울 연남동에서 ‘재영 책수선’을 운영했다. 150여 권을 수선했고, 25권이 대기 중이며, 현재로서는 공개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의뢰 받아 작업 중이다. 아쉬운 대로 두꺼운 책의 낡은 겉 표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볼 수 있었다. 도무지 벗겨질 기미가 안 보이는 표지에 물칠을 조금씩 하면서 조심스럽게 긁어내는 작업이다. 보는 사람이 답답하다. 저걸 언제 다하나 싶다. 긁어낸 표지 부스러기가 헝겊 보푸라기처럼 책 옆에 조금씩 쌓여갔다. 책 수선이 뭔가 감성적인 일이 아닐까 싶었는데, 고도의 정밀한 과학실험처럼 보였다. 작업 중에는 항상 마스크를 쓴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재영 책 수선 / 위즈덤 하우스 / 2021
그는 ‘책 보존가’ ‘지류 보존가’라는 정식 명칭 대신 더 많은 가능성을 위해 ‘수선’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수선’이라는 말이 훨씬 정겹게 다가온다. 책 수선이라는 일이 얼마나 낯선지 책 속 한 대목이 말해준다. “사업자등록을 하기 위해 세무서를 찾아갔을 때는 난생 처음 듣는 ‘책 수선’이란 직업 때문에 이걸 어느 업종 코드로 분류해서 등록해야 할지, 과연 예술이냐, 서비스냐, 출판이냐 등등을 놓고서 세무서 직원끼리 작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웃지 못할 상황을 지켜보며 앞으로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감당하고 이해시켜야 할 벽이 어느 정도의 두께인지 막연하면서도 총체적으로 와 닿는 기분이었다. (결국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되었다.)” 법이 서비스로 분류했다지만, 필자는 책 수선을 예술의 자리에 놓고 싶다.

■ 책 주인에게는 모든 책이 희귀본

오래된 책 ‘해리포터’의 수선 전(위쪽)과 후의 사진. 재영 책수선 제공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으면서 그가 하는 작업만큼 궁금했던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들춰보았기에 친구 같은 국어사전, 표지도 속지도 낡을 때로 낡았지만 변함없이 간직하고 싶은 그림책, 대를 이어 물려가며 읽는 성경, 마음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소설과 만화 등의 책. 수 십 년의 세월이 지나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할머니의 일기장, 오랜 세월 함께 책을 읽어 온 책갈피, 곰팡이가 피어버렸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30년 묵은 결혼사진 앨범 등의 지류. 책 속의 사연들마다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 하나하나가 주인에게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본이기에 재영 책수선은 섬세한 손길로 최선을 다한다. 그 사연들을 읽는 동안, 기록의 운명을 타고 난 인간은 어쩌면 종이 위의 글과 사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배 대표는 ‘반려책’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그는 서점에서 책을 살 때 일부러 사람들의 손때가 묻고 서서히 파손의 기미를 보이며 가장 위에 놓여있는 책을 고른다. 그의 눈길을 책에서 읽어보자. “나는 책을 수선하기 전에 훼손된 부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그 모습들을 수집하기 위해 책 수선을 한다고 말할 정도니까. 그 이유는 아마도 축적된 시간의 흔적에 매료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태양빛이, 공기 중의 물방울이, 또 사람의 손끝이 닿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책의 형상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그 인과관계가 만들어내는 모습은 늘 흥미롭다.”

배 대표는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수선해서 간직하고 싶은 책이 한 권씩 떠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필자의 마음속에도 반려책 제목이 하나 둘 떠올랐다. 아끼는 책을 위한 꿀팁도 챙겼다.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고 핸드크림도 바르지 말고 책을 만질 것! 깨끗한 손이 세심하고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는 최고의 감각이란다.

책 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3. 3[시사난장] 풀숲에 버려진 ‘영도다리의 뼈’
  4. 4“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5. 5“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6. 6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7. 7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8. 8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9. 9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10. 10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1. 1“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2. 2“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3. 3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4. 4李 비판 유시민에 김민석 “대응 불필요”
  5. 5[속보] 장동혁 “투표지 육안으로도 많은 문제…특검, 진실 밝혀야”
  6. 6李 대통령 지지율 1%p 하락 39%…민주 국힘 경합
  7. 7靑 “DMZ 지뢰폭발 사건 북한의 사과와 조치 요구”
  8. 8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9. 9국민의힘 곽규택 의원 등 동구 주요 당직자, 북항 돔구장 정부 공모 참여 환영
  10. 10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1. 1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2. 2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3. 3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4. 4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5. 5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6. 6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7조 역대 최대…반도체로만 106조(종합)
  7. 7롯데, 영도대교 복원 인연 축제로 잇는다
  8. 8AI드론으로 참치 찾는 선박 부산 출항
  9. 9‘덕후 천국’ 부산에 떴다…롯데百 전국 첫 IP 전문관
  10. 10가계대출 금리 5% 턱밑…고정형 주담대 사상 첫 5% 뚫어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3. 3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4. 4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5. 5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6. 6기말고사에 EBS 유사 문항, 처음 아니었다
  7. 7착취 당한 男 장애인 구조해도…부산엔 임시거처조차 없다
  8. 8국회 복지위 ‘침례병원 정상화’ 정부 결단 촉구
  9. 9검증 체계 없는 유가보조금…줄줄 샌다
  10. 10본사 비대위·퇴직자, 지광 고소…실질경영자에 ‘체불 책임’ 추궁
  1. 1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2. 2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3. 3“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4. 4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5. 5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6. 6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7. 7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8. 8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9. 9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10. 10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우리은행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한국문학관 기행
바람처럼 자유로운 김홍신 문학을 ‘건축언어’로 표현한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송현화-Magic Airs
지나-마음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9일 (음 9월 19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8일 (음 9월 18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지리산 연곡사를 찾아 시 읊은 매천 황현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