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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49> ‘백반기행’ 허영만 화백의 ‘팔도 백반 이야기’

“어머니 손맛에 가장 가까운 백반…맛집 필살기는 간 조절이더라”

  • 최원준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1-11 19:23:01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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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국·나물·장아찌 소박한 밥상
- 고기나 생선요리 더하면 ‘든든’
- 거창하지 않지만 최고의 상차림

- “조미료 없이 본재료 맛 살려야
- 소금 잘 활용하면 깊이 있는 맛
- 여수서 자라 미식기행 가능해”

요즘 우리 전통밥상의 기본인 ‘백반’에 대해 관심이 많이 쏠린다. 백반(白飯). 단순하게 한자를 풀어보면 ‘흰밥’을 뜻한다. 하얀 백미로 지은 쌀밥.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슬고슬한 ‘한 고봉’의 따뜻한 밥.

허영만 화백이 최원준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맛있는 백반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백반 속에 들어 있는 우리 전통 음식문화의 너비는 드넓기만 하다. 원래 백반의 기본은 탕반(湯飯) 즉 밥과 국, 그리고 장(醬), 지(漬), 초(醋)로 차려지는 단순한 밥상이다. ‘장’은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뜻하고 ‘지’는 절이고 삭혀 낸 채소를, ‘초’는 식초를 뜻한다.

때문에 예부터 장류로 끓여낸 국과 김치를 비롯한 장아찌 류, 식초로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 등과 함께 오르던 소박한 밥상이 백반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밥상, 때문에 아무 것도 없이(白) 밥(飯)만 차려놓은 듯 조촐한 밥상이 백반이라는 것.

여기에 고기나 생선을 이용한 요리 한 접시가 함께 오르면 든든한 한 상이 차려진다. 그래서 상에 오르는 요리가 무엇인가에 따라 ‘불고기 백반’도 되고 ‘생선구이 백반’, ‘회 백반’도 된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러면서도 절대 모자람이 없는 조화로운 밥상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반은 가장 서민적인 밥상이다. 제철에 주변에서 나는 식재료를 집에서 담가놓은 양념들로 저장하거나 발효시키거나 조물조물 무쳐서 무심하게 차려낸다. 그러나 전혀 물리지도 않고 모자라다 생각되지도 않은 ‘담백(淡白)한 맛’, 백(白)의 맛이다.

포항 꽁치당구국 백반. 국제신문DB
왜냐하면 백반에는 어머니의 체취가 강하게 묻어있기에 그렇다. 대대로 백반을 차려주었던 이는 대부분 한 가정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음식으로 입맛을 길들였던 모든 자식에게 어머니 손길의 백반은 세상의 어느 음식과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밥상이었을 것이다.

요즘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어머니 손맛의 백반을 찾아다니는 이가 있다. 만화로 우리네 음식문화를 인문학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식객(食客)’을 펴냈고, 근래에는 ‘백반기행’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허영만(75) 화백이다. 우리 전통의 백반에 관한 그의 생각을 묻기 위해 허 화백을 만났다.

우선 소탈한 그의 품성을 접하며 ‘우리 백반과도 많이 닮아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짜고짜 “선생님에게 있어 백반은 무엇입니까?”라며 ‘백반’에 대해 물었다. “가장 어머니의 밥을 닮은 밥, ‘집 밥’ 같은 밥이 백반”이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저는 ‘백반은 어머니’라고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백반은 ‘어머니의 음식과 제일 가까운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들은 그날그날 시장에 가서, 제철에 가장 싸고 신선하고 영양가가 많은 식재료를 사서 즉석에서 가족의 식단을 정성스레 마련합니다.” 허 화백의 설명이다.

“전통적인 백반집도 마찬가지죠. 어느 백반집의 밥상이라도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 맛이 한 가지씩은 보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조리법에 보편적인 상차림이라서 그렇겠지만, 여하튼 그래서 백반은 우리들 어머니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음식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어머니의 밥’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기획했던 것이 백반기행. 백반이라는 형식을 갖춘 음식으로 3년을 진행하다 보면 식당 선정에 애로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음식의 숫자는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어머니들의 손맛이 다르니까요. 어머니로부터 훈련받은 입맛에 따라 평생을 먹고, 또 대를 이어서 어머니의 솜씨로 아이들에게 만들어 먹이게 되는 것이 백반이기에, 백반은 음식의 요체이자 무궁무진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라고 답을 한다.

맛있는 백반의 기준을 허 화백은 음식 자체의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백반이라고 말한다. “내가 조미료를 싫어하는 이유는 모든 음식의 맛을 획일적으로 만들기 째문이죠.” 잘 된 음식은 양념이 본 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을 넘지 않는 조화로움에 있다는 것.

“조미료 안 쓰고 만든 음식은 음식 자체의 맛과 향이 다 살아있습니다. 조촐한 밥상이라도 그런 음식 한 가지만 있으면 마치 밥상이 꽉 차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맛을 음미하게 되고, 그렇게 음식을 즐기다 보면 그 음식 맛의 본연을 알게 되는 것이죠.”

팔도의 백반집을 다니다보면 지방마다 백반의 차이점이 있었을 것이다. 허 화백은 그 차이점을 ‘간’에서 찾는다. 특히 소금을 잘 활용하는 지방이 맛의 너비와 깊이가 있다고 말한다. 저장방법이 발달하니 그 발효법 또한 발달한다. 그런 이유로 각양각색의 음식이 전체적으로 다양하고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의 기본은 간“이라며 “간을 조절 잘한 집의 음식은 마치 예술작품과도 비교될 정도”라고 강조한다.

어머니께서 잘해 주신 음식과 잊지 못하는 음식을 물었다. “고들빼기김치가 참 맛있었어요. 나는 고들빼기의 쓴 맛을 좋아해서 소금물에 쓴 맛을 살짝만 빼서 생김치를 담가 주셨다”고 기억한다.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8남매 총 11명의 식구가 큰 상을 펴고 밥을 먹었는데, 당시에는 식사시간이 마치 전쟁터 같았지만 지금에는 오롯이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고. “겨울이면 큰 양푼에 양갱을 만들어요. 이 양갱을 마루에 두면 무시로 칼로 뚝뚝 잘라 먹었던 기억이 나요. 고등어 철에는 어머니가 고등어를 사다가 집에서 말려요. 그러면 어김없이 파리가 끓어 나무젓가락으로 고등어 살을 뒤져 구더기 빼내고 하던 기억도 나네요.” 마치 한 시절을 회상하듯 식구들과 함께 했던 식사시간을 반추하는 그의 눈에서 아련함이 그윽하다.

허 화백의 고향은 여수다. 그는 ‘식객’이나 ‘백반기행’ 등의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수라는 자연 환경에서 자랐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고향’과 ‘어머니’는 한 개인의 입맛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향토음식의 필수 전제가 바로 고향과 어머니의 손맛이다. ‘팔도백반’이란 각 지방의 향토음식을 꾸준하게 발로 기록하고 있는 허영만 화백. 허 화백을 통해 지금 우리의 넉넉한 밥상은 한창 발현되고 있다.

우리 전통 밥상의 기본이자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던 밥상, 백반. 지금은 시대상황에 맞춰 그 형식이 다양하게 변화하긴 했어도, 싼값으로 제철 음식을 푸짐하게 거둬 먹이는 어머니의 마음이 백반의 마음이다. 또한 팔도의 음식문화를 품고 있으면서 우리 민족의 검소하고 절제된 반상문화를 지키고 있기도 하다. 오래도록 늘 함께해야 할 우리의 밥상인 것이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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