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펴낸 규율·감시 보고서
- 과거 권력 공개처형으로 힘 과시
- 근대 고효율 징역형으로 바뀌어
- 벤담 고안 ‘판옵티콘 감옥’ 주목
- 원형으로 된 교도소 중앙감시탑
- 죄수들이 자기검열하게 만들어
- IT 초연결사회 ‘빅브라더’ 키워
- 개인 일상 낱낱이 기록하고 통제
외국인이 SNS에 곧잘 올리는 한국 체험담 중 하나. 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 타인 물건이 손을 타지 않는 걸 보고 놀랐다는 내용이다. 한국민 도덕성이 높고, 치안이 잘 유지되는 증거라는 호평을 덧붙인다. 하지만 그들은 이 풍경을 보이지 않는 힘이 내려다본다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그 힘 이름은 ‘규율·감시’. 우리 내외부에 산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1975년 펴낸 ‘감시와 처벌’은 규율·감시에 관한 보고서다. 1부 신체형, 2부 처벌, 3부 규율, 4부 감옥으로 짜였는데 부제가 ‘감옥의 역사’. 영국 법철학자인 제러미 벤담(1748~1832)이 제창한 ‘판옵티콘 감옥’에서 영감을 받았다. 푸코는 3부에서 담론 ‘판옵티콘 권력(Panoptisme)’을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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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후벤투드 섬에 자리 잡은 판옵티콘 감옥 프레시디오는 1926년 독재자 제랄도 마차도가 건립했다. 주로 정치범(카스트로 형제)을 가두었다. 1967년 영구 폐쇄돼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
■ 감시, 당신도 피할 수 없다
푸코는 ‘권력관계’ 전공자다. 부모와 자식 간엔 생물학·사회학 관점에서 볼 때 두 관계가 존재한다. 각각 혈연과 권력인데 푸코는 단연 후자에 관심을 둔다. 그는 의사-환자, 교사-학생 관계 역시 권력으로 푼다. 정상인-비정상인 구별에도 그런 권력이 작동한다고 봤다. 대립하는 두 인문 가치인 이성-광기, 마찬가지다. 인간과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상징물이 형벌제도. 푸코는 처벌이 범죄자 신체와 빚어온 특이한 역사를 들여다봤다. 형벌 형태가 신체형에서 징역형으로 변하는 과정과 의미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중세인은 신앙세계에서 벗어나 근대로 걸어 들어왔다. 푸코가 보기에 근대인은 규율과 감시에 순종했다. ‘길드는 신체’를 가진 그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류 신체를 통제하는 권력이다. 정부나 방역당국은 서열 2위 권력쯤 되려나. 2년여 전 이 왕관을 쓴 바이러스가 납신 탓에 억지로 쓰게 된 방역 마스크가 이젠 피부처럼 느껴진다.
깜빡 잊고 노마스크로 거리에 나서자마자 내외부 감시망이 작동한다. 타인 눈총이 쏟아지고, 내면 감시 벨이 울린다. 방역이 신체를 길들인다며 거부하는 역작용도 만만찮다. 양날 검 같은 규율과 자유가 맺는 관계를 ‘감시와 처벌’이 조명한다. 저자는 이랬다. “감시는 감옥 내 수형자만 받는 게 아니라 일반사회에 사는 보통 사람도 피할 수 없다.”
푸코는 1968년 프랑스 사회를 달군,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68운동’을 지켜본 뒤 권력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가 된 그는 1970년 연구를 본궤도에 올렸다. 수년 뒤 결론. “권력은 대상을 은밀하게 통제하고 나중엔 대상 스스로가 감시하도록 순응케 한다.” 현대 IT(정보통신)는 ‘빅브라더’다. 개인을 낱낱이 기록한다. 푸코는 미래를 내다봤다. 올더스 헉슬리(1894~1963), 조지 오웰(1903~1950)처럼.
■ 호화로운 신체형?
책은 파리에서 1757년 3월 2일 벌어진 공개 처형을 생중계하면서 첫 장을 펼친다. 군중은 처형 과정을 축제처럼 즐겼다. 범죄자는 프랑스 왕(루이 15세) 암살미수범 다미엥이다. 처벌 의지는 죄인이 죽은 뒤에도 작용한다. 살았을 땐 사지 절단으로 처형하고, 시신으로 변해도 이 세상에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며 화장해 재를 바람에 날렸다. 무시무시한 신체형을 통해 군주는 막강한 자기 힘(권력)을 과시한다. 군중에게 범죄 경각심도 일깨우면서. 당시 공개 처형은 권력이 수형자 신체를 대상으로 펼치는 ‘정치·사법 쇼(스펙터클)’였다. 저자가 ‘호화로운 신체형’이라고 표현한 이유.
사법은 죄질에 따라 받아야 할 고통 총량을 계산한다. 대역 죄인은 최대한 고통을 줘야 했기에 온갖 끔찍한 고문을 짜냈다. 신체형 집행에 많은 사람을 동원해 권위를 세웠다. 군주-법관-신부-군중-수형자가 같은 무대에 선 배우. 각자 맡은 사회 역할을 연기하기에 바빴다.
근대 들어 신체형은 규율 위주인 징역형으로 바뀐다. 배경은 여러 가지. 우선, 수형자도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상이 널리 퍼졌다. 이성을 앞세운 계몽주의 시대였으므로. 저자는 구조주의자였다. 신체형은 권력자에게 부담스러웠다. 군중이 범죄자를 옹호·비난하는 와중에 폭동·혁명 같은 반체제 사태가 터질 우려가 컸다. 죽기 직전 수형자가 끝으로 내뱉는 말이 권력 불신이나 사회 불안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잖았다. 권력은 은밀하면서도 고효율로 유지돼야 하는 법. 자연히 징역형이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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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가 2007~2009년 영국 런던 뉴먼가에 위치한 로열 메일 건물의 벽에 그렸던 ‘ONE NATION UNDER CCTV’. ‘CCTV 앞에 놓인 국가’라는 제목과 그림으로 감시 규율 사회인 현대를 꼬집었다. |
■ 판옵티콘과 규율 권력
징역형 특징은 ‘감시’. 권력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범죄자 신체를 감옥에 가둬 통제할 수 있다. 살벌한 고문이 아니라 시간표 준수 같은 무형 규율로 범죄자 신체를 관리하니 폭력성도 준다. 징역형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내니 경제성도 높다. 푸코는 징역형 장점을 하나 더 내세웠다.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는 최종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교화해 사회로 돌아가게 한다는 데 둬야 한다.’
근대 감옥은 감시체제로 굴러가게 됐는데 여기에 바탕 이론을 제공한 이가 영국 공리주의 법학자인 벤담. 그가 고안한 판옵티콘 감옥은 중앙감시대가 바깥 원형 감옥을 감시하게 만든 건물이다. 이런 구조가 규율 권력이다. 수형자 신체를 동작 태도 속도 같은 단위로 나눠 통제한다. 푸코는 자신 권력 이론에 영감을 준 벤담을 “칸트나 헤겔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프랑스 유물론 철학자 라 메트리(1709~1751)도 끌어들였다. 그가 주창한 ‘인간기계론’에 기반을 두고 푸코가 한 말. “규율은 (유용성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신체의 힘을 증가시키고, (복종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동일한 신체의 힘을 감소시킨다.”
푸코는 감옥 속 신체 담론을 근대 사회로 확대한다. 이 규율 권력 사회는 겉보기에 민주주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체를 기계처럼 취급한다고 봤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성을 잘 짚었다. 자본주의 권력은 노동자 신체를 관리해 생산력을 뽑아낸다. 근태·실적을 평가해 기록한다. “개인을 자료 기록 망에 집어넣어 감시 영역에 데려다 놓는다.”(3부 2장 효과적 훈육 방법) 이런 권력은 소유에 만족하지 않고 힘을 행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교도소장-수형자, 사장-직원, 교사-학생 같은 상하 규율 관계가 고정되지 않고 변화한다고 봤다. 푸코는 그 형태는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현대사회에서 권력인 부와 신분이 세습되는 걸 본다. 푸코는 알았을까. 전 세계에 ‘빈익빈 부익부’가 판을 친다. 신분을 상승시킬 사다리를 걷어찼다.
■ 직시하고 질문하라
푸코는 두 가지 이유에서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철학자로 남는다. 첫째, 그는 ‘감시하는 권력’이라는, 강력하면서도 새로운 인식 창문을 근대 이후를 향해 열었다. 개인 단체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은 더욱 은밀한 규율 기술, 정교한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한 채 날로 힘을 키워 가지만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다.
푸코는 권력이 ‘으르릉대는 소리’를 들으라고 외쳤다. 존재를 인식하는 건 실체를 파악하는 첫 몸짓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안전과 감시라는 양가감정이 건강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이버 유목민이라면 무엇이 이 시대 권력인가, 나는 아무런 인식 없이 무력하게 조종당한 채 살아가지 않는가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 공공·개인 영역에서 나에게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직시하고 감시해야 할 의무가 어깨 위에 놓였다.
둘째, 푸코는 차별이 가진 폭력성을 알려준 작가였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증명해 보였다. 흑백논리와 이분법에 상처받는 개인이 타인을 향해 같은 칼날을 드러내는 모순이 보인다. 푸코가 그 시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