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가 꿈꿨던 현대미술 거장
- 연재글 모아 세번째 에세이집
- 작품세계 근간에 관한 이야기
- 그 문장엔 시각적 색채감 여운
이우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일 것이다. 미술에 문외한이라면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경남 함안 출신인 그의 이름은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으로 ‘이우환 공간’이 생기면서 더욱 익숙한 이름이 됐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이 이우환공간을 다녀간 사실이 전해지면서 팬클럽 ‘아미’ 회원에게 성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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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환 작가가 지난 2016년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에서 작품 ‘대화’를 설명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을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최소한의 표현과 여백의 미를 담은 작품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오직 점 하나만 찍혀 있는 그의 그림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가 열광한다. 아직 그의 이름이 낯설고 아무리 그림을 들여다봐도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면, 작가 본인이 직접 쓴 글에서 그의 사유를 들여다보자. 현대미술의 세계적인 거장이자 철학자 이우환의 새 책 ‘양의의 표현’이 길을 인도해 줄 것이다.
책 ‘양의의 표현’은 저자 이우환이 2002년 펴낸 첫 에세이 ‘여백의 예술’과 2009년 ‘시간의 여울’에 이은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작가가 월간 ‘현대문학’에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연재한 글을 주축으로 틈틈이 메모해 온 단상과 강연 원고, 1960년대 말부터 집필한 미발표 원고 등을 함께 담았다. 말 그대로 이우환 작품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사유를 집대성한 글모음이라 할 수 있다.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전위예술운동인 ‘모노파’를 이끌었다. 여백으로 시작해 여백에서 마무리되는 그의 작품세계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모노파란 만드는 것에 제동을 걸고, 만들지 않은 것을 끌어들이는 시도였다. 즉 만드는 것과 만들지 않은 것을 관계시키는 획기적인 운동이었으나, 당초에는 근대적인 조형 사고에 지나칠 정도의 격렬한 파괴 행위나 진기한 아이디어, 가공하지 않은 소재의 난발이 두드러졌다.(108쪽)” 초기만 해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는 이제 세계 주요 비엔날레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세계 무대에 널리 알려진 한국 작가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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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의 모습. 국제신문 DB |
책에 담긴 글 64편은 다섯 개 장으로 분류돼있다. 1장은 작업의 주변이나 일상생활에서 자극받은 것에 대한 문장을 모았고, 2장은 작가로서의 제작 입장을 둘러싼 논술, 3장은 미술가의 상념이나 예술에 대한 견해를 담았다. 4장은 저자의 미술 운동의 관계나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미술에 대한 조망, 5장은 다양한 아티스트와 그들의 작업을 통해 알게 된 것에 대한 탐색을 주제로 한다.
제목에 쓰인 ‘양의’는 동양 철학에서 음과 양,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 캔버스에 그림으로 표현된 것뿐 아니라 여백의 의미까지도 고려한 ‘균형’ 잡힌 그의 그림 철학을 담았다. 이 책의 곳곳에서 ‘양의’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코로나19에 대해 “인간이 외부로부터의 협박(코로나19)을 받으며 안쪽으로 움츠러든 사이, 문명에 상처 입고 황폐해졌던 자연이 단숨에 치유돼 순식간에 살아났다(64쪽)”고 말한다. 코로나19가 인류에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가져왔지만, 자연의 소생과 함께 인간도 양의성을 깨닫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해석이다.
이 책은 화가가 되기 전까지는 문학가를 꿈꾼 이우환의 문학가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 자신도 “미술과 문필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며 저마다 독특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장 표현에서 시각적 색채감이, 미술 표현에 탐독의 여운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396쪽)”이라고 전한다. 그 때문일까.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꽤 많다. 그의 생각을 찬찬히 읽고 나면 작품에 대한 호기심에 마음이 절로 일렁인다. 이번 주말은 봄볕을 벗 삼아 이우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