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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55> 강릉 ‘초당순두부’

간수는 깨끗한 강릉 바닷물 … 담백한 순두부냐 칼칼한 전골이냐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4-12 19:30:1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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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난설헌과 허균의 아버지
- 허엽의 호에서 이름 딴 두부
- 6·25때 남편 잃은 여인들이
- 호구지책으로 만들어 팔다가
- 강릉 대표음식으로 자리잡아

- 불린콩 곱게 갈아 오래 끓인 뒤
- 깨끗한 바닷물을 넣어 굳히면
- 덩어리 몽글몽글 초두부 완성
- 흰 순두부·매콤한 전골이 기본
- 요즘은 짬뽕순두부도 인기

어린 시절 새벽이면 “딸랑딸랑” 늘 꿈결처럼 울리던 종소리를 듣고는 했다. 뒤이어 “조포 사이소~”라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따른다. ‘조포 장수’다. 이웃 새댁이 대접을 들고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조포 장수를 부른다. “아저씨예~ 조포 한 모 주이소.” 아마도 이 조포로 보글보글 맛있는 된장국을 끓일 요량일 것이다.
양념장을 올린 강릉의 ‘초당순두부’. 초당(草堂)은 조선시대 삼척부사를 지낸 허엽의 호에서 따왔다.
한때 온 가족의 따뜻한 아침 식사에 한 자리를 차지했던 음식, 조포. 부산을 비롯한 경남지역에서 두부를 달리 부르던 말이다. 이 조포란 단어는 오래전 ‘두부를 만들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두부의 경남지역 방언처럼 인식되다가 종내에는 사라져 버린 단어가 되었다.

오래전 두부를 일컬어 ‘포(泡)’ ‘두포(豆泡)’라 했다. 또 두부를 만드는 것을 ‘조포(造泡)’라 했다. 조선조 16세기 이후에는 주로 사찰에서 두부를 만들었는데, 왕가의 제례 등에 쓰여질 두부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올리는 사찰을 조포사(造泡寺)라고 불렀다.

우리 민족이 ‘두부’를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 즈음일 것이라 사가들은 이야기한다. 고려말 유학자 이색의 시문집 ‘목은집’에 1365년(공민왕 14) 과거를 치른 후 두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 학자인 서거정의 ‘사가집’에는 ‘보내온 두부는 서리보다 더 하얀데, 잘게 썰어 국 끓이니 연하고도 향기롭네’라는 구절도 전해온다. 이처럼 두부는 여러 고문서에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좋은 날’에 먹거나 ‘고마운 이’에게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순두부 전골이 끓고 있다. 전골에는 순두부와 정구지 팽이버섯 등 채소와 당면을 넣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 여러 가지 두부 제조법과 다양한 조리법이 발달하면서 서민의 영양식으로 부담 없는 음식이 됐다. 그 중 각 지역의 독특한 두부 요리를 소개하자면, 서울의 ‘추어 두부’, 대전의 ‘두부두루치기’, 화순의 ‘흑두부’, 파주의 ‘장단콩 두부’ 등이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추어 두부’는 가마솥에 모두부와 미꾸라지를 넣고 불을 때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익는다. 이를 먹기 좋게 썰어낸 음식이다. ‘두부두루치기’는 돼지두루치기의 돼지고기 대신 두부를 넣고 매운 양념장으로 자작하게 끓여내는 음식이다. ‘흑두부’는 서리태 등 검은콩으로, ‘장단콩 두부’는 장단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곳은 강릉의 ‘초당순두부’다. 초당순두부는 강릉시 초당동의 초당두부촌에서 만들어 내는 순두부를 말한다. 순두부 이름인 ‘초당(草堂)’은 조선시대 삼척부사를 지낸 허엽의 호에서 따왔다. 허엽이 부사청 앞마당의 깨끗한 샘물에서 콩을 갈아 끓여내고 강릉 앞바다의 바닷물을 간수 삼아 굳혀낸 두부이다. 허엽은 홍길동 전을 쓴 허균과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초당두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먹을 것이 부족했던 초당마을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 남편을 여읜 여인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두부를 만들어 팔게 된다. 새벽이 되면 마을 여인들은 잘 굳힌 두부를 대야에 이고 강릉 시내로 팔러 다녔다.

마을이 강릉 시내와 가까운 곳에 있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몇몇 남정네가 있는 집들은 수레를 끌고 시내 곳곳을 돌며 팔기도 했단다. 때문에 집집마다 새벽에 바닷물을 길어와 두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 음식이 바로 강릉의 향토음식인 ‘초당두부’다.

모두부와 양념장.
현재 초당마을에는 20여 곳의 두부 음식점이 옹기종기 모여 두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초당두부는 하루 전날 미리 불려놓은 콩을, 봄가을 8시간, 여름에는 6시간, 겨울에 12시간을 불린다. 불린 콩을 곱게 갈고 고운 천에 걸러내어, 그 콩물을 가마솥에 넣고 뭉근히 끓이다가 강릉 앞바다의 깨끗한 바닷물(간수)을 넣으면 두부가 완성된다.

이때 따듯한 콩물을 ‘촛물’이라고 한다. 여기에 바닷물을 넣으면 덩어리가 몽글몽글 엉기는데 이것을 ‘초두부’라 한다. 처음 초(初)를 써 ‘초두부’다. 말 그대로 처음 만들어진 두부란 뜻이다. 이 초두부가 일반적으로 흔히 불리는 순두부다. 그래서 초당마을에서는 순두부를 초두부라 부른다. 이 초두부에 보자기를 써 간수를 뺀 것이 연두부고, 이 연두부를 두부 틀에 넣고 물기를 빼면 일반 모두부가 된다.

초당두부는 집마다 두부를 만드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 모두 오래도록 두부를 만들어왔기에 나름의 맛있는 두부 제조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조리한 음식들 또한 그 맛이 각기 달라 찾아 먹는 재미가 있다.

음식 이름과 차려주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비슷한 음식인데도 식당마다 순두부 전골이나 두부찌개, 얼큰 순두부 등으로 달리 적시하고 있다. 요즘은 초당두부에서 분화된 ‘짬뽕 순두부’도 지역의 특화 음식으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원조라는 순두부 식당에서 순두부 백반과 순두부 전골로 상을 받는다. 순두부를 한술 뜬다. 우선 슴슴하다. 그리고 몽글몽글하면서도 부드럽다. 부산의 칼칼하고 자극적인 순두부찌개와는 확연히 다르다. 한 번 더 떠먹어본다. 담백함 속에서 고소한 맛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연이어 몇 술 더 먹으니 속이 편안해지고 입 안에서는 고소함이 진하게 돌고 돈다. 부드럽고 정갈함에다 오래도록 음미하게 되는 깊은 맛이 있다. 양념장을 살짝 올려 먹으니 간간한 장맛에 감칠맛과 고소함이 그 정점을 찍는다. 어떻게 먹든지 간에 신선하고 건강한 맛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판매할 두부는 그날 새벽에 직접 만들어 내기에 그럴 만하다.

순두부를 먹다 보니 이윽고 순두부 전골이 보글보글 끓는다. 매콤한 냄새가 솔솔 난다. 찌개 안에는 순두부와 정구지 팽이버섯 등의 채소와 당면 등이 들어앉았다. 순두부가 밍밍하다 싶은 사람들이 먹기에 좋을 정도로 칼칼하면서도 진한 해물 육수의 맛이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순두부 백반에 함께 나온 비지찌개는 짭조름한 맛이 또한 좋다. 비지 특유의 깔깔하게 거친 식감도 재미있다. 토속 된장국도 한술 뜬다. 혀를 긴장시킬 정도로 강한 짠맛이 돈다. 그런데 중독성이 있어 곧이어 한술 더 뜨게 만든다.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집에서 먹던 오래전 된장국 맛이다. 집에서 담근 간장 뺀 된장으로 끓여 먹는 멀건 된장국, 그래서 그리웠던 추억의 된장국이다.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초당두부. 새벽녘 여인네들의 오롯한 정성으로 끓여내야만 하는 강릉의 토속음식이다. 밤을 새우는 지난한 노력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동해의 맑은 바닷물을 직접 길어 간수로 쓰기에, 더욱 그 맛이 깊은 ‘슬로우 푸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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