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원다방 아지트 삼아 음악교류
- ‘무정항구’ 노래로 1954년 데뷔
- 아픈 현대사 다룬 곡 다수 발표
- 어디서나 백년설 노래 즐겨불러
- ‘마도로스 항로’ 등으로 큰 인기
부산가요사의 기틀을 쌓았던 대중음악인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여러 인물을 단숨에 떠올릴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수 남백송(南白松·1935~2015)이라는 이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생지는 밀양 삼랑진이고 본명은 김지환(金志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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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백송(오른쪽)이 부산에서 활동하던 시절 가깝게 지낸 방운아와 함께 찍은 사진. |
청년 시절부터 대중음악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깊어 선배가수 백년설의 노래를 늘 즐겨 불렀다. 그에게 백년설 선생의 노래는 마음속에서 하나의 롤 모델이 되었다. 실제로 남백송의 창법은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감추어져 있는 백년설의 창법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가 부르는 백년설 노래를 듣는 가요 팬들은 새로운 후계자가 탄생했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실제로 남백송은 무대공연에서도 백년설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가수 백년설 선생이 1963년 은퇴 공연을 개최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버리자 그 공백은 몹시 크고 깊었다. 하지만 남백송이 그 공백을 훌륭히 채우고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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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백송 가요히트앨범. |
남백송은 20대 초반 부산으로 옮겨와서 살았다. 당시 부산에는 도미도, 미도파, 빅토리, 유니온, 코로나, 아리랑 등 여러 레코드사가 경쟁적으로 음반을 발매하고 있었다. 1950년대 초반 남백송은 부산에서 동향 친구인 작사가 월견초(서정권)의 소개로 작사가 천봉, 야인초(김봉철), 작곡가 유금춘 등과 어울리며 여러 대중음악인과도 교류했다. 첫 데뷔곡은 부산항을 다룬 ‘무정항구’(월견초 작사, 유금춘 작곡, 1954)였다.
그들이 주로 모이던 아지트는 부산 초원다방이었다. 거기서 도미도레코드의 설립자 한복남, 빅토리레코드의 운영자 백영호, 미도파레코드의 설립자 임정수 등을 두루 만나며 친교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어느 날 월견초의 노랫말 ‘죄 많은 인생’ 원고를 보던 중 문득 작곡 영감이 떠올라 그 가사에 자신이 곡을 붙이겠노라고 제의했다. 이 작품이 꽤 마음에 들었던 한복남은 남백송을 도미도레코드사 전속가수로 발탁했다. 그때 처음으로 ‘남백송’이란 예명을 얻었는데 이것은 한복남과 천봉 두 분의 작품이었다. 사연인 즉 남백송의 ‘남(南)’은 밀양의 남천강에서 따왔고 ‘백송’은 소나무처럼 우뚝하고 큰 가수가 되라는 뜻이었다.
남백송은 부산에서 활동하던 시절, 좋은 벗을 많이 만났다. 그 중 특히 다정했게 교분을 나눈 친구는 경북 경산 출생의 가수 방운아(方雲兒·1930~2005)다. 남백송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지만 친구처럼 다정했고, 항상 어울려 다녔다. 기타도 함께 배우고, 음반 취입도 같이 할 때가 많았다. 삼랑진 고향집에도 방운아와 함께 가서 여러 날씩 지내다 오곤 했다. 비록 도미도 전속이었지만 방운아가 소속된 미도파레코드에서도 음반을 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도 백영호 선생의 인도로 음반을 발표했다. 그 어디에도 소속사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했다.
남백송의 발표 곡 중에는 부산을 테마나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노래가 많다. ‘경상도 사나이’ ‘경상도야 잘 있거라’ ‘이별의 삼등열차’ ‘정거장의 기타소리’ ‘기적소리’ ‘로맨스 부두’ ‘마도로스 항로’ ‘마도로스 박’ ‘고국 땅’ ‘단간 방 사랑’ ‘서울 간 김 서방’ 등이 그것이다. 피란살이의 서러움, 부산항, 부산역 등을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경상도 사나이’와 ‘경상도야 잘 있거라’는 같은 작품인데 음반이 바뀌면서 제목도 달라졌다. ‘이별의 삼등열차’에는 아픈 이별을 겪은 뒤 부산역을 홀로 떠나가는 참담한 심경이 담겨져 있다. ‘정거장의 기타소리’도 앞의 작품과 동일한 배경과 사연이다. 역시 부산역이 중심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
내 고향 남을 주고 타고향 찾아갈 땐 / 한 많은 인생선의 기적도 슬프더라 / 흘러가는 세월이라 세월 따라 간다마는 / 부산아 잘 있거라 삼랑진아 다시 보자/ 꽃 피고 새가 울면 다시 찾아오리라(‘경상도 사나이’ 1절)
반야월 작사, 한복남 작곡의 이 노래 1절엔 부산과 삼랑진이 등장하고, 2절에는 대구와 낙동강, 3절에는 김천과 추풍령이 시적 소도구로 삽입돼 있다. 달리는 열차의 이동을 실감나는 묘사로 풀어간다. 사실 이런 형태의 가사구성은 일찍이 남인수의 ‘울리는 경부선’ 등 여러 가요 곡에서 이미 시도되었다.
‘마도로스 항로’는 광대한 대양을 누비는 마도로스의 삶과 궤적을 흥미롭게 다룬다. 해기사(海技士) 혹은 항해사(航海士)라 일컫는 그들의 최초 출발지는 바로 부산항이다. ‘마도로스 박’(1960)은 일제 말에 발표된 ‘마도로스 박’(처녀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년설 노래, 1941)의 개사 버전으로 남백송이 리메이크한 곡이다. 1964년 박노식이 마도로스 배역을 맡아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마도로스 박’의 개봉 시기에 이 옛 노래의 다급한 호출이 제기되었으리라.
남백송의 또 다른 히트 곡으로는 ‘전화통신’이 있다. 한국가요사에서 최초의 전화테마 노래는 ‘전화일기’(김해송·1938)다. 그 노래의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 있는 가요작품 ‘전화통신’을 남백송은 심연옥과 혼성 듀엣으로 발표해서 큰 인기를 모았다. 두 노래의 발상 구조가 모두 전화교환 아가씨와 주고받는 코믹한 수작(酬酌)이다. 당시에는 깊은 밤 전화교환양에게 일없이 전화를 걸어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까지 연결된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19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출범한 직후 이 노래는 마치 KT의 주제가처럼 불리기도 했다.
남백송은 그 후에도 ‘울고 가는 방자’ ‘월남소식’ ‘춤추는 시골버스’ ‘해 마차 달 마차’ ‘불효자의 탄식’ ‘호로마차’ ‘남국의 종’ ‘눈물의 과거사’ ‘남매의 설움’ ‘그리운 내 고향’ ‘죄 많은 인생’ ‘방앗간 처녀’ ‘고향편지’ ‘눈물의 선창’ ‘가는 배 오는 배’ ‘고향 설움 타향 설움’ 등 300여 곡을 발표했다. 백년설 노래만 부른 리메이크 음반도 있다.
남백송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선배가수 백년설의 후계자로 공인을 받았다는 점이다. 남백송이 해병대 군복무 시절, 은퇴 공연을 마친 백년설의 지방공연 무대에 초청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원로 백년설은 후배 남백송의 손목을 잡고 무대로 나가 앞으로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이니 팬들의 따뜻한 성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년설이 미국으로 떠난 후 그 공백을 남백송은 충실하게 감당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백년설 노래의 전도사로 활동하며 KBS 가요무대에도 출연해서 늘 백년설 노래를 불렀다. 이런 적극적 활동으로 우리 기억에 친근하게 다가오는 가수 남백송의 초창기 활동 기반과 성장지는 바로 부산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