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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민 언니’의 원조 강수연 배우를 떠나보내며

  • 김량 영화감독
  •  |   입력 : 2022-05-10 19:54:45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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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드라마 ‘풍운’에서 명성황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면서, 야무진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녀의 얼굴을 나는 너무나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때 고작 10살 초등학생이었고,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국민 중 한 사람이었다. 강수연 배우는 16살에 ‘풍운’에서 성숙하고 당찬 연기로 돌풍을 몰고 왔고, 원조 국민 언니로 등극했다. 그녀를 보려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던 그때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2022년 봄날,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홀연히 우리의 곁을 떠났다. 한국 영화계에서, 아니 한국에서 그녀의 자리가 얼마나 컸었는지 실감하고야 말았다.

그녀는 우리의 큰언니 큰누나였고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초등학생들의 책받침에는 그녀가 깨알 같은 미소를 지으며 활짝 웃는 서글서글한 눈동자가 코팅되어 반짝거렸으며, 여자아이 남자아이 가릴 것 없이 모든 동심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우리의 유년기에는 늘 그녀가 있었고, 청년기를 지나 대형 스크린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월드 스타로 떠오르고 있었다.

전성기를 완주하고 장년기에 들어선 그녀를 실제로 만난 건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명성 높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임권택 감독의 회고전이 열리는 밤이었다. 유유히 내 앞을 지나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마치 어렸을 때 동경했던 이웃집 언니를 만난 듯, 야릇한 친근함에 빠져들었다. 무언가에 떠밀리듯 나는 그녀에게 쓱 다가갔고, “어렸을 때 배우님 너무 좋아했어요! 이렇게 만나 뵈니 정말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는데, 순간적으로 시공을 초월한 감성의 충격을 맛보았다. 그 순간, 우리의 책받침에 있던 그녀의 소녀 시절 눈동자가 번개처럼 번득거렸고, 그 번개는 몇 십 년의 시간을 훑으며 이렇게 낯선 땅에서 실물로 나타난 그녀 앞에 번쩍 내리쳤던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친근하게 반가워하면서 활짝 웃었다. 내가 어렸을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순수한 미소였다. 30년 전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듯 황홀했다.

3년 뒤, 그녀를 다시 파리에서 만났다. 한국 영화를 유럽에 알린 ‘칸의 남자’ 피에르 리시앙의 장례식이 열렸던 페르 라 세즈 묘지에서였다. 검은 상복을 입고 창백한 얼굴을 한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전날 밤 비행기를 타고 와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씨받이’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공헌했던 프랑스 친구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고, 안부를 주고받았다.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하셨다. 한국에 갈 때마다 그녀를 생각했으나 한국에서는 그녀가 너무나 멀고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을 하며, 내 머릿속 장면에서는 그녀가 희디흰 말을 타고 중국 국경을 횡단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리라 꿈을 꾸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떠날 줄은. 팬심으로 이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내게 다정한 말을 해주었던 이웃집 언니를 잃은 듯,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 유년기를 보낸 대다수 국민이 원조 국민 언니, 혹은 누나를 이렇게 아픈 가슴으로 떠나보낼 것이다. 당신의 그 순수했던 미소를 잊지 않겠습니다.


※김량 감독은 부산 출신으로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분단 주제의 장편 다큐멘터리 3편을 연출했다. 대표작으로 ‘바다로 가자’, 저서 ‘파리가 영화를 말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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