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랴러려로료루…. ○○○뎌도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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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장안 한글명 분청사기. 부산박물관 제공 |
2011년 부산 기장군 명례산업단지 조성과정에서 조사된 하장안 유적에서는 한글 보급을 알려주는 분청사기가 출토됐다. 광주 충효동 출토 한글명 분청사기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확인된 사례다. 하장안유적 5호 가마터에서 나온 분청사기로, 조각 안쪽엔 세로로 ‘라랴러려로료루’의 큰 글씨가 선명하다. 그 위쪽으로는 작은 글씨로 3개의 글자와 ‘뎌도됴듀’라는 글자가 표기돼 있다. 마치 도자기에 한글 글씨 연습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이 작은 파편은 부산박물관 미술실에 전시돼 있다. 한글이 새겨진 분청사기는 어떤 의미가 있어서 당당히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이 유물은 그릇에 칠해진 ‘귀얄문(귀얄이라는 큰 붓으로 백토를 칠한 흔적)’과 분청사기라는 특징으로 추정하건대 16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글이 1446년 반포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하장안에서 출토된 분청사기에 새겨진 한글은 반포 후 대략 반세기가 지난 것이 된다. 하장안 출토 한글명 분청사기는 대략 반세기가 지난 시점은 수도였던 한양을 벗어난 지방에까지 한글 사용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한글 반포와 달리 보급과 관련된 기록은 많지 않다. 하장안유적에서 발견된 분청사기가 문헌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하장안 유적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는 한글로 표현되는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이 지방의 백성에게까지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백성도 분청사기에 적힌 한 줄의 한글을 통해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느껴진다.
한글 자음과 모음의 체계를 적은 최세진의 ‘훈몽자회’에는 ‘라 랴 러 려 로 료 루 류’는 없다. 그러나 분청사기에서는 ‘ㄹ’의 모양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흘려 적은 ‘ㄱ’을 상하로 겹쳐서 3획으로 처리한 것, 1획으로 흘려 쓴 것 등의 세 가지 서체가 확인된다. 짧은 문자열에서 확인된 이 사실은 백성이 한글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모습을 상상케 한다. 백성을 사랑한 왕과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한 백성의 관계를 조각난 분청사기가 말해주고 있다.
한글명 유물은 전국에서 총 3점이 확인된다. 이러한 희소성과 함께 유물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는 숨겨진 이야기는 부서진 분청사기를 넘어 새로운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조각난 분청사기지만, 그 유물이 담고 있는 깊이는 헤아리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