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주기념사업회 대표 역임
- 불세출 평론가 김윤식과의 인연
- ‘작가 이병주’의 위대함은 물론
- 한때 그와 결별한 일화도 들려줘
‘이병주 평전’(안경환 지음·한길사 펴냄·사진) 북콘서트가 지난 21일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렸다. 이병주문학관이 주최하고 하동군이 후원했다. 저자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이병주 평전’을 펴낸 뜻과 집필의 관점·기준, 들인 공력, 부딪혔던 벽 그리고 그가 만난 작가 이병주, 인간 이병주에 관해 강연했다. 진주의 노래패 맥박은 이병주 작가의 문장을 빼어난 노래로 만들어 축하공연을 펼쳤다. 드디어 우리는 대문호 이병주(1921~1992)의 삶과 문학을 온전히 담은 982쪽짜리 정본 평전을 갖게 됐다.
 |
| 지난 21일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에서 ‘이병주 평전 북콘서트’가 끝난 뒤 안경환(앉은 이) 저자가 독자들이 내민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
안경환 저자는 먼저 평전의 의미를 풀었다. “평전은 평(評)자의 의견과 시각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냥 기록일 뿐입니다. 평전을 쓸 때는 기본으로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못 씁니다. 그 과정에서 쓰는 사람(평자)의 자전적 요소가 일정하게 들어가게 됩니다. 평전에는 ‘그 사람’의 약점이 기술되어야 합니다. 위인전·영웅전과 평전은 다릅니다. 나는 ‘기준 독자’를 나름대로 잡고 그들에게 (서술 방식 등을)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명하고 탁월한 법학자· 문학저술가로 잘 알려진 안경환 저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948년 경남 밀양 태생이다. “지금 세대가 영상 세대라면 내가 속한 세대는 독서 세대라 할 수 있다. 요즘 언론 매체 출판·책 담당자 대부분은 이병주를 모른다. 내가 대학 다닐 땐(그는 66학번이다) 주위에 두 부류가 있었다. 이병주를 많이 읽은 사람, 이병주를 적게 읽은 사람. 이병주는 한국 독서 세대에게 가장 많이 읽힌 작가다.”
이어 그는 ‘이병주 평전’ 쓰기라는, 방대하고 까다롭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을 스스로 떠맡은 계기를 들려줬다. “나는 번역서를 포함해 저서 70여 권을 냈습니다. 그중 ‘황용주 : 그와 박정희의 시대’를 쓰면서 ‘이병주 평전’도 쓰겠다고 각오했고 그런 다짐을 밝혔습니다. ‘이병주 평전’은 내가 쓴 책 가운데 시간과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갔습니다.” ‘황용주 : 그와 박정희 시대’는 2013년 나왔다. 이때를 기점으로 삼으면, 그가 ‘이병주 평전’을 쓰는 데 10년이 걸렸다.
 |
| 저자가 강연하는 모습. |
불세출의 문학평론가 고 김윤식(1936~2018) 선생과 안경환 저자가 맺은 깊고 오랜 인연을 뺄 수 없다. “한국 소설가의 작품을 거의 모두 읽고 평가한 분이죠. 책을 200여 권 내셨습니다. 읽고 연구하고 책 내는 일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사람도 안 만나고 공적인 직함도 안 맡고 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인사라도 오면 야단쳐서 쫓아 보낸 분입니다. 이분이 유일하게 공적인 직함을 맡아 하신 일이 이병주기념사업회 공동대표였습니다. 해마다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때 이곳 이병주문학관에서 기조발제를 하셨고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제는 좀 알려진 일화다. ‘그 까다롭고 엄한’ 김윤식 선생이 타계하기 10년 전쯤부터 안경환 저자와는 더욱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한국문학사에 명멸했던 무수한 별들 중에 단 하나만을 고르라면 누구를 꼽으시겠습니까?”(안경환) “한 사람만 꼽아야 한다면, 이병주를 택할 수밖에 없지! 그의 작품을 모두 모으면 곧바로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총체가 되거든.”(김윤식) 김윤식 선생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 두 사람이 나눈 이 대화를 저자는 북콘서트에서 중요하게 소개했다.
이 ‘김윤식-안경환 대화’는 굉장히 상징성이 높고 매우 의미가 크다. 작가 이병주는 살아생전 또는 타계한 뒤로도 이른바 ‘주류 문단’ ‘주류 문학평론계’에서는 대접·언급·평가를 제대로 받은 적 없이 오랜 기간 소외됐기 때문이다. 김윤식 선생 같은 거장이 이병주를 꼽은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뜻인데, 역저 ‘이병주 평전’ 출간은 바로 그 의미와 이유를 찾아 떠났던 배가 긴 항해를 일단 끝내고 마침내 항구로 돌아온 격이다.
안경환이 본 이병주는 어떤 작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극도로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스스로 작가가 된 사람’ ‘대학과 문단에 뿌리가 없는 작가’ ‘평론가가 아닌 독자의 작가’ ‘통합적 지성’ ‘누구도 내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끌어안은 포용력’ ‘중립의 이념, 평화주의’ ‘사회민주주의’ ‘자유와 평등의 조화’ ‘독서·여행·폭넓은 인적 교류’…. 맺음말?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그의 작품은 통틀어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안경환)
저자는 이병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그의 약점까지 드러낸다. 이병주가 박정희는 혹독하게 비판했으면서 전두환은 일정하게 수용하고 포용한 점도 세밀하게 사례를 파헤친다. 저자가 젊었던 날, 전두환에 관한 평가를 놓고 이병주 작가와 사실상 결별했던 일화도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연좌제 폐지, 통금 해제, 두발·교복 자유화 같은 일상의 민주화를 가져온 조처를 이병주 작가가 적극적으로 조언했고 전두환은 이를 수용한 점 등도 함께 전한다. 그는 좀 더 균형감 있고 깊은 응시로 이병주를 평가하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10년 동안 100여 명을 인터뷰했는데, 엄정함과 객관성을 지킨다는 집필 원칙에 따라 절반을 책에 못 넣었다고 한다. 책은 거의 ‘강박’을 느낄 만큼 철저히 자료를 제시하고 저자의 시선도 투영한다. 머리말에서는 정범준 작가가 쓴 ‘작가의 탄생-나림 이병주, 거인의 산하를 찾아서’ 등 선행 작업에 고마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