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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20>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엄하연 전수장학생

“신비한 강태홍류 산조, 내 연주 듣고 관객도 매혹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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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태홍이 정립한 가야금산조
- 후보자·전수조교·장학생 60명
- 보유자 공석인 채 보존 노력 중

- 연주법 어렵지만 표현은 담백
- 신비롭고 몽환적인 매력에 반해
- 전수장학생 길 걷는 엄하연 씨

- 입지 좁은 국악현실 고민 많지만
- 지속 가능한 국악의 길 찾는 중
- “관객과 감정소통이 가장 큰 꿈”

오동나무에 명주실 12현을 엮어 만든 가야금. 가야 가실왕 시대에 ‘가야’금이란 이름이 붙었다. 가야가 멸망하자 신라에 전해졌다. 삼국사기에 ‘가실왕이 중국의 쟁(중국 현악기)을 본떠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중국과 교류 이전 시기로 추정되는 가야금 형태 유물이 발견되면서 “가야금이 우리나라 고유 악기”라는 주장도 있다.
엄하연 전수장학생이 산조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이우정PD
우리 민속음악 중 기악 독주곡을 ‘산조’라고 한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산조가 ‘가야금산조’다. 19세기 말 김창조 선생이 가야금산조의 틀을 정립했다. 세월이 흘러 김 선생 문하생들이 자신만의 가락을 추가하거나 기존 틀을 변형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파가 탄생했다. 그 가운데 강태홍 선생이 부산에서 완성했다고 알려진 산조가 바로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부산시 무형문화재 8호)’다. 강태홍 선생의 마지막 제자인 신명숙 보유자가 타계하면서 현재 강태홍류 보유자는 공석인 상태다. 다만 후보자와 전수조교·전수장학생을 포함해 60여 명이 보존에 힘쓰고 있다.

지난달 24일 취재팀은 부산 성천초등학교에서 퓨전 국악 공연을 한 엄하연(28) 전수장학생을 만났다. 그는 퓨전 국악 그룹 ‘미몽(美夢)’의 대표이기도 하다. 초등학생들이 모인 강당에 다다르자 가야금 선율이 울려 퍼졌다. 친구들과 장난치며 떠들던 아이들은 청명한 가야금 소리에 말 없이 귀를 기울였다. 영화 겨울왕국 OST ‘Let it go(렛잇고)’가 시작되자 뜨거운 반응이 쏟아진다. 원곡에선 피아노로 끝나는 마지막 대목이 가야금 선율로 변해 진한 여운을 남겼다.

지난달 24일 사운드팩토리 판 소속 국악그룹이 부산 성천초등학교에서 퓨전 국악을 선보이고 있다. 이우정PD
가야금의 특징은 무엇일까. “거문고와 비교하면 현(줄) 수부터 달라요. 거문고는 6줄이지만 가야금은 12줄이나 됩니다. 소리 내는 방법도 차이가 나요. 거문고는 술대라는 막대기로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데 가야금은 손으로 뜯어 소리를 내고 줄을 눌러 농현(울림)을 표현합니다. 가야금 고수와 하수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농현이랍니다.” 엄 전수장학생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가야금 종류도 다양해졌다. “12줄인 산조 가야금은 음계 표현에 한계가 있어요. 퓨전 국악 공연을 할 때는 25현 가야금을 사용해 더 풍부한 음계를 연주합니다. 이외에도 철로 만든 현을 단 가야금이나 고음·저음에 특화된 가야금도 있습니다.”

가야금산조는 전통 기악 합주곡인 ‘시나위’와 판소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시나위는 주로 빠른 장단으로 이뤄진다. 판소리는 느린 장단이 주를 이룬다. 엄 전수장학생은 “가야금산조가 시나위에서 파생된 것이란 설이 있다. 산조 장단 구성을 보면 느린 도입부로 시작해 점점 빨라진다. 시나위와 판소리 장단을 합친 느낌”이라고 소개했다.

강태홍 선생 (1893~1957)
강태홍류는 어떤 음악일까.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강태홍 선생은 판소리 명창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여러 악기를 배우며 자랐다. 19살 때 대구로 이사해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30대에 병창으로 이름을 알렸고 40대에는 부산에 정착해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를 완성했다. “강태홍류를 들어보면 엇박이 많고 박자를 물고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아요. 한마디로 박자를 가지고 노는 거죠. 정해진 틀을 벗어난 리듬이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이에요.”

강 선생은 독실한 불자였다. 절에 자주 갔던 그는 산사에서 느낀 감성을 산조에 녹여 내기도 했다. “강 선생님은 산사에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나 빗소리·바람소리에 맞춰 가야금을 연주하셨습니다. 그 가락을 산조에 추가했어요. 심지어 초상집에서 들리는 곡소리도 가야금으로 표현해 산조에 그대로 접목했습니다. 그만큼 자신만의 독특한 가락과 개성을 담으려고 굉장히 노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엄 전수장학생은 어릴 때부터 가야금과 함께였다. “지금은 은퇴하신 어머니가 가야금 연주자라 늘 가야금을 들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방과후수업 프로그램을 통해 가야금에 입문했습니다.” 가야금의 매력에 빠진 열여섯 살 엄 전수장학생은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해 연주를 이어갔다. 대학원에서는 한국음악으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보존회에서 가야금 연주를 배우는 중이다. “매달 전수생들이 모여 가야금 산조 한바탕을 처음부터 쭉 같이 타면서 교감을 하고 있습니다.”

강태홍 선생의 마지막 제자이자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보유자였던 고 신명숙 선생의 공연 모습. 국제신문 DB
왜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를 선택했을까. “가야금을 포함해 이런 저런 악기를 많이 배웠습니다. 바이올린은 턱 괴는 게 너무 힘들었고 플롯은 숨 참는 게 고역이었어요. 강태홍류 가야금을 배우면서도 애를 많이 먹었죠. 내 감정에 따라 소리가 달라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도 강태홍류가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강태홍류는 연주법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소리는 화려하지 않고 담백해요. 그런 덤덤함에 매혹된 것 같아요. 국악인으로 성장하는 내 자신이 대견합니다.”

요즘 그는 국악 대중화에 관심이 많다. “한국 전통음악과 어쿠스틱(Acoustic)을 접목한 ‘한쿠스틱’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퓨전 국악 그룹 ‘미몽’은 ‘우리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꿈을 꾸라’는 뜻입니다. 대금·소금 연주자와 기타리스트·피아니스트와 함께 공연을 자주합니다. 자작곡은 물론 국악을 연주하면서도 가요나 유명 OST를 국악으로 변주해 선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소리를 좀 더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양 음악에 비해 입지가 좁은 게 국악의 현실. 고비는 없었을까. “애증의 악기죠. 사실 너무 어렵고 힘들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한 적도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무대도 줄면서 공연만으로 생활하기엔 벅차죠.”

엄 전수장학생은 국악이 마주한 현실도 짚었다. “퓨전 국악, 특히 이날치 밴드가 인기를 끌며 이전보다 국악 인기가 오른 건 맞아요.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입니다. 대중이 조금 더 편안하고 쉽게 국악에 다가올 수 있게 국악인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강태홍류 가야금산조가 많이 사랑받을 날이 언젠간 오겠죠.”

엄 전수장학생의 목표는 감정의 소통이다. “제가 연주하며 느끼는 감흥을 관객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르고 싶어요. 손가락 끝에서 울리는 농현이 누군가의 심장을 두드리는 경지.”


※ 제작지원 BNK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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