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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61> 하동 참게가리장

섬진강 참게 갈아 넣고 밀가루 풀어 끓이니 온가족 든든한 ‘장국 죽’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7-05 20:11:2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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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경남 보릿고개 시절의 메뉴
- 각지 식재료 넣은 간장·된장국
- 가리는 사투리 ‘밀가리’서 유래
- 걸쭉한 형태 ‘국찜’으로도 불려

- 논두렁 참게 몇 마리 잡아 오면
- 풀죽처럼 끓여 식구들 배불려
- 들큰구수하고 방아 향긋함까지

서부 경남지역에서는 곡식이 부족할 때 밥을 대신해 먹던 음식이 있었다. ‘가리장’이란 음식이다. 바다를 끼고 있든, 강을 끼고 있든, 아니면 산을 끼고 있든,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온 가족이 함께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양을 늘려 먹던 음식이 ‘가리장’이었다.

■밀가루 넣고 푹 끓인 경상도 음식

서부 경남지역에서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온 가족이 함께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양을 늘려 먹던 음식이 ‘가리장’이었다. 적은 양의 참게와 밀가루를 풀어 죽처럼 만들어 먹었다. 사진은 참게 가리장과 참게장의 한상차림 밥상.
‘가리’는 ‘가루(粉)’의 경상도식 발음. 여기서 가루는 주로 밀가루를 일컫는다. 밀가루의 경상도 식 발음은 ‘밀가리’이다. 경상도에서는 우스갯말로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 널리 퍼졌던 이야기이다.

이 밀가리를 줄여 가리라 했고 가리를 넣고 장으로 끓여낸 음식이라고 가리장이다. 그러니 간장이나 된장을 푼 장국에 밀가루를 뻑뻑하게 넣고 끓인, 걸쭉한 형태의 국이나 죽이라 보면 되겠다. 가리장을 경상도 몇몇 지역은 일명 ‘국찜’이라고도 부르는데 찜이라 하기에는 묽고, 국이라 하기에는 걸쭉한 형태의 음식을 총칭한다. 국찜은 음식의 형태를 가지고 부르는 이름인 데 비해, 가리장은 음식의 주요 재료인 가루의 활용을 두고 이르는 이름이다.

경남지역에는 다양한 가리장이 존재한다. 우선 찜 형태의 가리장과 국 형태의 가리장으로 나뉜다. 찜 형태는 국물이 찜처럼 걸쭉함이 더하고, 국 형태는 국물을 떠먹기 편할 정도의 걸쭉함이다. 밀가루를 비롯한 곡물가루가 많이 들어가고 적게 들어가고에 따라 가리장의 형태가 결정되는 것이다.

또 지역에 따라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들이 주연급으로 들어간다. 해안지역에서는 조개 고둥 해초 등 해산물을 주재료로 쓰고, 강을 끼고 있거나 농경 지역에서는 다슬기나 논우렁이, 민물조개 등을 쓴다. 남해군처럼 남은 제사음식을 활용하는 곳, 섬진강 주변의 참게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여기에 밀가루나 조개류 등의 잡내나 비린내를 잡기 위해 경남지역 특유의 향긋한 향신료인 방아잎(배초향)을 넉넉히 넣어주면 가리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섬진강 참게 통째로 갈아 만들어

섬진강 참게
몇몇 지역에서는 ‘국찜’이라는 용어로 불리는 곳도 있다. 거제도와 부산 기장 등이 그곳인데 거제의 봄 보양식인 ‘숭어 국찜’과 붕장어 주산지인 부산 기장의 ‘붕장어 국찜’ 등이 토속음식으로 명성을 얻고 있기도 하다.

하동에서는 섬진강 맑은 물에 서식하는 참게를 통째 갈아서 만드는 ‘참게 가리장’이 보양식으로 널리 유명하다. 예부터 섬진강 참게는 섬진강 사람들에게 재첩과 더불어 소중한 식재료 중 하나였기에 더욱 그렇다. 원래 참게 가리장은 배고픈 시절 참게 몇 마리로 식구들이 둘러앉아 부족하나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적은 양의 참게와 부족한 쌀 대신 밀가루를 넉넉하게 풀고, 죽처럼 만들어 식구 수대로 늘려 먹었던 음식이었던 것.

한때 섬진강 참게는 논두렁이나 냇가 등에서 심심찮게 잡히던 식재료였다. 강바닥을 기어 다니던 참게를 손으로 잡거나, 갈대 끝에 지렁이를 꿰어 게 구멍 속에 넣고 꾀어 잡기도 했다. 산란기 가을 저녁에는 줄지어 바다로 이동하는 참게를 횃불을 밝혀 쏠쏠하게 잡기도 했다.

요즘은 주로 강변에 통발을 놓아 참게를 잡는다. 줄로 여럿 이은 통발을 강변에 쳐놓았다가 다음날 거둬들이는 방식이다. 통발 속에 돼지비계를 넣어두면 고소한 돼지비계의 맛에 이끌린 참게가 제 발로 통발 속으로 기어들어 온단다.

이 섬진강 참게는 참게 과의 게다. 큰 강 하구나 바다에 가까운 민물에 서식한다. 주로 논두렁이나 논둑에 구멍을 파고 살면서 먹이활동을 하다가, 번식기인 가을에는 바다로 내려가 산란을 한다. 집게발 쪽에는 짧고 부드러운 검은 털이 부숭부숭하게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동의 촌로들은 ‘논두렁에서 참게 몇 마리 잡으면 절구통에 형체가 없을 정도로 콩콩 찧어 장국에 밀가루를 넉넉하게 풀고 풀죽처럼 해 먹었다’고 한다. 식량이 귀할 때라 적은 참게에 밀가루를 풀어 먹으면 그나마 온 가족이 배불리 먹었다는 것이다.

참게 가리장을 먹기 위해 섬진강 근처 참게 전문 음식촌을 찾았다. 하동에는 섬진강을 따라 지역 토속음식촌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섬진강에서 잡히는 참게로 참게장 참게탕 참게가리장 등을 내고, 섬진강 은어와 재첩으로 만든 음식들도 곁들여 내는 곳이다.

■진한 해산물 감칠맛 듬뿍

참게 가리장에 비빈 밥 한술.
참게 가리장은 음식점마다 조금씩 다른 조리방식으로 낸다. 찜 형태나 걸쭉한 국 형태로도 내고, 참게를 갈아서 조리하는 곳과 참게를 통째 넣고 끓여내는 방식이 있다. 이는 주인장마다 집안에서 먹던 방식이 서로 달라 생기게 된 결과이다.

참게 가리장이 한 상 차려진다. 함께 차려진 반찬으로 참게장도 오르고, 하동의 다양한 산채 생채 등으로 조리한 나물들이 싱그럽다.

걸쭉한 참게 가리장이 구수한 냄새를 낸다. 한술 뜨니 참게 특유의 진한 해산물 감칠맛이 그대로 녹아있다. 참게 가루로 가리장을 만들어서인지 말린 해산물의 집약된 맛이 오래도록 입 안을 감돈다. 그리고 곡물의 고소함이 밀려온다. 한때는 밀가루를 풀어 먹었던 가리장이지만 지금은 밀가루 대신 쌀 콩 들깨 등 여러 곡물가루를 활용해 건강한 느낌이 든다. 매운탕 방식의 얼큰한 참게탕에 비해 국물이 들큰하면서도 걸쭉하고 담담하다. 그러나 청양초가 약간 들어가서 뒤 끝이 알싸하니 개운한 느낌 또한 준다.

가리장 안에는 느타리 목이 팽이 새송이 등 여러 종류의 버섯이 들어앉았다. 버섯이 살강살강 씹히며 식감을 더해주니 이 또한 좋다. 여기에 방아를 넉넉하게 썰어 넣어 향긋한 향이 내내 남아 혹시 모를 참게의 비린내를 잡아준다.

밥 한술 넣고 비벼본다. 밥알과 참게 향이 어우러지며 고소하고 진한 해물 맛이 조화롭다. 참게장을 함께 올려 ‘아작’ 한 입 베어 무니 익숙한 게 향 또한 흔쾌하다. 마지막 입가심으로 참게장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니 짭조름하면서 개운한 것이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준다.

어린 시절 섬진강변의 참게를 잡아 밀가루를 풀어 죽처럼 만들어 먹었다는 참게 가리장. 지금은 하동의 보양식 중 하나로 재조명받고 있지만, 중년의 이들에게는 배고픈 시절 추억어린 음식이었다.

이처럼 사라져가던 토속음식이 오늘날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만 해도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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