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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47>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프랑수아 라블레 (1483~1553)

‘19금’ 풍자와 유쾌한 폭소탄…속을 뻥 뚫어준 ‘500년짜리 소화제’

  • 서부국 서평가
  •  |   입력 : 2022-08-04 19:45:59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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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근대소설 출발점인 작가
- 왕국의 거인 왕과 아들 이야기
- 연대기로 그려내 당대 사회 비판

- 위선의 가톨릭, 무능한 군주 등
- 르네상스 시대 권력층 조롱해
- 금서로 지정되자 필명 바꾸기도

- 의사 출신으로 괴이한 표현 즐겨
- 인문주의자로 평등사상 주창도
가르강튀아는 후대에 탐욕스러운 전제 군주로도 인용됐다. 프랑스 화가이자 사회 비평가였던 오노레 도미에(1808~1879)가 1841년 발표한 석판화 ‘가르강튀아’(그림)가 그런 예다. 루이 필립 1세를 풍자했다. 관료 부르주아 등에게서 공물을 받은 이 프랑스 왕이 작위와 상을 무더기로 하사하는 내용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2014년 발표한 영화 ‘인터스텔라’엔 거대 블랙홀이 등장한다. 이름이 ‘가르강튀아’. 라블레 소설 서명(書名)에서 따왔다. 이 책을 읽은 이라면 적절한 명명이라 느낀다. 블랙홀은 무엇이나 흡입하는 공간을 가진 우주 ‘거인’이니까. 라블레 소설 속 주인공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거인이다. 이 작품은 ‘즐거운’ 블랙홀. 독자는 낄낄대며 소설 속으로 무방비로 빨려들지만 저항하지 않는다.

“그리고 너희들, 당나귀 × 같은 놈들아, 다리에 종양이 생겨 절름발이나 돼 버려라.” 라블레는 5권짜리 연작소설을 썼는데, ‘가르강튀아’는 그중 2권이고 이 책 서문에 이 같은 욕설이 튀어나온다. 16세기 독자들이 여기에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한 가지, 그때나 지금이나 울적하고 갑갑할 때 이 소설은 속을 뻥 뚫어준다. 마음 체기를 내려주는 500년짜리 소화제. 라블레는 프랑스 근대소설이란 열차를 출발시킨 기관사다. 그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현대 시공간을 가로질렀다. 그 소리란? “인생을 즐겨, 즐겨, 즐겨~. 그리고 책도 좀 읽어.”

■ 시원시원·유쾌·통쾌

요람 속 거인 아기 팡타그뤼엘이 젖소를 쥐고 우유를 먹고 있는 모습.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은 지력을 갖추고 왕국을 다스리는 거인 왕과 아들이다. 그들 가족만 덩치가 산 같고 백성은 보통 인간이다. 이 연작은 두 거인 왕이 태어나 성장하고 죽는 일대기 순으로 얘기를 풀어놓는다. 1권:팡타그뤼엘(1532년)-2권:가르강튀아(1534년)-3권:제3서(1546년)-4권:제4서(1552년)-5권:제5서(1564년). 저자 사후 출간된 제5서는 라블레가 직접 썼는지가 확인되지 않는다.

거인 아들 얘기인 1권이 출간된 지 2년 뒤 아버지 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가르강튀아’가 나왔다. 책을 소개할 땐 아버지-아들 순인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로 놓는다. 제3서는 팡타그뤼엘이 아끼는 신하이자 절친한 벗인 파뉘르주가 결혼할지 말지를 놓고 대화하는 내용. 제4서는 파뉘르주와 팡타그뤼엘 일행이 신성한 술병이 내리는 신탁을 들으러 항해하는 모험담이다. 제5서는 라블레가 세상을 떠난 지 9년 뒤 나왔다. ‘의학박사 프랑수아 라블레 선생이 집필한, 위대한 팡타그뤼엘의 영웅적 언행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이 책 속, 여사제가 밝힌 신탁은 “마셔라”였다. 지금도 지구촌 주당은 이 신탁을 추앙한다.

저자는 자기 작품을 쓰기 전 작가 불명 삼류 소설 ‘가르강튀아 대연대기’를 읽었는데 거인이 가진 거대한 몸집과 엄청난 식욕을 단순히 강조한 허접한 작품이었다. 이게 라블레 머릿속에 창작 번갯불이 튀게 만들었다. 그는 중세 전설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악마, 술꾼이 입 벌리고 자면 소금을 먹여 갈증을 일으키게 하는 ‘팡타그뤼엘’도 떠올렸다. “인간은 삶에 대한 갈증을 상징하는 거인 팡타그뤼엘이야!”

전지전능한 거인 주인공을 내세우니 서사 전개가 일사천리다. ‘적군이 쏜 대포알이 거인에겐 머릿니 같다’는 만화 같은 상상이 천연덕스럽게 나온다. 거인이 오줌을 한 번 누면 홍수가 일어나 적군을 휩쓸어버린다. 라블레가 제시한 서사 등식. ‘인간=능력자=거인’. 육체에 충실하면서도 지성이 넘치는 거인! 라블레가 꿈꾸었던 전인적인 인간상이었다. 인간을 무진장 사랑하고, 밝은 미래를 그려낸 작가였다.

■ 파격·환상·풍자·비판

1571년 출간된 ‘팡타그뤼엘’ 표지.
라블레는 ‘19금’ 풍자로 폭소를 터지게 하고, 때론 산만한 필체를 보인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도 내로라하는 풍자가였다. 스위프트는 씁쓰레한 여운을 준다. 라블레는 유쾌하다. 당시 유럽 저자들은 책 도입부에 자기 색깔을 내보였다. 저술 목적도 드러냈다. 라블레는 ‘가르강튀아’ 서문에 “고명한 술꾼, 고귀한 매독 환자에게 바친다”고 썼다. ‘맛난 음식과 신선한 포도주를 진탕 먹은 후 시원하게 싸고 이성과 쪽쪽 빠는 게 인생’이랬다(‘팡타그뤼엘리슴’).

저자는 왼손엔 외설·파격·혼란·웃음·환상이라는 방패를, 오른손엔 풍자·비판이라는 몽둥이를 쥐었다. 그 몽둥이를 내리쳤다. 위선 가득한 가톨릭 고위 사제, 형식에 물든 무능한 스콜라 철학자, 박애와 평화는 내팽개친 채 땅따먹기에 급급한 전제 군주가 혼났다.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을 본받으세요”라고도 외쳤다.

작가는 시대에 반응한다. 16세기 프랑스에 문예부흥(르네상스)이란 훈풍이 불었다. 한편엔 으스스한 구체제인 화형(火刑) 불길이 넘실댔다. 누구나 이단·반역죄로 몰려 한순간에 숯덩이가 될 위험을 안고 살았다. 이럴 때 라블레는 풍자·비판 정신을 숨기지 않았다. 르네상스는 인문·인문주의로 번역된다. 영어론 휴머니즘, 프랑스어로 위마니슴. 라블레 가슴 속에서 이글거렸던 위마니슴 불길이 펜촉을 통과해 원고지 한 칸 한 칸을 뜨겁게 달구었다.

당대 종교 권력인 가톨릭을 비판한 라블레 저서는 여러 번 금서로 지정됐다. 1543년 3월 소르본 신학부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불어판 성경, 칼뱅·에라스뮈스 저서들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라블레도 몸을 사렸다. 1·2권을 발표할 때 연금술사 이름 같은 ‘알코리바스’라는 가명을 저자명으로 썼다. 본명 철자 순서를 슬쩍 바꾼 필명. 저자는 2권 ‘가르강튀아’를 낸 뒤 1546년 ‘제3서’를 내기까지 12년간 출간하지 않았다. 제3서를 낼 때 라블레는 비로소 본명을 썼다.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소르본 신학부가 이 책에 또다시 ‘금서’ 딱지를 붙였기 때문. 그해에 친구이자 출판사 대표인 에티엔 돌레가 화형을 받아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라블레는 자기 목이 붙어 있는지 자주 만져보았다.

■ 의사·수도사·소설가·고전학자

프랑스 파리의 에티엔 돌레 동상. 번역가·출판인이던 그는 라블레의 친구였는데 이단 혐의로 처형됐다.
라블레는 죽음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생사(生死)는 자연 속 한 과정이다.” 소설가다운 상상력에 의학 지식을 뒤섞어 비빕밥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없는 황당한 육체가 탄생하게 된다. 가르강튀아는 어머니 항문이 빠진 탓에 귀로 태어난다. “…자궁 태반의 엽(葉)이 이완되자 아이는 위쪽으로 솟아올라 공 정맥으로 들어가서는 횡격막을 지나 (그 정맥이 둘로 나눠지는) 어깨 위까지 기어 올라간 왼쪽 길을 따라 왼쪽 귀로 나왔다.” 괴이한 묘사다. 이를 두고 러시아 문예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은 ‘그로테스크한 사실주의’라고 했다. 라블레식 육체는 육화(肉化)된 세계를 풍자한 결과다.

출산 장면 묘사에 해부학 용어가 동원됐는데 라블레는 실제로 의사였다. 수도사가 돼 고대 그리스·로마 인문학을 익혔다. 종교와 학문으로 인간 정신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그다음엔 의술을 배워 육체를 통해 인성에 한 발 더 다가섰다. 뒤늦게라도 의사 면허를 딴 이유. 그랬기에 당시 독자는 육체를 내세운 외설스러운 라블레 표현에 함부로 토를 못 달았다. 속으론 ‘의사라는 양반이 말이야’라며 혀를 찼겠지만.

라블레는 그리스어를 익혀 고대 원전을 독파한 고전학자였다. 그는 소설 속에 인문학 지식을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가르강튀아 10장에서 흰색과 푸른색이 가진 의미를 설명한다. 이럴 땐 진지하다. 도입부 논지는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중 중용을 설명한 대목에서 끌어온 게 분명하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답게 이상향도 제시한다. 2권 가르강튀아 끝에 나오는 ‘텔렘 수도원’이 그것이다. 플라톤 공동체처럼 라블레도 유토피아 사회를 설계했으니 의미심장하다. 여기선 시대를 앞서가는 평등사상이 번뜩인다.

육체와 정신이 균형을 이뤄야 인생이 편안하다. 문제는 그 황금비율. 라블레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속에 숨겨 놓았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그 비율을 깨달아 인생을 재설계하라며 옆구리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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