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블레는 언어를 잘 다루는 작가였다. 질펀한 육체와 고상한 정신에서 각각 흘러나오는 이종 언어를 자유자재로 부려 16세기 프랑스 문단을 한층 높였다. 당대 작가 몽테뉴가 수필이라는 문학 장르를 신축했듯이 라블레는 휴머니즘(위마니슴) 문학으로 밤하늘에 새 별을 달아 그 반짝이는 빛이 오늘날 우리 눈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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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라블레 초상화. |
지성미를 한껏 드러낸 대목이 ‘팡타그뤼엘’ 8장이다. 파리 유학 중인 아들 팡타그뤼엘에게 아버지 가르강튀아가 보낸, 학문 정진을 격려하는 편지글이다. 프랑스 교과서에 권학 예문으로 자주 실린다. 르네상스를 예찬하고 이 기운이 가져다줄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그렸다.
라블레가 구사한 다양한 글쓰기는 후대 셰익스피어나 조이스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고 평론가들은 입을 모은다. 팡타그뤼엘이 평생 벗이자 심복인 파뉘르주를 만나는 대목(9장)이 그렇다. 파뉘르주는 팡타그뤼엘과 대화하면서 13개 언어를 사용한다. 이 중 10개 언어는 프랑스어를 포함해 유럽 각국 언어이지만 나머지 3개는 라블레가 지어냈다. 그리스어를 흉내 내기도 하고, 글자를 아무 의미 없이 나열한 문장을 썼다. 이런 언어유희는 유명무실한 지식을 뽐내는 학자들에 대한 야유이자 풍자이고, 쓸데없이 말을 남발하는 부류를 꼬집는 서술이다. 정통한 지식에는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등장인물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짓는 데에도 선수다. 프랑스어를 이해하는 독자는 이름 읽으며 미소 짓는다. 법의를 걸친 교수와 법관을 ‘송아지’로 묘사하는데 프랑스어 구어로 바보·멍청이란 뜻이다. 다른 예로, 베즈퀴(엉덩이에 입을 맞춘다는 뜻) 윔므벤(방귀 냄새를 마신다는 뜻)란 이름이 나온다. 둘 다 영주이자 소송 당사자다. 그들이 벌이는 변론과 팡타그뤼엘 판결은 외계어다.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법률 용어를 남발하며 권위를 세우는 법정을 이렇게 비꼬았다. 후학 플로베르는 라블레 소설을 “인생처럼 신비에 가득 찬 작품”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