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여러 직업을 가졌던 다모작 작가였다. 수도사 입문(28세), 의대 입학(47세), 작가 등단(49세). 여기에 드문드문 주교나 추기경 비서로 일했으니 팔방미인이었다. 출생 사망 연도가 명확하지 않다. 가톨릭교회에 긴장하며 살았다. 정식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두었다.
고향은 쉬농 근교 작은 마을인 라 드비니에르. 변호사 아버지 밑에서 차남으로 자라 1510년 엄격한 프란체스코파 수도회에 들어가 수도사가 됐다. 1524년 개방적인 베네딕트파 수도원으로 종적을 옮겼다. 청년 때 교회법 민법 같은 법률을 공부했다. 수도사 시절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을 그리스어로 읽어 인문 소양을 쌓았다. 법률가들이 드나드는 지역 사교 모임에 얼굴을 내밀면서 휴머니즘 사상에 빠져들었다.
고전 법률 신학에 발을 디딘 뒤인 47세에 몽펠리에 의대생이 됐다. 보통 2년간 받는 의학 일반 교육을 두세 달 만에 뗐다. 자선병원 의사, 영주 주치의로 지냈다. 고대 의학 관련 강의와 고전 번역, 시신 공개 해부 시연 같은 폭넓은 사회 활동을 이어갔다. 1533년엔 역서를 펴냈다. 1553년 1월 뫼동 주임 사제직을 내놓은 뒤인 4월 7일 70세로 파리에서 숨져 생 폴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