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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골 주차장 대신 영구 숲길…교정에 스며든 ‘인문주의’

부산대의 변화 … 가치관이 공간을 바꾸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2-08-17 20:29:09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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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정산 자락의 아름다운 교정
- 건물 빽빽이 지으며 개발 매진
- 차정인 총장 취임 후 새 구상
- 주차장 예정부지 숲 보존하고
- 기존 건물 허문 뒤 비워두기로

- 무조건 새 건물 짓던 관행 탈피
- 틈새공간 찾아 학습장으로 활용
- 인문주의가 몰고 온 신선한 바람

이 기사는 9분 17초짜리 동영상 하나에서 비롯됐다. 부산대학교 공식 유튜브 채널에 지난 6일 오른 ‘부산대학교, 아름다운 숲속 캠퍼스 비전을 말하다’였다. 동영상 내용 자체는 국제신문이 앞서 보도한 ‘중심부 녹지·주변 학습공간…부산대 캠퍼스 대개조’(국제신문 5월 12일 자 2면) 기사에서 이미 접한 것이 많았다. 더 중요한 건 맥락이었다. 차정인 부산대 총장의 야외 인터뷰로 이뤄진 이 동영상을 따라가다 보니 ‘쿵’하고 머리를 치는 특징이 있었다. 인문주의였다. 동시에 인문주의자가 공간을 바꾸는 방법이 그 속에 있었다.
지난 11일 부산대 인문관 근처 사유의 길을 학생들이 걷고 있다. 이 길은 대학 구성원과 시민의 산책과 휴식을 위해 최근 새롭게 조성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지난 9일 부산대 (금정구 장전동 부산캠퍼스)로 향했다. 가는 동안 머릿속은 조금 복잡해졌다. 인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지? 당장 이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우선은 ‘이윤·이익·개발만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인간·인문·생태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생각·관점’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인문주의의 대척에 놓인 사고방식을 ‘개발주의’로 칭하기로 한다. 인문주의는 좋고 개발주의는 안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둘 다 필요할 때 알맞게 활용해야 한다. 다만, 부산 전체를 놓고 보면 인문주의는 거의 언제나 개발주의에 패배해왔다.

또 한 가지 있다. 이 기사에서 인문주의자는 차정인 부산대 총장을 지칭한다. 그러려니 근거가 필요하다. 차 총장 스스로 ‘나는 인문주의자다’고 밝힌 기록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간접 자료는 꽤 있다. 차 총장은 2020년 취임하면서 부산대 슬로건을 ‘시대를 열어가는 담대한 지성’으로 바꿨다. 취임 인터뷰에서는 “(부산대는 역사의 기로에서) 이(利)와 의(義)의 대립에서 옳음(義)을 위한 선택을 했다”(국제신문 2020년 6월 16일 자 20면)고 했다.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건 인문주의자의 언어다.

그가 전공한 법학이 공학이나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 영역에 속한다는 점이나 1997년 받은 상이 제3회 독서문화상이라는 것도 들 수는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근거는 차 총장이 주도한 ‘부산대학교, 아름다운 숲속 캠퍼스 비전’ 자체에 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자.

■철골주차장과 박물관의 운명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인 부산대 박물관. 바로 앞 자연과학관을 2023년 이후 허물면 박물관은 자태를 온전히 드러내게 된다. 이원준 기자
“생활환경대학 앞 배드민턴장이 있는 작은 숲은 제가 취임하기 전 철골주차장이 계획돼 있었는데, 우리가 아무리 주차장이 시급해도 계곡을 낀 그 아름다운 녹지를 허물면서 철골 주차장을 지어선 안 됩니다. 그 계획은 전면 중단시켰습니다.” 차 총장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곳은 영구히 부산대 녹지로 보존할 겁니다.” 집에 누워서 인터뷰 동영상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게 한 게 이 대목이었다. 이미 세워놓은 ‘숲속 철골주차장 건립 계획’을 엎고 영구히 녹지로 보존한다고?

빠끔한 데만 있으면 강박증처럼 뭐라도 짓고 보는 개발주의 성향의 부산 상황에 익숙하다 보니, 계획된 주차장을 포기하고 녹지로 비워둔다는 결정은 낯설었다. 현장에 가봤다. 캠퍼스 중심부다. 장전동 부산대 캠퍼스는 국립공원 지정을 추진할 만큼 산세가 좋은 금정산 자락에 얹어놓은 형국이다. 그래서 숲이 울창하고 캠퍼스 한복판으로 자연 상태에 가까운 계곡이 길게 지나간다. 철골주차장이 예정됐던 숲속 배드민턴장은 그 계곡 바로 곁이다. 여기 복층 주차장을 짓는다면 차량 동선을 빼기 위해 계곡 여러 곳을 헐거나 손대야 할 것으로 보였다.

부산대는 이곳에 철골 복층 주차장을 올리는 대신, 지난해 12월 1단계 조성 사업을 준공한 ‘사유의 길’이 지나가게 했다. 사유의 길은 학생회관~생활환경관~박물관~미리내계곡~대학본부로 이어지는 숲과 계곡의 길이다. 학생·학자·시민의 사색과 휴식을 돕는다. “학교 중심부로 계속 차량이 진입하고 차와 사람이 구분되지 않으면 캠퍼스 조성 전체 계획이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녹지로 영구히 지키기로 마스터플랜에 넣었습니다.”(차정인 총장 인터뷰 영상 중)

이런 관점을 상징하는 계획은 또 있다. 차 총장은 “2023년 2월 첨단과학관을 완공할 예정이다. 그러면 현재의 자연과학관을 허물 것이다. 그 자리에 새 건물은 짓지 않는다. 비워둔다”고 밝혔다. 쓸모를 다한 자연과학관을 허물면 캠퍼스 풍경에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자연과학관 바로 뒤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인 박물관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개발·성장에 급급해 기능·효율 중심으로 캠퍼스 한복판에 빽빽하게 지은 건물 가운데 하나를 허물어 녹지로 가꾸고, 인문 정신을 상징하는 멋스러운 박물관을 통으로 드러낸다.

■틈새학습공간의 생태 전략

세 번째로 주목한 요소는 틈새학습공간이다. 부산대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틈새학습공간 13곳(양산캠퍼스 3곳, 밀양캠퍼스 1곳 포함)을 만들었다. 인문대학 2층, 경제통상대학 로비, 사회과학대학 5층 등등이다. 총사업비 4억6000만 원으로 여러 건물의 자투리공간을 찾아내 깔끔하게 학습공간으로 꾸미고 누구나 짬짬이 머물러 공부하거나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좌석은 500여 석이다. 4억6000만 원을 들여 500석짜리 도서관 건물을 하나 새로 지은 셈이다.

틈새학습공간은 생태 관점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교육기관이 건물을 한 동 새로 짓자면 예산은 대개 수백억 원이 필요하다. 엄청나게 많은 자원도 투입해야 한다. 틈새학습공간을 13곳 만드는 과정에서는 새 건물을 신축하고 보는 방식을 쓴 게 아니라 ‘원래 우리가 갖고 있지만 미처 활용하지 못하던 작은 공간’을 찾아냈다. 자원과 예산을 효율성 높게 쓰면서 구성원의 공간 활용도는 높였다.

이는 생태주의 접근법이다. 지난해 10월 부산대가 어둡고 낯선 느낌이던 민주언덕을 공원처럼 새 단장해 접근성을 끌어올린 일, 사유의 길을 만들고 보행로를 배 이상 넓힌 일 등이 모두 이런 바탕에서 이뤄졌다.

■끝까지 아름답기를

이 대학의 ‘아름다운 캠퍼스 조성 사업’은 크고 오래 걸리는 프로젝트다. IT관은 2024년, 6공학관은 2025년 완공 예정이다. 사회관은 2023년부터 시설 확충 사업을 시작해 2026년 마무리한다. 차 총장은 이 과정을 관통하는 철학과 원칙을 이렇게 밝혔다. “캠퍼스 중심부는 녹지화해서 차량과 사람이 분리되고 편안하게 걷고 싶은 캠퍼스로 만들고 대형 빌딩은 외곽으로 돌릴 것이다.” 자연스러움·비움·생태 같은 인문주의 가치를 여기서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이 계획이 끝까지 잘 풀릴지는 지금 알기 어렵다. 캠퍼스 중심부를 녹지화하고 대형 건물을 바깥쪽에 배치하면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은 주차 문제로 불편을 느낄 것이다. 아마, 이 대학의 아름다운 캠퍼스 조성 계획이 난관에 부딪힌다면 바로 이런 민원이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감각적인 불편함을 좀체 견디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문주의는 현실에서 자주 졌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이 기후재앙의 시대에, 국립공원급 금정산 품에 자리한 이 대학의 캠퍼스가 인문·생태 가치가 잘 구현되고 효율성이 조화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그것은 올바르고도(義) 이로운(利) 일 아니겠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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