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부산포해전 승전 기념해
- 1980년에 제정된 ‘부산시민의 날’
- ‘이순신 전문가’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 “옥포·당포·한산·부산해전 긴밀히 연결
- 다른 차원의 전략으로 게임 체인저
- 담대한 발상 등 가치 현재에도 유효”
- 엑스포·신공항·인구 감소·기후위기 등
- ‘이순신 정신’으로 시민 함께 대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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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바다 쪽을 굽어보며 서 있다. 이 동상은 1956년 3월 20일 세웠다. 한반도의 관문인 부산 바다를 지키는 이순신 장군의 기상과 정신을 나타낸다. 여주연기자 yeon@kookje.co.kr |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사진을 찍어 달라”고 사진부에 의뢰하자, 여주연 사진기자는 부산 중구 광복동 용두산공원으로 달려가 드론을 띄워 이순신 장군 동상을 근접 촬영해주었다. 그 사진을 통해 장군을 가까이서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평생 부산에 살며 숱하게 용두산공원을 오르내렸건만 부산에 하나뿐인 이순신 장군 동상을 공들여 자세히 살핀 적이 없었음을. ‘부산의 이순신’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음을. 심지어 온갖 역경 다 이기고 민족의 길을 개척한 장군께 ‘부산의 길’을 묻지도 않았음을.
■이순신 공부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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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
김종대(74) 전 헌법재판관을 지난달 25일 부산 연제구 법조타운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왠지 마음이 급해 보였다. 온화하고 푸근한 평소 인상은 그대로였지만, 어딘지 불편한 기색은 숨겨지지 않았다. “10월 5일 제43회 부산시민의 날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고 그는 답했다. “부산시민의 날은 이순신 장군께서 부산에 안겨준 크고 귀한 선물인데 왜 우리는 그 선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요?”
그는 ‘이순신 공부’에 관한 한 20대의 군 법무관이던 1975년부터 50년 가까운 세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치열하게 살았다. 2002년 ‘이순신 평전’을 쓴 뒤로, 이 책을 쉼 없이 개정하고 보완하며 ‘내게는 아직도 배가 열두 척이 있습니다’(2004) ‘여해 이순신, 너라야 세상을 화평케 하리라’(2008)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2012)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2022)는 제목으로 새로 펴냈다. 고치고 또 고치고 보완하고 또 보완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순신 전문가’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단행본으로서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가디언 펴냄)는 정말로 탁월한 책이다.
■모든 승리는 이어져 있다
“임진왜란이 터진 1592년 이순신 함대의 4차에 걸친 출전과 전승(全勝)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옥포승첩은 승리의 씨를 뿌린 것이고, 당포승첩은 그 씨가 자라 잎과 가지가 무성해진 것이고, 한산승첩은 마침내 꽃을 피운 것이며, 부산승첩은 그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는 “이 4대 승첩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크든 작든 앞선 승전이 없었다면 뒤의 승전 또한 있을 수 없는 구조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다. 깊은 해석이다.
이순신 함대는 옥포·당포·한산·부산의 왜적을 휩쓴 4차례 승첩에서 10번 접전을 펼쳐 모두 크게 이겼다. 여기서 살펴야 할 게 승리의 내용과 구조다. 한산대첩에서 이순신 함대는 적선 79척 가운데 59척을 깼다. 죽은 왜적 수는 9000여 명. 왜군 장수도 수십 명 죽고 마나베 사바노조는 할복했다. 그런데 한산과 안골 해전을 합쳐도 조선 수군 피해는 전사 19명, 전상 115명이었다. 옥포승첩 3회 접전(옥포·합포·적진포)에서는 적함 42척을 깼다. 아군 피해는 부상 1명. 현대전으로 치면 아군 피해 없이 적의 전투기 42대를 격추했다.
이런 판도는 부산포해전에서도 이어진다. 조선 수군은 “부산포의 왜적 전선 470여 척 가운데 100여 척”(이순신 장군의 장계)을 격파하는 최대 전과를 올렸다. 아군 피해는 전사 6명, 전상 25명.
■차원이 달랐다
제한된 무기로 맞붙어 싸운 전근대 전투의 틀로는 ‘적을 9000여 명 죽이고 아군은 19명만 전사’하는 식의 초대형 승리를 잇달아 거두는 양상을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은 “총 전력 면에서 전선의 수가 왜적의 10분의 1도 못 되고, 군사의 수도 적의 1할에 못 미친 상황”(김종대)에서 일군 성과다. 두 군대는 다른 차원(dimension)에서 싸운 것이다. 비유하자면 왜군은 전근대, 이순신 함대는 근대였다. 차원이 달랐다. 이순신 함대는 지금으로 치면 애플·구글·아마존·삼성·BTS 같은 게임 체인저였다.
10월 5일 부산시민의 날은 올해 430주년이 된 임진왜란의 첫 해인 1592년 이순신 함대가 왜적을 통렬하게 부순 부산포해전을 기념해 1980년 제정했다. 기록을 보니, 손재식 당시 부산시장은 널리 시민 의견을 들었고 전문가 집단은 치열하게 논의했다. 반상회·부산시보·보도·공청회·시정자문회의가 잇달았다. ▷동래부사 송상현공 순절일(5월 25일) ▷이순신 장군 부산포해전 승전일(10월 5일) ▷부산항 근대 개항일(2월 27일) ▷부산부에서 부산시로 승격한 날(8월 15일) ▷부산시민헌장 제정일(8월 1일) ▷부산직할시 승격일(1월 1일)이 경쟁했다.
김 전 헌법재판관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부산과 부산시민의 ‘생일’이자 부산 정신이 집약된 날이 부산시민의 날이다. 부산포해전 승리 날을 부산시민의 날로 택한 것은 승리·개척·진취·화합·포용 같은 이 승첩의 가치를 부산 정신으로 삼겠다는 다짐이다.”
■‘작은 이순신 양성’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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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서 촬영한 용두산공원 이순신 장군 동상.
여주연 기자 |
“옥포·당포·한산·부산 해전의 승리는 긴밀히 이어져 있으며 사실상 하나”라는 그의 설명은 뭘 뜻할까?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이순신 함대의 성취 비결이 부산포해전 안에 모두 농축돼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김 전 헌법재판관은 “숱한 난제를 안은 부산에 주어진 선물꾸러미가 바로 이순신 정신과 부산시민의 날”이라고 외쳐왔다.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가덕신공항 건설,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따른 예술문화 생태계 혁신 같은 손에 잡히는 목표부터 인구 감소와 고령화 대응, 기후위기 대처, 전환·혁신·발전 시스템 구축, 미래 세대가 더 잘 살게 도울 인성교육과 공동체 정신 함양, 엄정하고 청렴한 공직자 양성, 혁신가 육성 같은 큰 과제를 부산은 숱하게 안고 있다. 온 시민이 즐겁게 참여하는 ‘이순신 공부 활성화’를 통해 이런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그는 오랜 세월 설득하며 실천해왔다.
이순신의 생애와 정신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의 외침에 동의할 것이다. 이순신이라는 ‘바다’에 들어갔던 사람이라면 이순신 정신에 젖어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 핵심은 ‘사랑·정성·정의·자력’(김종대)일 수도, ‘유가·법가·병가의 완벽한 조화’ 등일 수도 있다.
■부산포해전, 다시 봐야
김 전 헌법재판관은 ‘이순신 재단 설립 및 그 유지에 관한 법률’ 제정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순신 정신의 높은 가치와 보편성·실효성을 잘 정돈하고, 대통령 산하 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기구를 둬 더 많은 이가 배우고 익히게 하는 것이 꿈이다. “김세연 전 국회의원 등의 협조에 힘입어 여러 차례 법안을 발의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부산시민의 날을 가진 부산이 ‘작은 이순신 양성’ 노력에 앞장서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부산포해전에 관한 역사학·군사학계의 의견은 ‘오래전 내린 한계 많은 평가를 관성대로 그저 끌고 가는’ 느낌이 강하다. 부산포는 완전한 적 본거지였다. 적선은 거의 500척, 병력은 6만~7만 명. 판옥선 74척(협선 등을 합쳐 166척)인 이순신 함대가 밀고 들어갔다가 퇴로가 막히면 전멸이다. 적의 최고 사령부가 있는 본거지로 과감하게 쳐들어가 마구 쳐부수고 질서 있게 돌아가는 조선 수군 함대를 본 왜적의 공포는 어떠했을까? 열세의 전력으로 삼엄한 적의 심장부를 타격했다. 담대한 발상이다. 부산포해전 성과는 재평가해야 한다. 부산 시민이 이순신 장군 생애와 정신, 그리고 부산시민의 날을 거듭 살펴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