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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차사발 본고장…영화 ‘취화선’ 등장해 세계에 이름 알리다

그 장면 여기서 찍었네 부울경 촬영명소 <14> 하동 진교면 사기아름마을

  •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
  •  |   입력 : 2022-10-09 19:05:33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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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토·땔감 풍부하고 바다 가까워
- 가야시대부터 토기문화 꽃 피워

- 장승업 삶 그린 임권택 감독 영화
- 가마터 등 마을 곳곳 배경 담아
- 55회 칸영화제 수상 등 큰 호응
- 도자기 만들기 등 가능한 체험장
- 넓게 펼쳐진 연꽃밭 산책로 인기

경남 하동군 진교 IC에서 하동읍과 청학동 방향으로 가는 지방도 1003호선을 따라 10분가량 가면 오른쪽에 큰 차사발이 있고 왼쪽에는 사기아름마을이란 마을 표지석과 함께 연꽃, 차사발 그림과 백련리 도요지란 글씨가 새겨진 대형 입간판이 나온다.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아름마을(새미골)이다. 한 예술가의 뜨거운 열정과 예술혼을 담아낸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의 촬영 현장이다. 임 감독은 이 영화로 제5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아름마을(새미골)에 있는 가마. 화가 장승업이 활활 타오르는 가마 속으로 들어가 자기의 몸을 불태우는 영화 취화선의 장면이 오버랩된다. 하동군 제공
■전통 차사발의 본고장

마을로 들어서면 황금빛 들녘에 이어 연밭이 펼쳐지고 산기슭에 47가구의 주택들이 주머니 모양을 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행정안전부가 아름마을로 선정해 사기마을에서 사기아름마을로 명칭이 변경된 이 마을은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을 지닌 우리나라 전통 차사발의 본고장이다.

양팔을 펼쳐 껴안은 둘레를 뜻하는 순우리말 ‘아름’은 풍요와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농촌 조성을 지향한다. 이곳은 사기(砂器)실이라는 옛 지명에서 알 수 있듯 가야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일찍이 토기 문화를 꽃피웠다. 주변에 질 좋은 백토와 땔감이 풍부하고 바다와 가까워 도자기의 운반이 용이한 이점 때문이다.

이곳의 옛 지명인 샘문골(새미골)은 일본말로 이도(井戶)라고 부른다.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찻사발인 이도다완이 이곳 백련리 도요지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유사한 특성을 가졌다 한다. 진해의 웅천 도요지와 함께 이도다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 된다고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다.

차사발은 자연에 순응해 솔직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이 두드러지고 조선시대에 밥그릇 국그릇 찻잔 숭늉그릇 막걸리 잔 등 서민들이 다양하게 사용하던 그릇이다. ‘귀얄’이라 부르는 붓으로 그냥 슬쩍 유약을 바르거나 유약 통에 덤벙 담갔다가 그대로 구워 붓의 흔적과 유약이 흘러내린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모양새가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것이 특징이다. 도자기를 빚는 과정은 흙을 빚는 제토, 물레 위에 흙덩어리를 얹어놓고 원하는 크기와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성형, 그릇에 무늬를 새겨 넣는 장식, 수분을 제거하는 건조, 초벌구이, 유약을 바르는 시유, 마지막 재벌구이 등 모두 일곱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마을은 취화선 촬영지라는 유명세와 함께 백련리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마을 전체가 연밭으로 뒤덮여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뜨거운 열정과 예술가의 혼

도예가 정웅기(61) 선생이 운영하는 차사발박물관. 하동군 제공
세속적인 삶을 초월한 ‘술에 취해 그림을 그리는 신선’이란 뜻의 영화 ‘취화선’은 최민식 주연으로 19세기 비운의 시대 상황과 천민 출신의 운명을 조롱하며, 오로지 예술혼에 살다가 죽은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의 삶을 그렸다.

주인공 오원 장승업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거장으로 평가받는 천재화가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거지처럼 떠돌다 역관 이응헌의 집에서 머슴살이한다. 이어 집에 보관된 그림을 어깨너머로 보고 똑같이 흉내 내며 그린 그림으로 그 재능을 인정받게 되어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는다.

천재적인 기량과 왕성한 창작욕으로 조선 후기 최고의 명성을 얻은 화가였다. 고종으로부터 벼슬까지 받지만, 결국 거절하고 세상을 떠돌다 1897년 굴곡진 삶을 마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활활 타오르는 가마 속으로 들어가 자기의 몸을 불태우는 모습에서 화가 장승업의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예술가의 혼을 느끼게 했다.

개봉 당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은 ‘취화선’은 제55회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받아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수상작이 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또 한국영화 100년 역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도 선정된 명작 중 하나다.

특히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런던의 대표적인 명소인 영국 국립미술관 극장에서 상영돼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취화선의 촬영지인 새미골가마터에 갔다. 안타깝게도 가마터는 운영난으로 폐가처럼 되어 있고 잠가 놓은 자물쇠는 녹슬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문이 닫힌 가마터 앞에 서니 영화가 오버랩됐다. 술에 취한 채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장승업의 눈빛과 활활 타오르는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떠올랐다.

■무명 도공들의 예술혼 기리다

사기아름마을에서 빚은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는 야외 전시장. 하동군 제공
학생들이 도자기를 체험하는 마을의 체험장을 찾았다. 대형 주차장이 있는 체험장은 예약제로 마을에서 운영한다. 체험 프로그램은 물레를 돌려 그릇을 만드는 성형 과정과 무늬를 새겨 넣는 장식, 그리고 불 때기 등에 참여할 수 있다. 도예가 정웅기(61) 선생으로부터 도자기에 대한 기초이론을 듣고 정 선생 제자 3명의 지도로 찻잔 만들기 체험을 한다.

하나의 도자기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면서 도공의 정성과 열정, 예술혼과 인내가 어우러져야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숙성시킨 흙을 물레 위에 얹어 놓고 위아래로 반복해서 다듬는 과정을 거쳐 원하는 찻잔을 빚는다. 체험은 주로 물레로 원하는 그릇을 만든 뒤 문양을 그려 넣는 것까지만 하고, 나머지 과정은 정 선생 제자들이 마무리해 체험자의 집으로 보내준다.

인근의 하동 샘문골 무명도공추념비로 향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수많은 하동 샘문골 도요지 사기장들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빗돌이다. 이어 차사발박물관으로 향했다. 넓게 펼쳐진 연꽃밭 사이로 나무를 깔아놓은 오붓한 산책로가 퍽 운치가 있다. 차사발박물관 밖에는 조선의 백성을 닮은 옹기들이 무리를 지어 탐방객들을 반겨준다. 박물관 내부에는 차사발 분청사기 등 각양각색의 다양한 도자기들이 눈길을 끌었다. 도공의 예술혼과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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