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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타계 30주기…새로 읽는 나림 명작] <4> ‘바람과 구름과 碑(비)’

권력쟁탈 얽힌 연애와 역사…감각적 전개에 대중은 카타르시스

  • 손혜숙 한남대 교수
  •  |   입력 : 2022-10-09 19:18:4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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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부터 1194회 신문 연재
- 외설적인 통속성과 역사성 조화
- 서민들 관점 역사소설로 인기
- 30여년 지나 TV드라마로 방영
- 장르·매체 넘나들며 주목받아

- 지병 앓던 중 갑작스럽게 타계
- 10권 소설 뒷얘기 미완이지만
- 작가 혜안과 필력 다시 빛날 것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되어 큰 인기를 구가했던 웹소설 ‘미남당’이 최근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오버랩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최천중.

물론 결은 다르지만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에 다기한 재능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점. 그 과정에서 행해지는 불법이나 비도덕적인 행위들이 정의 구현이라는 궁극의 목표 아래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점은 두 인물을 하나로 보게 만든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도 나림 이병주의 필력은 빛을 발한다.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떠나 비슷한 뼈대를 갖춘 서사가 인기를 끌고 있으니 말이다. 더하여 최천중이 등장하는 ‘바람과 구름과 碑(비)’를 원작으로 영상화된 드라마가 2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다는 점도 여전히 그의 필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증빙한다.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병주 ‘바람과 구름과 碑(비)’의 신문연재 스크랩. 이 소설은 1977년 2월 12일부터1980년 12월 31일까지 ‘조선일보’에 1194회 연재됐다. 전민철 jmc@kookje.co.kr
■ 대중·신문연재·역사 소설

소설 ‘바람과 구름과 碑’가 연재되던 1970년대는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대중이 확산되던 시기다. 대중소설의 출판유통 변화와 함께 신문연재 소설을 대거 게재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신문사들 역시 인기 작가를 포섭하기 위해 연재소설 고료를 대폭 인상하기도 했다. 특히 연애소설과 함께 역사소설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과거 왕이나 영웅 중심의 역사소설이 서민 중심의 서사로 전환되면서 실제 소설의 수요자인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병주 역시 궁중 중심의 역사소설의 한계를 언급하며 ‘역사소설의 사명이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궁중이나 양반을 보는 방식에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진실성을 갖는 구성. 이병주가 지향하는 역사소설의 리얼리즘이자, 소설 ‘바람과 구름과 碑’의 구성 방식이다.

■ 끝나지 않은 이야기

‘바람과 구름과 碑(비)’ 표지.
“사주를 미리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추어 왕재(王材)를 만드는 거죠. 동시에, 왕재를 기를 재물을 만드는 거죠. 왕재를 받들 인재도 만들어 나가는 거죠. 바람을 만들고 구름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그 풍운을 타고 용이 등천하는 겁니다.”(‘바람과 구름과 碑 1’, 194쪽)

혼란스럽던 19세기 말, 세상을 바꿀 왕과 인재가 필요했다. 점술가이자 관상사인 최천중은 그런 왕과 인재를 스스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소설 ‘바람과 구름과 碑’는 이런 최천중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협력하는 이야기이다. 이병주는 ‘왕과 지식인, 동학이 손을 잡고 외세를 배격하며 부패한 조정을 뒤집어 입헌군주제를 세웠으면 어땠을까’하는 의문을 품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77년 2월 12일부터 1980년 12월 31일까지 ‘조선일보’에 1194회를 연재한 뒤 미완의 상태로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가 1987년에 와서야 10권이 완성되었다. 당시 상황을 이병주는 “연재소설이 길어지면 새로운 독자를 포함하여 신문사, 작가 모두에게 미안한 노릇”이라며 다른 방법으로 후속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0권이 완성되었지만, 10권으로 이 소설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10권 발간 이후 지병을 앓던 이병주가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최천중을 중심으로 신(晨)나라를 세운 17인 지사(志士)의 이야기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연재 마지막에 이병주가 밝힌 다음의 언설을 통해 뒷이야기를 짐작해 볼 뿐이다.

韓末(한말)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悔恨(회한)이다. 그런 만큼 해석도 多彩多樣(다채다양)할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시민의 눈으로, 또는 서민의 애욕을 통해 그 悔恨(회한)을 풀이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중략) 그런 가운데서도 안타까운 것은 義兵 運動(의병 운동)이다. 國權(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그 거룩한 저항의 용사들은 오늘날 國史(국사)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日帝 史觀(일제 사관)에 억눌려 억울한 대접을 받고 망각의 먼지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내가 의도한 바는 그것까지를 포함해서 3·1운동까지의 悔恨史(회한사)를 적으려고 한다. (후략) (‘바람과 구름과 碑를 끝내고’, ‘조선일보’ 1980.12.31)

■ 대중을 매혹하는 서사

2020년 5월~7월 TV 조선에서 방영된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포스터.
이번에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났다. 매체 환경이나 문학적 기호 등 많은 것이 변했지만 몰입도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무엇이 이토록 변함없이 소설의 행간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대중의 욕구 충족에 부응하는 서사의 힘에 있는 게 아닐까.

이 소설 전반부는 주인공의 ‘세계 건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재 모으기 과정을 다루며 대중성과 통속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각 인물의 사연과 인연을 맺는 과정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심적 위안을 제공하기도 하고 외설에 가까울 정도의 연애와 정사는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후반부에서는 실록에 근거한 역사 서사를 구축하여 독자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경장 등 한말의 역사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종교적 철학적 사상과 동서고금의 서적이나 경전 시문을 통해 정세를 묘사한다.

또 인물들의 내적 심리 표현에 한시를 유려하게 활용하며 지적 유희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장치는 독자의 지적,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통속성과 진지함의 조화. 소설 ‘바람과 구름과 碑’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여기에 더해 킹메이커의 등장과 영웅의 탄생, 그들이 표방하는 민중을 위한 세상은 독자들에게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부여한다.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킹메이커 최천중의 개인적 욕망이 표면적인 명분 아래 은폐되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의를 구현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이미 독자를 압도해버렸기 때문이다.

■ ‘시대 초월’ 상호텍스트성

소설 ‘바람과 구름과 碑’가 현재에도 여전히 잘 읽히는 또 다른 이유는 변함없는 세태에 있다. 과거시험과 벼슬을 돈으로 사는 시대 일부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며 그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 비단 한말에 국한된 시대의 문제일까. 여기에 이 소설의 첫 번째 상호텍스트성이 있다.

무엇보다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 수 있는 서사적 힘은 소설이 시대를 초월하여 읽힐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 소설은 1989년 10월부터 1990년 3월까지 50회에 걸쳐 KBS에서 드라마로 방영됐고, 최근 리메이크돼 2020년 5월부터 7월까지 21부작으로 TV 조선에서 방영됐다. 처음 방영됐을 때는 시대 분위기상 점술가라는 설정부터 논란이 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방영이 되었다. 최근 리메이크된 드라마 역시 준수한 시청률을 확보하며 성황리에 종영됐으며 TV 방송 VOD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하는 등 인기 콘텐츠로 떠올랐다.

매체 특성상 서사나 등장인물의 신분 등 상당 부분 각색됐지만, 원작의 탄탄한 서사적 상상력에 빚지고 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전히 빛나는 그의 혜안과 필력이 또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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