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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68> 합천 고가송주(古家松酒) 술상

한옥고택서 내온 200년 비법 술상… 솔향 가득 사대부의 멋이구려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10-25 19:21:41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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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잎·찹쌀로 빚어낸 가양주
- 은진 송씨 종가서 7대째 전수
- 꼬박 100일은 익혀야 진가
- 1999년 농림부 전통식품 지정

- 은은한 과일·꽃향도 맴돌아
- 가마솥으로 쑨 두부·메밀묵과
- 산나물 곁들이니 환상 조합

- 옛 선비 풍류가 따로 있으랴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머리카락을 슬쩍 스치고 지나간다. 너른 품의 합천호는 파랗다 못해 짙푸르다. 한참을 합천호반을 따라 도는 일주도로를 무심하게 돌아드는 중이다. 합천호에 햇살이 비쳐 윤슬이 온통 글썽인다. 나그네 마음마저 따라서 글썽여지는 시간이다.
송씨 집안에서 7대째 전해지는 가양주는 솔잎과 함께 빚어낸 송주(松酒). 고택에서 직접 솔잎 술을 빚어낸다고 고가송주(古家松酒)라고 부른다. ‘송주’가 오랜 숙성 과정으로 색깔이 조금 진한 황금빛이라면, ‘약주’는 상대적으로 은은한 황금빛이 돈다.
긴 모롱이를 휘돌아 드는데 아주 수려한 우리 집(한옥)이 자리하고 있다. 참으로 반듯하고 의젓하다. 그러는 사이 ‘고가식당’ 팻말이 스쳐 지난다. ‘응? 식당~?’ 급하게 차를 세워 주위를 살핀다. 합천군 대병면 역평리 즈음이다.

팻말에 의하면 ‘1999년 농림부 전통 식품 지정 고가송주, 7대째 전통으로 이어오는 고가식당’이라 적혀있다. 7대 종가의 전통으로 고가(古家)에서 음식과 술상을 내놓는다는 게다. 갑자기 가을 나그네의 주욕(酒慾)이 바짝 당긴다.

뒤에 알고 보니 이곳은 ‘은진 송씨’ 종갓집이다. 무릇 종갓집에는 그 집안만의 특별한 가양주가 내려오기 마련이다. 제례나 잔치, 접빈객(接賓客·손님을 대접하는 일) 등 다양한 가문의 대소사와 집안 어른의 건강을 보하기 위한 약용으로 널리 쓰였다.

예부터 합천은 산 깊고 물 맑은 고장. 너른 평야와 수려하고 넉넉한 강을 끼고 있어 낙향한 사대부들이 세거하기에 알맞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합천에는 여러 문중이 곳곳에 자리 잡고 그들만의 비법으로 빚은 가양주를 전승해왔다.

송씨 집안도 마찬가지이다. 7대째 대대로 내려오는 가양주는 솔잎과 함께 빚어낸 송주(松酒). 고택에서 직접 솔잎 술을 빚어낸다고 고가송주(古家松酒)라고 부른단다. 200여 년을 종부(宗婦)를 통해 이어져 내려오는 오랜 전통의 가양주이다.

그해 지은 찹쌀과 솔잎을 더하고 마른 쑥 위에 띄운 누룩을 섞어서 맑고 정갈하게 술을 빚어낸다. 백일치성을 드리듯 100여 일이 꼬박 지나야만 제대로 잘 익은 송주를 맛볼 수가 있단다. 그래서 한 모금만 머금어도 은은한 솔향이 입안 가득 그윽해지는 술이다.
경남 합천의 고가식당 전경. 7대를 이어온 종가의 전통으로 고가(古家)에서 직접 만든 음식과 술상을 내놓는다.
입구에는 빈객을 모시는 100년 된 문중 객사 사의정(四宜亭)이 위풍당당 서 있고, 담 넘어 뒤쪽으로는 160여 년이 된 사랑채, 그 옆으로 가설 식당을 마련해 두었다. 이곳에서 송씨 집안의 맛깔스러운 술과 음식이 소박하지만 단아한 ‘고가술상’으로 상에 오르는 것이다.

식당에 앉아 차림표를 본다. 술은 ‘고가송주’와 ‘고가약주(古家藥酒)’ 두 가지. 안주로는 메밀묵과 손두부, 약과 등속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가마솥에서 직접 하나하나 만들어 낸다니 그 맛과 정성이 여간 아니겠다.

송주를 맛보고자 했는데 때마침 떨어졌단다. 담근 술이 채 덜 익었다기에 염치 불고하고, 집안에서 소용하는 놈으로 한 잔 부탁해 입 다심만 한다. 파르스름한 청자 술잔 속에서도 황금빛의 주색이 완연하다. 한 모금 입술을 적신다.

입 안에 살짝 머금었을 뿐인데 온몸으로 솔향이 전해진다. 누룩 향이 살짝 오르면서 쌉쌀한 뒷맛과 향긋한 풍미가 제대로다. 넘치지 않으면서도 균형 잡힌 넉넉함이라 할까? 달지 않으면서 들큼하고 쓰지 않으면서 쌉싸래하다.

곧이어 고가약주와 메밀묵 손두부가 상에 오르고, 죽순 장아찌, 산나물, 열무얼갈이김치, 텃밭의 갖은 채소로 버무린 채소 샐러드 등이 그 곁을 함께 한다. 단출하지만 모자람이 없는 술상이 이내 차려졌다.

‘고가약주’ 한 잔 따른다. 살짝 싱그러운 향이 스친다. 술잔을 들여다보니 황금빛 술이 온전하다. ‘송주’가 오랜 숙성 과정으로 색깔이 조금 진한 황금빛이라면, ‘약주’는 상대적으로 은은한 황금빛이 돈다. 송씨 집안의 술을 두고 합천사람들이 ‘황금주’라 부르는 이유를 잘 알겠다.

입구에는 빈객을 모시는 100년 된 문중 객사 사의정(四宜亭)과 담 넘어 뒤쪽으로는 160여 년이 된 사랑채 등이 있다.
약주 한 잔 음미한다. 참 좋은 누룩 향이 기껍게 한다. 은은한 과일 향이 코끝으로 퍼져난다. 우리 술에서만 나는 ‘과일 향’ ‘꽃 향’의 누룩 맛을 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아한다. 특히 제대로 빚어 잘 익은 포도 향은 더 일러 뭐하겠는가.

약주 한 잔에 메밀묵을 크게 한 점 집어먹는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꽤 괜찮다. 담담하던 맛이 씹을수록 서서히 구수함으로 올라온다. 열무얼갈이김치를 얹어서도 먹는다. 갓 담근 생김치라 그런지 풋풋한 ‘풀 내’가 은근히 좋다. 메밀묵의 슴슴함과 김치의 알싸하면서도 풋풋함 또한 잘 어우러진다.

이번에는 손두부를 한 점 먹어 본다. 우리 콩을 쓰는지 맨 두부를 먹는데도 고소함이 남다르다. 씹으면 씹을수록 올라오던 고소함이, 참기름을 살짝 두른 양념장과 함께 먹으니 그 정점을 찍는다.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니 곁들이 안주로 술을 마신다. 고소한 참기름에 소금 간을 살짝 한 산나물은 그 향이 제대로 살아서 푸릇푸릇하다. 짭조름하면서도 향긋하고 고소함이 술맛을 잘 뒤받쳐 준다.

죽순 장아찌는 죽순 한 점에 술 한 잔 넉넉히 마실 정도로 든든한 곁 안주가 되겠다. 간간하면서도 아삭아삭한 식감이 계속 젓가락을 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채소 샐러드는 텃밭에서 나는 상추 등 갖은 엽채도 무심한 듯 손으로 툭툭 뜯어 조물조물 무쳐내기만 했는데도 싱그러움이 보통 아니다. 두어 되의 고가약주를 마시고 나니 취기가 슬슬 오른다. 알코올 도수 11도의 청주이니 과음할 수도 있겠다. 때마침 가을 햇볕이 술상 위로 슬금슬금 올라온다.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기분 좋은 나른함이 밀려온다. 좋은 지인들과 마주한 술상, 편한 자리라서 더 그럴 게다.

가을이 깊다.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 있어 가을은, 더없이 좋은 동행(同行)이다. 청명한 날씨와 풍성한 밥상, 어디서든 좋은 사람들과 그 지역의 음식을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계절. 그래서 오늘도, 좋은 밥상~ 그리고 술상~ “참,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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