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격동하는 세계 정세 속에 조선의 지식인은 여러 세계지도를 통해 미지의 세계에 초대받는다. 당시 중국에 도착한 서양 선교사는 기독교 전파를 위해 세계지도를 제작해 활용했다. 조선은 사신을 통해 중국에서 세계지도를 들여온 덕에 기존 관념과 달리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세계지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을 생각하게 되었다. 부산박물관이 소장한 ‘곤여전도’도 그러한 인식 전환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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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박물관 소장 곤여전도 일부. |
곤여전도는 벨기에 출신 예수회 선교사 페르비스트에 의해 제작된 세계지도다. 기존 편찬된 지도 내용을 계승하면서도, 최신 지도 제작기법과 지리 정보를 적용했다. 1674년 북경에서 초간된 북경판, 1856년 광동에서 중간한 광동판, 심지어 1860년 조선에서 광동판을 토대로 한 해동판까지 제작될 정도로 널리 유통됐다. 곤여전도는 목판인쇄로 제작되었기에 다수 남아있으나, 초간본인 북경판을 비단에 채색 필사한 것은 현재까지 부산박물관 소장본이 유일하다.
크게 세계지도와 설명 글로 구성됐고, 모두 8폭의 병풍 형태로 표구되어 장식 효과까지 겸비했다. 지도는 두 개의 원으로 나눠 각각 동반구와 서반구를 구분해 그렸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朝鮮)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서양의 탐험과 측량 성과가 반영돼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지는 지금과 유사할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 남극대륙과 바다에는 코뿔소 낙타 도롱뇽 악어 등 실제 동물 또는 상상의 동물과 항해하는 선박이 그려져 있어 역동성을 더했다. 한편 지도 여백에는 지진 파도 바람 구름 비 등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기술된 설명 글이 각기 다른 모양을 한 틀 14개 안에 해서체로 적혀있다.
필사된 곤여전도의 정확한 정보는 전해진 바 없다. 다만 배접지로 쓴 문서를 보아 조선에서 제작됐고, 지도 속 각 표현 요소의 화풍과 설명에 쓰인 글씨체 유행 시기를 고려해 필사 시기를 18세기 초·중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곤여전도가 필사된 이후 지금까지 세상은 크게 변했다. 어떤 나라는 흥하고, 어떤 나라는 망했다. 어떤 바다는 땅이 됐고, 어떤 빙하는 녹아 사라졌다. 그 분분한 변화처럼 곤여전도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빛이 바래고 조금은 찢겨 있다. 더 이상의 손상을 막기 위해 조도를 최대한 낮추고 미술실에서 전시 중이다. 그윽한 조명 아래에서 조선이 서양을 인식하고자 했던 적극적인 마음과 진지한 호기심을, 넓은 세상에 대한 긴장과 설렘을 함께 느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