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관찰이 필수인 귀납법을 창시한 철학자인 베이컨. 임종 역시 그다웠다. 베이컨은 1626년 닭 몸통 내에 눈[雪]을 채우는 냉동실험을 하다가 폐렴에 걸려 65세로 눈을 감았다.
 |
| 프랜시스 베이컨 초상화. |
저자는 1561년, 엘리자베스 여왕 옥새를 관리하던 영국 황실 고위 관리였던 니콜라스 베이컨 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아들은 56년 뒤인 1617년 부친처럼 국새상서가 돼 왕실을 위해 뛰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어릴 때부터 매우 싫어했지만 그의 학풍이 강한 트리니티 칼리지가 명문이다 보니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졸업 후 하원의원 법무차관·장관 국새상서 대법관을 거쳤다. 1618년 베룰럼 남작, 1621년 세인트 올번스 자작 칭호를 얻었다. 그해 왕실을 옹호해온 저자를 반대 세력인 의회가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베이컨은 소송인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고 영원히 공직을 떠나 집필에 힘썼다. ‘수필집’(1597년) ‘학문의 진보’(1605년) ‘신아틀란티스’(1614~17년) ‘신기관’(1621년)이 그가 펴낸 저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