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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문단 '큰형님', 보도연맹을 직시하다

보이지 않는 숲 / 조갑상 장편소설 / 산지니 /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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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갑상은 1980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등단 42년을 맞았다. 그는 한국 문단과 문학에서 중요한 작가이며, 그가 몸담은 부산 소설계·예술계에서는 더욱 비중이 크다. 부산 작가사회의 ‘영원한 큰형님’ 면모가 그에게는 있다. 그런 조갑상 작가의 소설 세계에서 보도연맹 사건을 중심으로, 거대한 체재의 폭력에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의 아픈 운명은 중요한 문학 대상이자 주제를 이룬다.
2014년 경남의 한 지역에서 6.25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보도연맹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모습. 국제신문 DB
조갑상 작가가 새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숲’을 내놓았다. 산지니출판사는 이와 함께 작가 조갑상이 빚은 초기 작품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와 ‘길에서 형님을 잃다’를 재출간했다. ‘보이지 않는 숲’에 해설을 쓴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설명을 조금 인용한다.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로 인한 희생자는 엄청났다. 전쟁 전 보도연맹원이 약 30만 명에 달했는데, 전쟁기 희생된 맹원의 수는 적어도 수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연맹은 기존의 좌익 활동가들을 자수시켜 사상적으로 전향을 시킨다는 명분으로 (6·25 한국전쟁 직전) 만들어진 것이었다.”(391~393쪽)

‘보이지 않는 숲’에도 보도연맹 이야기가 나온다.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한국사회의 이해’ 교재 사건)도 나온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소설은 보도연맹이나 국가보안법 적용 사례를 ‘사건’으로 다룬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사건은 일종의 배경·조건·상황을 이룬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소설은 사건 진상을 캐서 사리를 삼엄하게 따져 분명한 책임·공과를 묻는 이분법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이야기에 집중했을까.

소설은 1970년 시작한다. 6·25 터진 지 20년 지난 때다. 한국은 가난한 반공 독재 국가였다. 잡지사 기자 김인철과 불우하지만 문학 감성이 짙은 서옥주가 있다. 두 사람 모두 20대이며 6·25 전쟁 때 아버지가 참혹하게 희생된 깊은 상처가 있다. 무고한 사람을 재판도 없이 숱하게 죽이고, 공동체와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엄청난 상처를 남긴 보도연맹 사건을 둘은 공유한다.
조갑상 소설가. 국제신문 DB
둘은 영웅이나 투사가 아니다. 상식을 지키며 바르게 살려는 의지도 분명하지만, 적당히 세속적인 욕망도 있다. 평범한 우리 모습이다. 이들은 보도연맹 사건 탓에 엄청난 상처를 입지만, 그것 때문에 파괴되지는 않는다. 세월은 흘러 한국은 발전한다. 두 사람은 ‘현대사의 상처를 공유한 중산층’이 된다. 아이들이 태어난다. 부모 세대와 달리 유복하게 잘 자란다. 1990년대가 되자 이번에는 ‘한국사회의 이해 교재 사건’이라는 국가보안법 스캔들이 사회를 흔든다.

김인철·서옥주는 그 속에서 갈등하고 부딪히고 위태로워지지만, 아이들과 함께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조금씩 받아들이고 때로 조금씩 포기하며 함께 살아낸다. 아이들은 국보법 위반 사건에 휩쓸릴 듯하지만, 신세대답게 ‘쿨하게’ 대응하며 성장해간다. 현대사가 남긴 상처는 깊다. 체재는 비슷한 사건을 자꾸 만들어낸다. 살림이 넉넉해진 사람들은 욕망·욕구를 부여잡고 자잘해지며 티격태격 다툰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아이들, 그러니까 미래세대에 고스란히 옮지는 않는다. 그들에겐 그들의 주관이 있다.

조갑상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숲’.
그래서 이 소설은 격동·고통·상처의 시대, 욕망의 시대, 번영의 시대, 민주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흔들림 없이 펼치는 작가의 힘은 매우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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