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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 오뎅·간또·덴뿌라 부산어묵의 문화사

현해탄 건너와 국민간식으로, 디저트로…어묵의 변신은 무죄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12-20 19:28:41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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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선살 으깨 구운 日 ‘네리모노’
- 시대별 제조법 따라 명칭 분화
- 일제강점기 거쳐 부산에 정착

- 꼬치에 물떡 더하고 매콤양념도
- 부산식 음식으로 슬기롭게 진화
- 수제어묵 고부가가치 산업 확대
- 고로케·면 등 고급·다양화 시도

부산은 어묵이 탄생한 곳이다. ‘어묵’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생선의 살을 으깨어 소금 따위 부재료를 넣고 익혀 응고시킨 음식. 원래 일본 음식으로서 으깬 생선 살을 대꼬챙이에 덧발라 구운 데서 비롯하였으며, 나무 판에 올려 찌거나 기름에 튀겨서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부산 중구 국제시장 권역의 골목 등지에서는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어묵 꼬지가 훌륭한 길거리 음식 메뉴로서 활약을 펼친다.
알다시피 어묵의 원 제조·조리법은 일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어묵은 네리모노(練り物)로 통칭된다. ‘생선살을 으깨거나 갈아서 반죽을 만들고, 여러 식재료와 함께 다양한 모양으로 찌거나 굽거나 튀겨서 정형한 음식’이 네리모노이다. 일본 어묵 요리의 총체가 바로 네리모노다.

네리모노는 일본 선사시대인 고훈(古墳, 3~7세기)시대부터 생선 살을 나무막대기 등에 붙여 불에 구워 먹은 것이 시작이다. 이후 오랫동안 일본인에게 사랑받으며 제조방법에 따라, 찌는 가마보코, 굽는 치쿠와(竹輪), 튀기는 텐푸라(天ぷら) 등으로 분화한다. 이러하기에 어묵은 ‘문화 국수주의자’들에게는 음식문화사적으로 다소 불편한 음식이다. 우리 국민, 특히 부산 사람들에게는 널리 사랑받는 향토음식 중 하나지만, 일제강점기를 즈음하여 일본에서 흘러들어와 ‘국민 음식’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음식을 비롯한 모든 문화는 국경이 없다. 좋으면 받아들이고 불편하면 고쳐 쓰고 마음이 맞으면 공유한다. 문화는 상호 호혜 관계다. 서로 주고받는 교류와 공감, 공유 속에 변화·발전 또는 퇴보·망각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 할아버지의 ‘가마보꼬’

빨간 어묵.
부산은 지정학적 관계 때문에 일본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음식문화를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우리 명란이 일본 규슈의 멘타이고(明太子)로, 곱창전골이 모츠나베(もつ鍋) 등으로 넘어간 것이 그렇다. 일본에서 넘어온 것으로는 어묵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부산 사람이 한때 써왔던 ‘가마보코’ ‘오뎅’ ‘간또’ ‘덴뿌라’ 등의 이름에서 부산어묵의 출처가 능히 짐작된다.

어린 시절, 한때 학교 앞 불량식품 가게에서 쪽자(달고나)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군것질이 ‘간또’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어묵꼬치인데, 간또 한 개 먹고 왜간장(진간장)으로 맛을 낸 ‘간또 국물’을 한 잔 한 잔 훌훌 마시다 보면 그 단짠단짠의 감칠맛이 어찌 그리도 풍성하던지. 고학년이 되자 어머니께서는 늘 도시락을 싸 주셨다. 밥 위에 달걀 프라이 하나 얹고 반찬으로는 주로 김치와 덴뿌라, 분홍소세지 구이 등을 함께 싸주셨다. 그때 ‘덴뿌라’ 반찬이 지금의 ‘어묵 간장조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당시 이 ‘간또’나 ‘덴뿌라’를 ‘가마보꼬’라 부르셨다. 왜 가마보꼬라 부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주거지역이 달라 지방마다 서로 이름을 달리 부르는가 보다 생각했다. 당시 서부 경남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고기’를 ‘괴기’라 불렀던 것처럼.

■ 부산은 ‘튀겼다’

어묵 고로케(크로켓).
여기서 부산 사람들이 어묵을 대신해 불렀던 ‘가마보코·오뎅·간또·덴푸라’는 원래 어떤 음식이었을까? 일제강점기나 해방공간에서는 ‘가마보코’가 어묵의 대표 이름이었다. 초량에 왜관이 설치되면서 일본 음식 가마보코가 처음으로 부산에 등장한다. 가마보코는 갈아서 으깬 생선살을 대나무에 붙여 구운 것으로, 그 모양이 부들 꽃대와 비슷하다 하여 ‘가마보코’라 했다. 에도 시대부터는 쪄서 조리하는 방식으로 정착했다. 반죽한 생선살을 반달 모양으로 쪄낸 ‘한펜(半片)’이 대표적이다.

오뎅은 이 가마보코를 무, 곤약, 토란 뿌리, 삶은 달걀 등과 함께 국물에 푹 삶아낸 전골 요리이다. 원래는 두부 곤약 등을 꼬치에 꽂아 된장을 발라 구워 먹던 ‘덴가쿠(田樂)’라는 음식에서 시작됐다. 덴가쿠는 모내기 때 풍년을 기원하며 행하던 춤과 노래, 즉 ‘들놀음’이었다. 그때 야외에서 구워 먹던 음식 또한 덴가쿠라 했다.

이후 에도시대에 상업이 발달하자 관동(關東, 간토) 지방을 중심으로 ‘편하고 빠르고 맛있는’ 패스트푸드식 덴가쿠를 생각해낸다. 덴가쿠를 다시마 국물과 진간장으로 간을 맞춰 탕으로 팔았는데, 이것이 현재 일본의 오뎅이 된 것. 오뎅은 일제강점기 부산 중구 부평시장 인근 일본인 대상 요정 ‘요리야(料理屋, 요리옥)’의 고급 안주로 등장했다. 당시 아주 비싼 음식으로 일본인 관리나 사업가, 조선 상류층이 주로 맛본 음식이다.

이후 이를 간소화한 어묵꼬치가 서민에게 보급되면서 오뎅이라는 요리가 ‘오뎅 속 어묵’을 칭하는 단어로 변용됐다. 일본에서는 이 오뎅을 도쿄 지역인 ‘칸토 지방에서 먹는 음식’이라 하여 오사카 중심의 간사이(關西) 사람들이 ‘칸토다키(關東炊き)’로 불렀다. 칸토다키가 ‘국물 안에 들어가 있는 어묵’을 지칭하는 부산의 ‘간또’로 파생됐다.

텐푸라는 에도 시대 말 류큐국(현 오키나와)과 교류가 있던 규슈의 사쓰마(가고시마)에서 기름으로 튀겨내는 요리법으로 가마보코를 만든 것이 시초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서도 값싼 생선을 통째 갈아 밀가루와 반죽한 어육을 ‘튀겨서’ 팔았다. 이 튀김어묵이 현재 부산어묵의 원형으로, 일본의 덴푸라 방식 어묵이라 당시 ‘덴뿌라’로 불렸다.

■ 물떡이 품은 사연

물떡. 원래 부산에선 그냥 ‘떡’이라 했다.
이렇듯 어묵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음식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우리 식단에 중요한 식재료로 편입된다.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이 어묵을 어느 정도 선호했고, 그것이 음식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김동리 소설 ‘해방’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해방 후,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오래도록 먹어 온 가마보코’가 ‘일본말이라 못 쓰게 된다’며 ‘가마보코까지 못 먹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그러면서 ‘가마보코로 조선 사람들이 만 가지 요리 쓰고, 잔치나 제사에도 쓴다’며 ‘일본 음식이라는 것에 의아해’한다.

그러나 부산은 이 네리모노를 들여와 부산 방식으로 슬기롭게 소비하고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확대·재생산한다. 어묵과 함께 물떡을 제공해 부산만이 가지는 구수한 어묵 육수 맛을 구현하고, 어묵과 함께 먹은 물떡 한 개로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는 실용성을 구현했다. 떡볶이 형태 ‘빨간 어묵’으로 부산 사람의 매운맛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부산의 어묵회사가 주축이 되어 ‘디저트 어묵’ ‘어묵 베이커리’ 등 창조적 혁신을 통해 어묵 산업 패러다임을 주도하며, 어묵을 베이스로 하는 다채로운 고급 식품 개발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그 대표적 음식이 ‘어묵고로케’ ‘어묵면’ 등이다. 일본에서 전래됐지만 새로운 트렌드,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발전시켜 오늘에 이른 부산어묵. 부산어묵에서 보듯 부산, 부산 사람은 한갓 어묵에서도 창조적인 역동성을 발휘한다.

‘어묵 한 장’으로 반찬과 간식으로, 서민 술안주와 베이커리·디저트로, 다양하게 활용 범위를 넓히고 다른 음식으로 파생·분화시키기도 한다. 다른 음식산업과 펼치는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하다. 그래서 부산어묵은 아직 배고프다.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움직이며 진화를 거듭한다. 그 끝이 어디일지 몰라도 부산의 향토음식으로 부산 사람 성정을 품은 ‘부산어묵’이라는 특질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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