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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고달픈 1000년史, 그래서 더 웅장하고 싶었던 도시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1> 부다페스트①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1-01 19:26:1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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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굳게 닫혔던 빗장이 걷혔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빠져나와 내가 아는 세계 너머를 경험함으로써, 다름과 공감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이 유럽 10개 도시로 ‘달리 인문여행’을 떠났다. 그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인문여행기를 쓰고 싶다는 취지에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21일의 여정 동안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독일 베를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이탈리아의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폼베이를 차례로 머물다가 그곳에서 느낀 점을 글에 담는다. 박 소장의 시선과 경험에 때로는 공감으로, 때로는 이견으로 독자들만의 타임머신을 경험하길 기대한다. 박 소장은 “감히 오디세우스를 떠올리면서 한겨울 유럽 세상으로 항해에 올랐다”고 말했다.


- 중세 왕국·식민지배·패전국
- 나치 조력국 그리고 공산화
- 영욕의 역사 그대로 간직한
- 수도 부다페스트의 건축물

- 자존심과 염원, 반성과 후회
- 헝가리 국민의 복합적 정서
- 도시 곳곳에서 읽을 수 있어

시작부터 길이 막혔다. 경유지인 뮌헨의 폭설로 부다페스트로의 연결편이 결항됐다. 우여곡절 끝에 항공편을 포기하고 열차를 탔다. ‘인생 항해가 어디 계획대로 되더냐’고 누군가가 가르치는 듯하다. 열차에서 만난 한 청년도 같은 이유로 열차를 선택했단다. 루마니아인인 그 청년과 얘기를 나누면서 국경을 접한 이웃으로서 루마니아인들과 헝가리 역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가까울수록 다툼이 많은 것은 사람이나 국가나 마찬가진가 보다. 헝가리 여행은 역사와 함께 해야 더 잘 이해가 된다.

■영욕의 헝가리 역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이슈트반 성당의 내부 모습. 가운데 보이는 것이 이슈트반 왕의 성상이다.
헝가리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았다. 9세기 말 중앙아시아 지역을 누비던 마자르족이 넘어와 이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100여 년 세월이 지나 세력을 잡은 이슈트반 1세가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이고 행정 조직을 정비했다. 1000년에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헝가리의 왕으로 추대받으면서 헝가리 왕국을 건국했다. 그러나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황폐화되고 16세기 초에는 오스만제국과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 지배를 받다가 17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에 완전히 복속된다.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자치 왕국으로 승격하면서 도약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운명을 같이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후 패전국이 된다. 1918년 오스트리아로부터 완전히 분리 독립하고 헝가리민주공화국을 설립하지만 1919년 공산혁명으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다. 패전국으로서 연합국과 체결한 트리아농 조약으로 헝가리는 영토의 상당수를 양도한다. 이로써 헝가리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이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의 편에 서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2차 대전 때 헝가리는 독일 나치와 손을 잡으면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그러나 1944년 전세가 불리해지자 추축국에서 탈퇴하려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오히려 나치의 지원을 받은 ‘화살십자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헝가리는 종전까지 추축국으로 전쟁을 치르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1946년 초 왕제가 폐지되면서 소련에 의한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선포된다. 1949~1989년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지속되고 그 사이 반소비에트 혁명도 일어나지만 실패한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헝가리는 1990년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사회주의 색채를 벗어버린다. 이후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외국 자본이 유치되고 비교적 빠른 성장을 이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헝가리 역사를 이해할 때쯤 맞춰 도착한 이른 아침의 부다페스트 켈레티 중앙역은 낯선 이방인을 환대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할 일이 많아 손님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이는 검소한 여관집 주인장 같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영향도 있겠지만, 낮의 부다페스트는 회색빛의 퇴색하고 지친 느낌이다. 유럽의 원도심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웅장한 석조건물이 줄지어 서 있지만, 상당수 건물이 비어 있거나 관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밤의 부다페스트는 완전히 다르다. 낮에 잠을 자던 여신이 밤이 되어 아름답게 치장을 한 채 깨어나는 듯하다.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조명을 입으면서 관광객을 감탄하게 만든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의 잘못된 선택과 파괴·굴욕·패배를 반성하고 인정하면서 새롭게 일어나는 희망을 내뿜는 듯하다.

■이슈트반 성당과 국회의사당

헝가리 부다페스트 캘레티 중앙역에 승객이 이동하고 있다.
도심에서 가장 높은 건물(96m)은 이슈트반 성당이다. 헝가리 왕국의 시조이자 전국에 가톨릭 성당을 짓게 한 공으로 이슈트반 왕은 이 성당의 이름이 됐다. 성당의 제대 가운데 성상조차 이슈트반 왕이라는 사실에서 헝가리에서 그의 입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성전 오른편에는 그의 부패하지 않는 손이 신성함과 기적의 상징으로 유리 전시장 안에 전시돼 있다. 이러한 모습은 거부감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부패·소멸되지 않겠다는 헝가리 민족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보였다. 겨울이라 오후 3시 반만 되면 어둠이 깔리고 긴 밤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어둠을 밝히려는 불빛들이 켜지고 도시는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이슈트반 성당 정면 벽에는 예수 탄생을 담은 조명이 켜지고 성당 앞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면서 추운 날씨에도 성탄과 부다페스트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오히려 낮보다 흥겹다.

부다페스트의 또 다른 자존심은 국회의사당이다. 엄청난 크기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건축 양식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아름다운 도나우강’가에 자리한 의사당은 1896년에 건국 1000년을 기념해 완공, 개방될 예정이었으나 1904년에서야 계획이 실현된다. 96m의 높이는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인 1896년을 상징할 정도로 국가의 자존심을 오롯이 담아낸 건축물이라 하겠다. 전쟁과 식민지 지배 등으로 황폐화되고 무너진 국가의 자존심을 새롭게 재건해 당당하게 서겠다는 신념을 담은 것으로 읽힌다.

■자유광장

부다페스트 자유광장에 있는 기념비.
나치정권 하의 헝가리를 해방시켜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소련군이다. 이후 헝가리는 소련 지배를 받고 또다시 반소혁명과 피의 역사를 쓴다. 이슈트반 성당과 국회의사당 사이에는 자유광장이 있는데 이는 나치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한 곳이다. 특히, 1947년 이곳에 설치한 자유기념비는 지배당한 선량한 헝가리를 여인으로, 강압적으로 지배한 나치를 독수리의 발톱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많은 유대인들은 이에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즉, 나치 지배와 유대인 학살은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판단이고 능동적인 행위였다고 말이다.

자유광장이 보여주는 역사의 아이러니와 그곳에서의 가해자와 희생자의 기억은 미래의 희망이 정직한 과거 반성에서 비롯됨을 느끼게 해 준다. 기념비 앞에는 희생당한 유대인들 사진이 걸려있고 누군가가 그 앞에 놓아둔 꽃과 촛불이 우리가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선정 소장은= 부산의 대표적인 인문학당인 달리의 소장.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도서관 등에서 인문학 기획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21년부터 국제신문에 인문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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