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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외면·왜곡 않고, 무너진 풍경 다시 일으켜 세우다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2> 부다페스트②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1-08 19:33:09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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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나우강변 60개 신발 조형물
- 울고있는 버드나무·테러하우스
- 헝가리서 학살된 유대인 상징
- 적나라하게 역사 기억하고 반성

- 영웅광장·부다왕궁·세체니 다리
- 어부의 요새·마차시 성당까지
- 전쟁·침략에 붕괴된 자부심과
- 중세시대 아름다움 되찾는 중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다본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을 건너는 교량으로는 최초인 세체니 다리가 보인다.
■헝가리와 유대인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국회의사당의 위풍당당함에 감탄하면서 도나우 강변을 걷다 보면 강가에 길게 놓여 있는 신발을 만나게 된다. 진짜 신발이 아니라 조형물이다. 신발의 주인은 2차대전의 막바지 에 이곳에서 헝가리인들에 의해 총살되고 강에 버려진 유대인이다. 2차대전에서 독일과 함께 추축국이었던 헝가리 정권은 전쟁이 끝나갈 무렵 나치의 괴뢰당이던 화살십자당의 손으로 넘어간다. 이들은 살아 남은 유대인을 이곳에서 학살한다. 60이라는 신발의 갯수는 유럽에서의 유대인 희생자수를 상징한다. 헝가리는 역사 속에서 전쟁의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그 중에서도 나치에 대한 능동적 학살의 역사는 수치의 역사임에 틀림이 없다.

헝가리 영웅 조각상이 모여 있는 영웅광장. 가운데 솟은 것이 가브리엘 대천사상이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대략 10여 분 거리에 있는 도하니 거리에는 유럽 최대 규모의 유대인 교회당이 있다. ‘도하니 시나고그’다. 합스부르크 시절 국가가 보여준 유대인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로 부다페스트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다. 이곳은 그들에게 종교와 연대의 중심 역할을 하던 곳이었지만, 2차대전 중에는 유대인 수용소로 사용됐고 이곳에서만 20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한 채 회당 안뜰에 묻혔다. 회당 지하에는 헝가리에서 유대인들의 역사와 희생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을 알리는 전시관이 있으며, 안뜰 중앙에는 ‘울고 있는 버드나무’라는 작품명의 조각이 서 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버드나무 이파리 하나하나에는 희생된 유대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도하니 시나고그가 유대인들이 기억하는 역사라면 언드라시 거리에 있는 ‘테러하우스’는 헝가리가 기억하고 반성하는 역사라 하겠다. 건물 외관 지붕에 처마처럼 둘러 있는 테러(TERROR)라 새겨진 철판과 건물 입구의 쇠사슬로 된 조형물이 그 상징이다. 그 옆면에는 ‘노예로 살 것인가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그것은 우리를 감금하고 공포 속에 가두었다’ 등의 글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는 나치 독일과 헝가리 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각기 다른 영상에서는 인형들처럼 조각난 채 나체로 쌓여 있는 시체 더미와 히틀러를 향해 열광하는 일반 군중 및 팔을 뻗쳐 행렬하는 병사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흑백 화면 속에서 히틀러의 열띤 연설 장면과 그를 향해 환호하고 손을 흔드는 멋지게 차려입은 군중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 영상 속 죽은 여인의 공허한 눈빛과 얼굴을 땅에 파묻은 채 죽은 소년의 몸, 그리고 엄마 곁에서 죽어 있는 아기의 작은 몸뚱아리가 마치 내 발 아래에 있듯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감히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없다. ‘이러한 테러가 과연 과거 속에 묻힌 역사일 뿐일까’는 생각에 미치자 온몸이 떨려 왔다.

테러하우스의 지상 관람을 마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유대인들을 감금하고 살해했던 지하 감방이 있다. 그나마 현재 전시공간은 발견된 일부일 뿐이며, 지하로 얼마나 더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지하 감옥을 걸으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한 공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언젠가 나 또는 내 후손의 몫이 될 수 있음을 생각했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생각 없음의 개인’이 합쳐지면 또 다른 나치를 낳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테러하우스는 보여주고 있다.

■영웅광장

도나우 강변에 있는 유대인 신발 조형물.
부다페스트의 거리 곳곳에는 다른 여러 도시에 비해 유독 조각상이 많다, 특히 국가의 역사와 관련된 영웅의 조각상이 많은데 그 중 특별히 기억해야 할 영웅의 조각상을 둘러놓은 광장이 있다. 이름하여 영웅광장이다. 광장 중앙의 높은 탑 위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헝가리를 축복하며 서 있고 그 아래로 7인의 건국 위인 기마상이 있다.

중앙 탑 아래의 무덤은 정의와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은 무명용사의 무덤이다. 이들 모두를 지키려는 듯 둘러싸고 있는 14인의 영웅은 헝가리의 주요 지도자이자 곧 역사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며 건립한 이 거대한 광장에 서면 헝가리 정부와 국민의 자부심과 염원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무명용사의 희생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 평화의 역사에 대한 간절함이 아닐까. 광장 주변으로 미술관, 세체니 온천과 공원, 그리고 겨울이면 열리는 대형 스케이트장이 밀집해 있는데, 헝가리의 현시대사를 함께 만들고 있는 시민을 위한 휴식처인 듯하다.

■부다지구

유대인 지구에 있는 ‘울고 있는 버드나무’. 버드나무 이파리에 희생된 유대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도나우강 너머 언덕 위로 아름답게 자리한 성곽이 보인다. 부다지구다. 이전까지만 해도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던 시절에 세체니 백작이 사비를 들여 10여 년 만에 만들었다는 세체니 다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작품이자 후대의 자랑거리다. 부다 지구에는 부다 왕궁과 마차시 성당, 그리고 구도심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어부의 요새가 자리하고 있다.

전쟁으로 소실된 왕궁의 상당수가 이전의 모습으로 재건되고 있는데 건축 현장의 가림막이 이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거듭된 전쟁은 오랜 역사를 함께 해왔던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파괴해버렸다. 부다 왕궁의 재건과 함께 헝가리 역시 다시 당당하고 평화로운 옛 시절의 아름다움을 되찾기를 기원해 본다.

어부의 요새는 7개의 고깔모자 탑이 있는 성곽으로 7은 헝가리를 건국한 마자르족의 숫자이고 이름은 어부들이 이 성을 건립했다는 설과 이곳에 어시장이 있었다는 두 가지 설에서 유래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심 풍경과 함께 사진을 찍는 수 많은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 고딕양식의 마차시 성당은 15세기 후반 마차시 1세가 완성한 성당이었으나 이후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한때 이슬람사원으로 쓰이기도 했다. 합스부르크 왕국에 의해 다시 가톨릭 성당의 모습을 되찾았고 요제프 1세가 이곳에서 헝가리왕 개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다보니 이웃과의 분쟁도 잦고 역사적으로 혼자만의 독자노선을 걷기도 힘든 나라다. 그럼에도 이제 과거의 아픈 상처들을 치유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희망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중간쯤에 서 있는 듯하다. 반성의 핵심에는 자기의 불운과 위기를 유대인들 탓으로 돌렸던 과거가 있을 것이다. 1차대전 이후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정책은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영향이라는 핑계를 대기에는 역부족이다. 부다페스트를 잠식하고 있는 다소 우울하고 과묵한 느낌을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의 자세로 보는 것은 필자의 과도한 해석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역사를 외면하지도 왜곡하지도 않으려 노력하는 작금의 모습 자체가 헝가리의 희망으로 느껴진다.

바이더후너드 성 옆에 자리한 스케이트장과 시내 곳곳에 서 있는 아름다운 불빛의 나이트 마켓들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움과 세체니 온천에서의 발랄함은 이제 우울을 넘어 함께 즐거운 역사를 써갈 것이라는 헝가리의 희망이자 현재다. 연결과 연대를 상징하듯 도시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도나우강이 다시는 핏빛으로 물들지 않기를 기도한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하나의 불빛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불빛들의 하모니듯이 헝가리의 미래 역시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어둠이 아닌 빛으로 이어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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