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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 가졌던 여왕의 도시, 그 자체로 위대한 박물관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4> 빈②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1-29 19:48:49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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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스부르크가의 상징 같은 인물
-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자취들
- 빈의 관광명소·문화유적에 가득

- 클림트 ‘키스’ 등 볼 수 있는
- 손님맞이 별궁 벨베데레 궁전
- 도심서 떨어진 쇤브룬 궁전
- 여왕의 휴식을 책임졌던 공간

‘알베르티나’ 미술관 앞에선 난간에 앉아 사진을 찍는 많은 젊은이를 볼 수 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여주인공이 앉아 있던 난간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 너머로 고풍스런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외관이 보인다. 빈 중심부인 성 슈테판 성당에서 걸어 5분여 거리다.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사이에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동상.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음악을 감상하려면 몇 개월 전에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가장 저렴한 좌석을 예약하더라도 오페라를 감상하고 극장의 아름다운 내관과 이곳의 문화를 즐기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기간에 공연된 오페라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장미의 기사’다. 두 번의 중간 휴식시간까지 합하면 4시간이 넘는 공연이다. 빈 국립극장에서는 공연도 좋지만, 음악의 문외한인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휴식시간의 여흥도 흥미롭다.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층마다 있는 궁전처럼 아름다운 카페테리아에서 비싸지 않은 금액으로 와인을 비롯한 다양한 음료를 즐기며 대화를 나눈다. 음료를 주문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거나 앉은 자세로 사교를 나누는 다양한 관람객들과 함께 또 다른 빈의 문화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명화 전시장 같은 벨베데레

관람객이 벨베데레 궁전에 전시된 클림트의 ‘키스’를 감상하고 있다.
빈은 걷기에 좋은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관광지의 대부분이 링-슈트라세 안에 있어서 대부분이 걸어 20~30분에 도착한다. 원 안에 있지 않은 곳들 역시 그리 멀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벨베데레 궁전이다. 바로크 양식 건축의 진수라고 하는 벨베데레 궁전은 링-슈트라세를 살짝 벗어난 경계 지점 언저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은 합스부르크 가문은 아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에 헌신적이고 오스트리아 역사의 중요 인물이었던 사보이 출신의 오이겐 공의 여름 별장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왕족들을 위한 별궁으로 매입하면서 이름도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의 벨베데레가 되었다. 궁전은 상부와 하부의 두 건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시민의 산책 공간이 된 커다란 정원이 있다. 지금은 중세와 르네상스 작품들은 물론이고 ‘키스’를 비롯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주요 작품들과 에곤 쉴러와 피터 브뤼겔의 작품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몰려드는 관람객들로 매일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과 함께 벨베데레 궁전의 바로크식 아름다운 외관과 실내 장식을 다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종합 전시장인 셈이다.

■테레지아 여왕을 만나다

링-슈트라세를 벗어나 차로 20분 정도를 달리면 왕가의 여름 별장이자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진정으로 좋아했던 쇤브룬 궁전에 도착한다. 궁전 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방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이 여왕의 개인적인 방들이다. 공개된 방들의 화려함과 웅장함과는 달리, 작은 크기의 각기 다른 용도와 색채의 방에는 벽과 천장까지 온통 생생한 자연의 식물과 동물이 그려져 있다. 궁전이 아니라 밀림 속 자연 세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그녀가 화려한 궁전의 정원에서조차 완전한 평화를 누리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서 소박하기까지 한 이 방에 나무 풀 새 동물을 그려놓고 온전히 자신만의 안식과 위로를 찾으려 했던 것일까. 잠시나마 일상의 수없이 많고 복잡한 번뇌로부터 이탈과 휴식을 원했을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소박한 바람이 그 방에서 느껴졌다.

겨울철 유럽 여행의 묘미인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곳 궁전 앞 광장에서도 서 있다. 뜨거운 음료 한 잔을 손에 들고 궁전 뒤 정원까지 한 바퀴 둘러본다. 겨울이라 삭막하지만 초록의 계절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뱅쇼’ ‘글루바인’ ‘뮬즈와인’ 등으로 불리는 겨울철 최고 인기의 이 음료는 겨울 유럽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데, 갖가지 과일과 시나몬을 넣고 뜨겁게 끓인 와인이다.

빈 국립 오페라극장 외관.
■비극의 엘리자벳

쇤브룬 궁전에서 차로 7분 거리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은 뮤지컬 ‘레베카’를 초연한 극장이 있다. ‘레이먼드 극장’이다. 외관과 실내 모두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인다. ‘레베카’는 영국 소설 원작으로 2006년 빈에서 초연한 독일어로 된 뮤지컬이다.

오스트리아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뮤지컬은 역시 ‘엘리자벳’일 것이다. 세계적 제작자인 미하엘 쿤체에 의해 1992년 ‘테아터 안 데르 빈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인기를 이어가는 뮤지컬이다. 주인공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헝가리를 비롯한 이웃 나라 국민에게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합스부르크 가의 황후다. 사랑과 기대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지만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 다른 여인이 있음을 알고 스스로 거리를 둔 채 왕족으로서의 삶보다는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을 택했던 여인이다. 그러나 어린 딸의 죽음과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가장 비극적인 어머니이기도 했다. 여행 중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거리에서 최후를 맞이한 그녀의 죽음 역시 전혀 우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던 한 무명의 죽음이었다. 그래서일까. 빈은 한편으로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강인함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 여인이자 인간으로서의 엘리자벳을 더욱 가슴으로 공감하고 사랑하는 듯하다.

■견고한 벽 너머

빈은 한마디로 문화 예술의 보물 창고다. 걸음이 닿는 곳마다 보물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세련되고 깨끗하고 정돈이 잘 돼 있다. 하지만 전시관의 입장료가 다른 도시에 비해 비싸고 다른 물가도 비싸다. 한 마디로 외관도 음식도 아주 잘 차려 놓은 고급 레스토랑 같다. 보이는 모든 것이 화려하고 아름답고 귀하다. 미술 작품 역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음악 또한 문외한의 귀에도 차별화된 품격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요제프 황제가 링-슈트라세를 무너뜨림으로써 외형적 경계는 허물어졌지만 빈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견고한 벽이 존재하는 듯하다. 경제적인 격차에서 오는 신분의 벽 말이다. 빈에서 미술관을 관람하고 음악회나 오페라 뮤지컬을 즐기고 싶지만 소박한 여행객과 이곳 서민 역시 비싼 관람료와 물가에 자신의 지갑 안을 연신 들여다보며 내심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적어도 빈에서는 보아야 하고 가봐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과제 수행과도 같은 여행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겠다. 유명한 것들을 보는 것만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라면, 진심으로 보고 느끼고 배우게 만들 무언가를 찾아 빈의 거리를 걷는 것도 현명하겠다. 가령, 슈테판 성당 인근의 명품 거리에 세워져 있는 ‘페스트 조일레’를 바라보면서, 중세 흑사병을 겪었던 빈 시민의 처절한 몸부림과 그 가운데 어떻게 서로가 힘을 합쳐 죽음의 병으로부터 살아남았는가를 생각하며, 잠시 그 화려한 기념비 너머의 죽음·희생·희망을 사유해보는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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