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대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1925년)을 지낸 애국지사. 한글 전용을 주장한 교육자이자 언론인·학자였다. 1925년 11월 67세로 중국 상하이에서 영면해 그곳 만국공묘에 묻혔다가 1993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185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20대까지 성리학 유학 다산학 양명학을 익혔다. 개혁과 지행합일 사상을 닦았다. 24세 때 임오군란을 목격한 뒤 시무책을 국왕에게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7세에 향시에 특선으로 뽑혀 29~34세 능참봉을 지냈다. 40세에 독립협회 일을 보고 황성신문 주필로 글을 썼다. 42세엔 한성사범학교 교수를 지냈다. 1904년(46세)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뛰었다. 48세에 계몽단체인 서우학회를 만들어 야학 교사를 길러냈다. 51세에 대동교를 세웠다. 52세 때 최남선 등과 함께 조선광문회를 만들었다. 53세에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59세 때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고 임시정부 수립에 뛰어들었다.1924년 독립신문 사장으로 취임한 뒤 국무총리 겸 대통령 서리로 추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