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언론인. 1928년 일제에 체포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수감 중 57세인 1936년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충북 충주에 단재기념관·사당·묘소·동상이 있다.
1880년 충남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할아버지 밑에서 14세까지 자치통감과 사서삼경을 배웠다. 19세에 독립협회 일을 하다 감옥에 갔다. 22세 때 문동학교를 세워 애국 계몽에 나섰다.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된 후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에서 논설을 썼다. 1907년(28세) 김구 박은식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짰다. 29세 때 순 한글 잡지인 ‘가정잡지’를 펴냈다. 1910년 중국 칭다오로 건너가 망명한 뒤 블라디보스토크 만주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고구려 부여 유적을 찾았다. 1914년 만주에서 조선사를 쓰기 시작해 1922년 8년 만에 끝냈다. 1919년 임시정부 활동에 착수. 1928년(49세) 5월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위폐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돼 다롄 감옥에 갇혔다. 단재가 뤼순 감옥서 숨질 때 아무도 운명을 지켜보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