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60> 비글호 항해기-찰스 다윈(1809~1882)

20대 다윈 5년간의 전 세계 탐사기록…진화론의 토대 되다

  • 서부국 서평가
  •  |   입력 : 2023-02-23 19:16:39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22세에 英 측량선 ‘비글호’ 승선
- 호주·태평양·인도양 등 대장정
- 일거수일투족 꼼꼼히 관찰·기록
- 비망록 18권 등 많은 자료 모아

- 지구서 살아온 생물 역사 곳곳
- 화산·지진 등 여러 경험담 담겨
- ‘생물 스스로 발달’ 믿게 된 저자
- 20년 뒤 걸작 ‘종의 기원’ 집필

“호주여, 안녕! 너는 한창 크는 아이이고 분명히 언젠가는 남반구를 지배하는 왕자가 될 것이다. 사랑받을 정도로 무척 크고 야심만만하지만, 존경받을 만큼 위대하지는 않다. 난 슬퍼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면서 너의 해안을 떠난다.”
1834년 5월 말 마젤란 해협에 들어선 비글호를 파타고니아 원주민들이 배를 타고 나와 맞이하고 있다. 장신 종족인 이들은 비글호에 초대받았는데 물물 교환을 원했다.
1836년 3월 14일 호주 킹 조지 협만을 떠난 다윈, 그 소감을 일기에 이렇게 썼다. 27세 청년, 생각이 깊고 미래 보는 눈이 밝다. 그는 모국 영국이 개척한 호주가 넓은 땅을 가진 해양국으로서 상업과 무역을 일으켜 장차 남반구에서 강국이 되리라 내다봤다. 오늘날 호주는 다윈 예측대로다.

하지만 이 글은 다윈이 탄 비글호가 태평양을 건널 때 뱃전에 얌전하게 부딪히던 작은 파도 같다. 23년 후인 1859년 다윈이 일으킨 거대한 해일에 비하면. 그가 펴낸, 적자 생존한 생물이 진화한다는 걸작 ‘종의 기원’을 읽은 이들은 해일을 올라탄 듯 현기증을 느꼈다.

■ 청년 과학자 다윈의 탐사기

다윈은 사실 20년 전 비슷한 현기증을 일으켰다. 과학 탐사기로 유명한 ‘비글호 항해기’(1839년)를 펴냈을 때 그랬다. 이 고전에서 걸어 나온 ‘종의 기원’은 세상 사람들이 생물에 가진 통념을 바꾸어 버렸다. 그런 기념비적 성과를 이룬 여정, 청년 과학자가 흘린 땀과 눈물이 ‘비글호 항해기’에서 반짝인다.

이 과학서, 제국주의 시대를 미화한 그림자도 보인다. 비글호는 순수한 과학 탐사선이 아니라 영국 해군 소속(HMS) 측량선이었다. 그때만 해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해외에 식민지를 세우고 덩어리 부를 가져갔다. 그러자면 오대양 육대주 해안선과 항구, 주요 섬에 얽힌 정보는 필수. 세계를 지배하려는 열강 욕망이 비글호에 실렸다. 다윈은 그렇지 않았다.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무력을 경계하는 인도주의자였다.

비글호를 타기 전 다윈 상태는 별로였다. 명문 케임브리지대를 막 졸업했건만 진로가 안갯속이었다. 맥 빠졌던 그를 숨통 트게 해준 건 비글호 승선. 이 배는 1차 탐사(1826~1830년) 뒤 미진했던 남아메리카와 마젤란해협 일대 조사를 보강하려고 다시 돛을 올렸다. 길이 27m, 500t급 범선. 22세 다윈은 피츠로이 함장에게 말벗이 되고, 모든 여행 비용을 직접 내야 하는 비공식 박물학자였다.

1831년 12월 27일 비글호가 데번항을 떠났다. 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 타히티섬, 뉴질랜드와 호주, 인도양 킬링 군도와 모리셔스섬, 세인트 헬레나섬과 어센션섬을 찾았다. 인종 인문 탐사도 값졌다. 안데스산맥을 넘고 페루 리마를 봤다. 비글호와 함께 다윈은 1836년 10월 2일 영국으로 돌아왔다. 2, 3년간을 점쳤던 탐사 기한이 만 5년에서 두 달 25일이 모자랐으니 글자 그대로 대장정이었다.

방대한 자료가 쏟아졌다. 지리 지형 지질 광물 해양 대기 동식물 고고학 유물, 방문 지역 문화 풍속. 여기서 비망록 18권, 기록지 1700여 장, 알코올 표본 1500여 점, 마른 표본과 화석 3900여 점, 5년 치 일기를 얻었다. 탐사에서 돌아온 지 3년째인 1839년 5월 드디어 ‘비글호 항해기’가 나왔다.

그는 이 여행기를 쓰면서 생물은 스스로 발달할 수 있다(‘핀치새 부리 변화’)고 믿었다. 맬서스 ‘인구론’을 읽곤 “사람처럼 다른 생물도 힘이 약해 먹이를 못 구하면 멸종한다”는 학설을 굳혔다. 진화론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결정타는 생물학자인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다윈에게 보낸 편지. 그는 다윈과 의견이 같았다. 두 사람은 1558년 8월 린네 학회지 2권 9호에 논문으로 공동 발표한 후 이듬해 11월 다윈이 ‘종의 기원(자연선택에 따른 종의 기원에 관하여)’을 책으로 펴냈다. 초판 1250권이 발매한 당일에 죄 팔렸다. 그만큼 논란도 따랐다.

■ 이색 풍물과 알찬 해설

1835년 2월 20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칠레 콘셉시온 성당이 무참히 부서졌다. 다윈은 이 지진을 직접 겪고 피해 현장을 둘러봤다.
‘비글호 항해기’는 3판(1860년)이 가장 널리 읽힌다. 1832년 1월 6일 닿은 첫 기항지 생자고섬(케이프 데 베르데 제도)에 대한 기록이 1장, 마지막 21장은 1836년 10월 2일 아조레스 군도를 떠나 영국 플리머스항에 도착해 여행을 마무리하는 내용이다.

180여 년 전 쓴 여행기이지만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육지에 내린 다윈은 눈이 두 쌍이다. 호기심 넘치는 여행자이자 탐구심 끓는 과학자이니까. 이색 풍물에 독자는 빨려든다. 예나 지금이나 벼락 맞은 집을 본 이는 드물다. 다윈은 몬테비데오에 정박했을 때 그런 기회를 잡았다. 라플라타강 부근 민가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갔다. 벼락이 초인종 전선을 타고 거실 벽을 쳤다. 벽면 일부가 폭약이 터진 듯 부서졌고, 파편이 튀어 맞은편 벽을 거세게 때렸다. 이 대목은 어디서나 벼락은 어쨌든 피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3장 ‘말도나도’)

과학자로서 들려주는 해설이 알차다. 5장 ‘바이아블랑카’를 보자. “몸집이 큰 초식동물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우거진 큰 숲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먹을 식물이 빨리 자라는 게 더 필요하다는 부언. 숲이 울창하면 초식동물이 몸을 숨기기 쉬워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초식동물은 떼를 이루는바 반드시 숲이 필요한 건 아니다. 대형 초식동물은 되레 숲속에선 움직임이 느려져 먹잇감이 될 위험이 더 커진다. 생물이 지구에서 살아온 생생한 역사를 되새겼다.

북미 오지에서 다윈은 지질학자로서 소중한 체험을 한다. 14장 ‘칠로에섬과 콘셉시온:대지진’이다. 1835년 1월 19일, 칠레 칠로에섬에서 오소르노 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는 장면을 망원경으로 봤다. 다윈은 몰랐지만 이날 비슷한 시간대에 두 곳에서 화산이 불을 뿜었다. 서로 2700마일 떨어진 아콩카과 화산(아르헨티나)과 쿠세기나 화산이 연이어 터졌다. 2월 20일에는 발디비아 마을에서 2분간 지진을 겪었다. 가라앉는 얇은 얼음장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기분이었다고 썼다.

“큰 지진은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연상해온 것을 일시에 파괴한다. 단단함을 상징하는 땅이 우리 발아래에서 액체를 덮은 얇은 껍데기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몇 시간 전엔 없었던 이상한 불안감을 마음속에 심어 놓았다.” 3월 4일 콘셉시온과 탈카와노에 들러 대지진과 지진성 해일(쓰나미)이 일으킨 참상을 두 눈으로 봤다.

그 뒤로도 여러 번 지진을 다뤘다. 예를 들어 강진 때 방문이 닫힌 게 더 안전할까? 정반대다. 방문이 열렸으면 실내 인원이 재빨리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다. 문이 닫혔다면 지진 발생 후 문짝이 뒤틀려 문을 못 열어 건물에 갇혀 불상사를 당한다. (16장 ‘칠레 북부와 페루’)

외국 여행 중 경험한 포복절도한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한 추억. 아르헨티나 콜로라도강에 갔을 때 일이다. 암말 수백 마리가 귀를 곧추세우고 콧구멍을 물 위로 내놓은 채 일제히 강을 건넜다. “나는 지금껏 그 광경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암말들이 양서류 떼 같았기 때문이다. 암말에 대해 해박한 지식도 덧붙인다. “원정 군인들에게 암말 고기는 유용한 양식이지요. 암말 고기를 식량으로 쓰면 행군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집니다. 짐을 지지 않은 암말이 하루 100마일씩 며칠을 계속 달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4장 ‘네그로강에서 바이아블랑카까지’)

‘운칠기삼(運七技三, 7할은 운이고 나머지는 노력)’이란 말을 듣는다. 이 고전 속에선 못 이룬 자를 위로하거나, 패자가 자위할 때 쓰는 표현으로 읽힌다. 그 대신 ‘꺾이지 않고 이뤄내려는 마음’이란 문구가 떠오른다. 열정이 없으면 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서평가·세상관찰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세계 최대 규모 ‘아르떼뮤지엄’ 영도에 문 열었다
  2. 2“전기차 반등은 온다” 지역 부품업체 뚝심 경영
  3. 3지역 새마을금고 부실대출 의혹…檢, 1년 넘게 기소 저울질
  4. 4르노 그랑 콜레오스 3495만 원부터…내달 친환경 인증 뒤 9월 인도 시작
  5. 5반도체·자동차 ‘수출 쏠림’…부산기업 71% “올해 수출 약세”
  6. 6소설로 써내려간 사부곡…‘광기의 시대’ 부산을 투영하다
  7. 7“한국전쟁 후 가장 많은 이단·사이비 생겨난 부산…안전장치로 피해 막아야”
  8. 8종부세 수술로 세수타격 구·군 “지방소비세율 높여 보전을”
  9. 9[기고] 허치슨터미널, 우리나라 1호 기록에 도전하다
  10. 10해바라기와 함께 찰칵
  1. 1韓 ‘폭로전’사과에도 발칵 뒤집힌 與…‘자폭 전대’ 후폭풍
  2. 2과기부 장관 후보에 유상임 교수…민주평통 사무처장엔 태영호(종합)
  3. 3이재명 “전쟁 같은 정치서 역할할 것” 김두관 “李, 지선공천 위해 연임하나”
  4. 4채상병 1주기…與 “신속수사 촉구” vs 野 “특검법 꼭 관철”
  5. 5[속보] 군, 대북 확성기 가동…북 오물풍선 살포 맞대응
  6. 6“에어부산 분리매각, 합병에 악영향 없다” 법률 자문 나와
  7. 7우원식 “2026년 개헌 국민투표하자” 尹에 대화 제안
  8. 8이재성 '유튜브 소통' 변성완 '盧정신 계승' 최택용 '친명 띄우기' 박성현 '민생 우선'
  9. 9이승우 부산시의원 대표 발의 '이차전지 육성 조례안' 상임위 통과
  10. 10與 “입법 횡포” 野 “거부권 남발”…제헌절 ‘헌법파괴’ 공방
  1. 1“전기차 반등은 온다” 지역 부품업체 뚝심 경영
  2. 2르노 그랑 콜레오스 3495만 원부터…내달 친환경 인증 뒤 9월 인도 시작
  3. 3반도체·자동차 ‘수출 쏠림’…부산기업 71% “올해 수출 약세”
  4. 4청약통장 찬밥? 부산 가입자 급감
  5. 5“전기차 2~3년 내 수요 증가로 전환” 공격적 투자 지속키로
  6. 6전단지로 홍보, 쇼핑카트 기증…이마트도 전통시장 상생
  7. 7체코 뚫은 K-원전…동남권 원전 생태계 활력 기대감(종합)
  8. 8“부산라이즈센터, 지자체·대학·산업체 소통 최우선”
  9. 9부산시-KDB넥스트원 협업…스타트업 5곳 사업자금 지원
  10. 10원전산업 유럽 진출 교두보…일감부족 부울경 기자재 낙수효과 전망
  1. 1지역 새마을금고 부실대출 의혹…檢, 1년 넘게 기소 저울질
  2. 2종부세 수술로 세수타격 구·군 “지방소비세율 높여 보전을”
  3. 3부산 단설유치원 ‘저녁돌봄’ 전면도입
  4. 4해운대구서 사고 후 벤츠 두고 떠난 40대 자수
  5. 5오늘의 날씨- 2024년 7월 19일
  6. 6[속보]부산 해운대서 6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상가로 돌진
  7. 7음식 섭취 어려워 죽으로 연명…치아 치료비 절실
  8. 8[뭐라노-이거아나] 사이버렉카
  9. 9부산·울산·경남 늦은 오후까지 비…예상 강수량 30∼80㎜
  10. 10“동성부부 배우자도 건보 피부양자 등록” 대법, 권리 첫 인정
  1. 1동의대 문왕식 감독 부임 첫 해부터 헹가래
  2. 2허미미·김민종, 한국 유도 12년 만에 금 메친다
  3. 3“팬들은 프로다운 부산 아이파크를 원합니다”
  4. 4마산제일여고 이효송 국제 골프대회 우승
  5. 5파리 ‘완전히 개방된 대회’ 모토…40개국 경찰이 치안 유지
  6. 6손캡 “난 네 곁에 있어” 황희찬 응원
  7. 7투타서 훨훨 나는 승리 수호신…롯데 용병처럼
  8. 8음바페 8만 명 환호 받으며 레알 입단
  9. 9문체부 ‘홍 감독 선임’ 조사 예고…축구협회 반발
  10. 10결승 투런포 두란, MLB ‘별중의 별’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백행지원 일가지비(百行之源 一家之肥)
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명량 겪은 왜적 ‘조선수군 공포증’…인간 이순신은 후유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내공과 에너지가 만났다, 클래식기타-바이올린 매혹의 하모니
詩 ‘낙화’를 가곡으로…“부산표 음악콘텐츠 만들어 널리 알리고파”
리뷰 [전체보기]
오감이 압도되는 화려한 연출
이 뮤지컬 후회없이 즐기는 법? 눈치보지 말고 소리 질러!
문화현장 톡톡 [전체보기]
학생 발길 붙잡은 ‘등굣길 음악회’…일상에 스며든 리코더 선율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시로 깨닫는 사물 본연의 모습 外
동물과 교감하니 치유의 기적 外
방송단신 [전체보기]
9개 민방 합작 ‘핸드메이드…’, 한국PD대상 작품상 등 영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말 /최은지
봄비- 어머니 /권상원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돌풍’ 설경구
‘삼식이 삼촌’ 송강호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13년 만에 다시 작품으로 재회 ‘원더랜드’ 김태용·탕웨이 부부
‘범죄도시4’ 허명행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치솟는 제작비에 쪼그라든 편수…K-드라마 생태계 위기
올 여름 K-무비 7편 출격…‘인사이드 아웃2’ 독주 제동 걸까
일인칭 문화시점 [전체보기]
연극연출가 13인이 저마다 재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퍼펙트 데이즈’ 삶의 성실성에 깃든 영화의 존재론
음식·로맨스 뒤에 감춰뒀네, 가부장제를 겨눈 비수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4년 7월 18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4년 7월 17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영화 ‘이소룡-들 (ENTER THE CLONES OF BRUCE)’
뉴진스 하니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4년 7월 18일(음력 6월 13일)
오늘의 운세- 2024년 7월 17일(음력 6월 12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요즘 길가에 한창 피어 있는 나리꽃을 시로 읊은 조면호
세상살이 욕심 내지 말고 살라고 읊은 해원 선사의 시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