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구에서 핵심 개념은 경관입니다. 터의 무늬를 말합니다. 이것을 ‘터무니’라고 표현하는데 삶의 경관, 삶의 근거이죠. 이것이 장소에 대한 사랑(토포필리아·장소애)을 촉발합니다. 저로서는 지방 소멸 시대의 마지막 불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송희복(사진) 전 진주교대 교수가 쓴 책 ‘경남을 인문하다’(글과마음 펴냄)의 목차를 살폈다. ‘이토록 다채로울 수 있을까’ 하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587쪽의 두터운 분량에 글 28편이 실렸다.

‘지역문화의 꽃, 고려대장경, 천년의 역사’ ‘잘게 보는 역사, 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 ‘진주의 사상과 지리산의 사상-소설, 지역 역사, 이념의 갈등’ ‘술의 미시사 : 왜구와 소주’ ‘판소리의 변강쇠와, 오광대의 말뚝이-그로테스크 리얼리즘 미학’ ‘노래의 사회사 : 경남 지역의 민요’ ‘진주 춤의 두 명인에 대하여-최완지와 김수악’ ‘경남과 최치원 : 지금 왜 풍류인가’ ‘한글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김해의 인물들’ ‘예술의 고장 통영과, 예술가의 화양연화’ ‘이성자의 그림, 천문과 지리의 상징’ ‘김완규의 한국화 : 풍경과 시선’….

저자 송희복은 부산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진주교대에서 24년 동안 교수로 일하며 문학·영화·문화·인문 영역을 아우르는 책을 많이 펴냈다.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지역 또는 지역성에 관해 책을 쓰려면, 좋은 의미에서 ‘비교의 감각’은 중요하다. 해양문화가 왜 소중한지 알려면, 육지 문화가 어떤 건지 알아야 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저자는 경남의 안과 밖에서 경남을 두루 보고 사유할 자리에 오래 있었다.

저자는 “제목은 ‘경남을 인문하다’로 정했다. 이 문장은 탈문법적인 표현이지만, 독자에게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제목이라고 보았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글 한 편 한 편이 인상 깊다. 건조하고 영혼 없는 학술 글에 머물지 않고 숨결을 불어 넣어 ‘송희복 방식’으로 쓴 손끝이 느껴진다. ‘진주의 사상과 지리산의 사상’은 사상 또는 정신의 차원에서 지역을 통찰하는 진지한 시도를 보인다. 나림 이병주 작가의 ‘지리산’ ‘관부연락선’, 박경리 작가의 ‘토지’ 같은 문학작품이 이 글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진주의 사상이 거점의 사상이라면, 지리산의 사상은요, 장풍득수를 배경으로 하면서, 또 전체를 아우르거나 모든 것을 포괄하고 포용하면서 하나로 귀의하는 저 산천의 사상입니다.”(111쪽) “진주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물류와 유통의 거점이 되고, 또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도 모이거나 스쳐 지나가기 용이하답니다.”(102쪽) “거점이라고요? 활동이 근거가 되는 지점 말이에요. 진주의 사상은요, 군주를 위한 사상도 아니요, 백성을 위한 사상도 아닌 것입니다. 둘 중 하나가 선택되어야 하는 것의 사상입니다.”(101쪽)

최근 저자와 통화하면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글이 있는지 물어봤다. “책의 제4부 언어와 문학 편에 있는 ‘내가 추론하거나, 직관하는 경남 방언’에 정이 많이 간다”고 그는 답했다. “원고지 240매에 이르는 긴 글인데 내용을 풍성하게 담았고 부산 경남에서 자라고 살아온 저의 인생 경험이 반영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술의 미시사 : 왜구와 소주’는 술을 스토리텔링 소재로 삼았고, 제2부 연행과 예술에 실은 글 여러 편은 각별히 신경 써서 전개했다. 인문의 눈으로 경남을 조명하는 재미가 쏠쏠한 성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