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시대별로 ‘미(美)’에 대한 사람들의 기준은 다르지만,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이 존재해왔다.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는 피부뿐만 아니라 머리단장도 중요했는데, 지금처럼 다양한 모발 관리 제품이 나오기 전에는 오로지 빗질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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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각빗과 얼레빗. 부산박물관 제공 |
우리나라의 경우 고분벽화나 출토 유물을 통해 적어도 삼국시대부터는 머리를 빗고 단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교가 성행하였던 조선 시대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여 신체와 터럭,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 여겼다. 이러한 이유로 선조들은 머리단장을 중요시하여 매일 아침 한 올이라도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빗는 빗질로 일과를 시작하였다.
빗은 남녀노소가 모두 사용하는 기본 화장도구였다. ‘동의보감’에서는 머리를 건강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머리를 자주 빗으라고 권한다. 조선 후기 여성의 화장 문화를 다룬 가전체소설 ‘여용국전(女容國傳)’에서도 머리카락 관리에 사용된 얼레빗과 참빗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빗은 얼레빗 참빗 면빗 상투빗 등이 있는데, 머리를 빗는 부위와 방법에 따라 세분되어 있어 머리단장을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반달을 닮아 ‘월소(月梳)’라 불리는 얼레빗은 빗살이 성글어 머리카락을 대강 정리하는 용도로, 참빗은 촘촘한 빗살로 가지런히 가다듬는 용도로 가장 대표적인 빗이다. 빗은 머리를 빗는 용도 외에도 화려한 장식을 더해 여성의 뒷머리에 꽂는 장신구로 쓰이기도 했다. 또한 머릿니를 잡는 위생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빗의 형태는 대부분 반달형과 직사각형이며, 크기는 아주 작은 것부터 손바닥만 한 것까지 다양했다. 주로 나무로 만들었다. 대나무 소나무 등을 많이 썼다. 이 밖에도 대모(玳瑁·거북)나 상아와 뿔 등의 값비싼 재료로 만들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여기에 나전 은상감 화각(華角·쇠뿔을 재료로 쓰는 전통 공예) 기법으로 무늬를 넣어 화려함과 공예적 요소를 더하였는데, 주로 양반가나 궁중의 여인들이 사용했다. 이처럼 남녀노소 모두가 쓰는 필수품이었지만, 신분의 차이는 드러나기도 했다.
부산박물관에는 얼레빗 참빗 면빗 등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 화각으로 장식된 화각빗은 공예적 가치를 더욱 잘 보여준다. 화각은 재료가 귀하고 제작 과정이 까다로워 매우 귀한 공예품에 속한다. 특히 상류층 여성의 소품으로 많이 제작됐는데 화각빗도 그중 하나이다. 부산박물관에 소장된 화각빗에는 불로장생과 부를 의미하는 학과 소나무 작약 화문(花紋) 등이 그려져 있다. 우리 선조는 늘 곁에 두고 쓰는 흔한 물건에도 상징적인 문양을 그려 넣어 염원을 담았다.
머리모양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이제 이런 형태의 빗이 거의 쓰이지 않지만 흔한 빗 하나에도 실용성과 심미성, 건강을 생각하는 선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