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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10> 봄, 남해 섬의 별미 ‘쑥국’

주연 해쑥, 조연 도다리·바지락 … 봄 전령사들 맛의 앙상블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03-14 19:31:23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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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바람 맞은 진한 쑥 향 가득
- ‘의사 대신하는 풀’이라고 의초
- 남해안 문치가자미 잡히는 시기
- 쑥 넣고 된장 풀어 끓인 보양식
- 향토음식 넘어 대중적 맛 인기

- 3~4월 맛과 영양 최고인 바지락
- 초무침·젓갈로 먹어도 좋지만
- 담백 깔끔한 쑥국 매력 못 따라와

봄은 남쪽 멀리 섬에서부터 찾아온다. 따사로운 햇볕과 온화한 바람을 데리고 바다에서 봄이 육지를 향해 사뿐사뿐 걸어온다. 섬으로 온 봄은 섬의 땅을 밟고 바다에서 가져온 행장을 푼다. 겨울 물고기인 대구, 물메기는 깊은 바다로 돌려보내고 도다리, 숭어를 섬 연안에 풀어놓는다. 바지락도 갯벌에 넉넉하게 부려놓는다.
봄 향기 짙게 간직한 쑥을 아낌 없이 넣고 끓인 도다리쑥국에서 봄노래가 들린다.
■ 봄기운 쑥쑥 자랄 땐 쑥국

이즈음 남해의 섬에는 양지 녘 덤불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린 쑥이 머리를 내민다. 봄의 기척에 바닷바람 맞은 해쑥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육지 쑥보다 부드럽고 향이 은은한 섬 쑥이 ‘땅의 봄’을 알린다.

이렇게 우리네 봄은 남녘 섬에서부터 온다. 이즈음 남해의 섬사람들이 집집마다 일상으로 먹었던 첫봄 음식이 쑥국이었다. 지천에서 돋아나는 쑥으로 다양한 종류의 쑥국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의 기지개를 켜고 봄맞이를 했다.

예부터 쑥은 우리 민족이 즐겨 먹던 식재료이다. 봄날 양지바른 곳에는 어김없이 소복하게 자리 잡는 놈이 쑥이거니와 어디서든 쉬 구할 수 있고, 인체에도 다양한 약리작용을 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쑥은 ‘의사를 대신하는 풀’, 의초(醫草)라고 불리기도 했다.

통영 거제 여수를 비롯한 남해의 섬에서 바지락 도다리 등과 함께 끓여 먹는 쑥국은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풍미를 자아낸다. 향긋한 쑥 향과 함께 한 술만 떠도 입안에서 바다가 넘실넘실 출렁이는, 제철 음식이자 향토음식이다. 지역마다, 섬마다 조리법이 서로 다른데 주로 된장을 풀어 제철 해산물과 더불어 맑은장국 형태의 쑥국을 만들어 먹는다. 소금 간에 다시마나 무로 밑 국물을 잡아 깔끔하고 담백하게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 대표적인 쑥국이 ‘도다리쑥국’과 ‘바지락 쑥국’이다.

■ 봄! 도다리쑥국

도다리쑥국의 재료인 도다리는 봄이 오면서 서서히 맛이 드는 생선이다. 겨울에 산란하고 봄철에 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도다리는 바다의 봄을 제일 먼저 맛있게 알리는 생선이기도 하다. 그래서 ‘봄 도다리’를 봄 바다의 전령이라 했다.

도다리쑥국은 속이 한꺼번에 풀릴 만큼 시원한 국물 맛을 내면서도 쑥의 향기로움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생선국이다. 생선국의 깊은 맛과 쑥의 싱그러움이 떠먹으면 떠먹을수록 끝없이 우러나는 매력이 있다. 원래 도다리쑥국은 거제 통영 지역의 일반 가정집에서 즐겨 먹어 온 향토음식이었다. 봄부터 잡히기 시작하는 도다리와 들판에 지천인 쑥을 함께 넣고 집에서 끓여 가족과 함께 먹던 것이 그 시작이다. 이 도다리쑥국이 봄철 음식으로 널리 대중화하면서, 초봄에 잠시 나는 쑥을 중심으로 ‘초봄의 음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 도다리는 거들 뿐

봄 주전부리로 좋은 쑥전
사실 도다리쑥국은 도다리보다 쑥이 주인공이다. 도다리에 쑥을 넣어 먹는다는 것보다 쑥에 도다리를 곁들이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는 도다리쑥국의 주재료를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봄나물 중 제일 먼저 봄을 맞이하는 것이 쑥이다. 이 쑥이 겨우내 움츠렸던 섬사람들의 심신을 일깨운다. 그것도 섬 쑥, 해쑥이다. 해쑥은 언 땅 위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움을 띄운 강인한 식물이다.

도다리쑥국에 함께 들어가는 도다리는 겨울에 산란하고 이즈음에는 제 몸을 추스르는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이즈음 도다리는 회로 먹는 것보다 생선국으로 먹어야 맛있다. 게다가 이즈음 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생선은 ‘문치가자미’이다. 그나마 쑥이 나올 철에 쉬 잡히고 맛있는 어종이다. 원래 도다리는 주로 4~6월에 잡힌다. 어린 쑥과 도다리의 제철이 한 달여 틈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치가자미가 도다리쑥국의 도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통영 거제 지역에서는 이 문치가자미를 도다리로 통용하기도 한다.

■ 바지락이 꼼지락, 쑥국 타임!

보들보들한 바지락을 듬뿍 넣고 소금 간으로 시원하게 끓여낸 바지락쑥국.
또 다른 바다의 쑥국에는 ‘바지락 쑥국’이 있다. 바지락은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로 봄의 미각을 깨우는 봄의 식재료 중 하나이다. 국내 조개류 생산량의 상위를 차지하는 바지락은 그 개체 수가 많으면서도 갯벌 어디에서나 손쉽게 채취할 수가 있어 서민이 가장 손쉽게 조리해 먹는 식재료에 포함된다.

서남해안 갯벌이나 돌이 섞인 혼합 갯벌에서 주로 서식하는 바지락은 봄이 시작되는 3~4월에 그 맛과 영양이 가장 좋다. 그래서 도다리와 함께 봄 바다를 대표하는 재료로 손꼽히는 것이기도 하겠다. 소금 간으로 시원하게 끓인 바지락국은 술꾼들의 훌륭한 해장국이 되고, 죽이나 칼국수로 먹으면 봄철 보양식을 대신한다. 입맛 없을 때 봄 채소와 함께 조물조물 무쳐내는 바지락 초무침이나 짭조름한 바지락 젓갈 등도 밥도둑으로 한몫하는 음식들이다.

특히 섬에서는 봄날을 맞아 쑥과 함께 끓여 먹는 바지락 쑥국으로 봄의 풍미를 더 가깝게 느낀다. 바지락 쑥국을 보글보글 끓이다 보면 쑥 향기가 집안 가득하고, 구수한 집된장 육수에 감칠맛 좋은 바지락살이 어우러져 떠먹을수록 국물 맛이 흔쾌하다. 다사로운 볕 속에서 ‘봄의 밥상’을 제대로 받아보는 느낌이다.

■ 가덕도 가서 쑥국 맛보았네

가덕도에 다녀왔다. 진해만에서 나는 도다리로 도다리쑥국을 맛볼 요량이었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는 진해만에서 몸집을 키우는 문치가자미가 제철이다. 대항방파제 낚시꾼들에게도 심심찮게 잡혀 올라올 정도다. 대개 가덕도 도다리쑥국은 남해안보다 큰놈 도다리를 쓴다. 문치가자미를 큼지막하게 토막을 내어 국을 한소끔 끓인 뒤 은근한 불로 오래도록 뭉근하게 끓여낸다. 쑥도 어른 손으로 한 줌 가득 국 위에 올려 먹는다. 마치 해쑥의 부드러운 식감과 향을 먹기 위한 음식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다리쑥국은 생선의 진하고 고소한 맛으로 깊어질 대로 깊어진다. 마치 생선 곰탕 같은 맛이 난다. 이때 쑥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혹시나 있을 비린내나 느끼한 맛을 내내 은근하게 잡아준다. 봄철 보양식이 따로 없다. 이렇게 남해의 섬에서는 쑥이 날 때쯤이면, 집집이 일상으로 먹었던 음식이 제철 해산물 쑥국이다. 남해의 봄을 맞은 섬사람들의 첫 제철 음식이자 향토음식이다.

‘바다의 봄’이 ‘땅의 봄’과 만나, 바야흐로 ‘절정의 봄’으로 합일하는 시절. 남쪽 바다의 섬에서 즐겨 먹어왔던 섬사람 음식 ‘쑥국’. 이제는 통영 거제 등 남해 여러 도시를 대표하는 관광지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봄이면 꼭 먹어야 할 계절의 통과 음식이 되었다. 아무려나, 지역마다 제각각 끓여 먹던 조리법은 보존하고 고수하면서 오래오래 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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