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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화책에 푹 빠진 유럽…그림형제 순례길은 상상력이 꿈틀댄다

부산 아동문학가 5인 유럽 동화 세상 탐방기

  • 안덕자 작가
  •  |   입력 : 2023-03-20 19:32:34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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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주년 맞은 볼로냐아동도서전
- 각국 작가·출판사 등 한자리에
- 한국 부스 24곳엔 외국인 북적
- 4권 그림책 ‘라가치상’ 수상도

- 자유 찾아 떠난 ‘브레멘 음악대’
- 백설공주 살았던 바드빌둥겐 등
- 그림형제 동화 속 여러 장소들
- 독일 민족의 이야기·문화 품어

지난 5일 부산 아동문학가 5명이 ‘2023년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과 독일 그림형제 동화가도를 둘러보기 위해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안덕자 작가가 대표집필한 7박 9일 일정의 탐방기를 싣는다.
2023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현장. 전 세계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보내온 아동도서용 그림이 가득 붙어 있다. 안덕자 동화작가 제공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6일 아침, 이탈리아 볼로냐에 도착한 우리는 국제아동 도서전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한 볼로냐아동도서전은 코로나19로 침체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계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동도서, 멀티미디어 제품, 전 세계 출판사와 관계자, 저작권 에이전시가 참여한 거대한 북 페어였다. 전광판에는 한국 그림책 소개가 계속 흘러나왔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각국에서 온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높고 긴 벽에 자기 그림과 명함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는데 이 도서전의 명물이다.

지난해 이수지 작가가 안데르센상을 수상해서인지 올해는 한국 그림책과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 볼로냐 시내 서점에도 번역된 한국 그림책이 많이 진열돼 있었다. 24개 한국 부스에는 눈에 익은 한글판 책들이 진열돼 있었고 많은 외국인이 붐볐다. 이번에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 참여한 필자 그림책 ‘굿하는 날’을 낸 봄봄출판사 대표가 필자의 책이 유럽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며, 전시 사흘째 되는 날 프랑스 에이전시와 미팅이 잡혔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놀랐다. 그러나 미팅 당일, 전시해놓은 책을 누군가 훔쳐 가 버렸다. 당연히 미팅도 불발됐지만, 얼마나 좋았으면 훔쳐 갔을까 하고 훌훌 털어냈다. 유럽과 북미 아동도서의 제본·인쇄술 발전을 보며 ‘읽기 위한 책’이라는 관념을 넘어 현대과학과 작가의 창의력이 가미된 ‘예술작품의 책’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볼로냐아동도서전은 작가들의 문학적 교감보다는 정보를 교류하고 각국 에이전시들이 저작권을 팔고 사는 일의 비중이 큰 세계적인 도서 시장이었다. 우리 일행은 4권의 한국 그림책이 라가치상을 받았다는 기쁘고 부러운 뉴스를 접하며 늦은 밤, 독일의 ‘그림형제 동화가도’ 탐방을 위해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탔다.

■독일 동화가도를 걷다

독일 동화가도를 탐방하는 정영혜(왼쪽부터) 김현정 안덕자 허명남 조윤주 아동문학가. 안덕자 동화작가 제공
독일 동화가도는 그림 형제가 태어난 남쪽 하나우에서 출발해 북쪽 ‘브레멘 음악대’의 도시까지 여행하는 길이다. 모든 도시를 다 볼 수는 없지만 동화 전설 신화가 자리한 장소와 풍경을 볼 수 있어 기대가 컸다. 아름다운 중세도시 로텐부르그와 중세 건축의 강변도시 밤베르그 관광 후 다음날 독일 동화가도 출발지인 하나우로 갔다.

그림 형제는 분열된 독일민족의 문화를 잇기 위해 구전되던 옛날이야기를 채집하고 언어를 통일했다. 하나우 시청 앞 그림 형제 동상은 국민이 성금을 모아 세웠다고 한다. 곳곳에 있는 동화 속 주인공들을 찾는 기쁨을 누린 뒤 슈타이나우로 갔다. 그림 형제가 행복하게 성장기를 보낸 도시다. 영주의 성과 목조 건물이 살아있었다. ‘그림 형제의 집’에 들어서자 잔디밭에 황금 공을 안은 개구리 왕자와 공주가 맞이해 주었다. 마을광장 동화 분수나 건물 외벽에 그려진 동화 그림들에서 마을 전체가 그림 형제 기념관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 빨간 모자·백설공주 만나다

‘빨간 모자’의 도시 알스펠트로 갔다. 이곳의 작은 마을 슈발름 지역 전통의상이 빨간 모자가 달린 옷이라고 한다. 옛 시가는 어디를 둘러봐도 동화 속 그림을 펼쳐 놓은 듯했다. 두 개의 첨탑을 가진 목조 시청사는 1512년 지어졌다. 정성스럽게 마을을 손질하며 살아온 알스펠트 사람들의 정서를 느꼈다. 바드빌둥겐은 백설공주가 살았다는 프리드리히슈타인성이 있는 곳인데 높은 지대에 있다. 이곳 특산품이 크고 붉은 사과이다. 사과가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1200년께에는 이곳에 철과 구리 광산이 있었다고 한다. 일곱 난쟁이는 철과 구리광산에서 일한 어린 노동자를 연상해 볼 수 있게 했고 실제로 영주의 딸이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옛이야기는 그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다듬어 묶어 왔다. 이야기는 어제와 내일을 잇고 여럿을 하나로 묶는 끈인 셈이다.

■놀라운 그림 형제 박물관

카셀은 그림 형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사한 도시이다. 형제는 평생 이곳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함께 여행한 허명남 동화작가는 이렇게 들려줬다. “나의 첫 문학은 유년기에 아버지가 들려주신 우리 구전설화였어. 두 번째 문학은 책으로 읽은 그림동화 전집이었지. 우리 설화는 재미를 느끼며 상상력과 삶의 교훈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고, 그림 동화집은 어린 나에게 상상력 공간을 무한대로 건드려준 획기적인 사건이었어.” 이번 여행은 그에게 동화작가로서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 한다.

그림 형제 박물관은 그림 형제가 독일 문학의 밑바탕을 다진 카셀에 있어 의미가 깊다. 디지털 기술로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보도록 꾸몄다. 언어학·설화 연구자료, 도움 준 분들 전시공간, 동화적 상상력 공간, 그림 형제의 일상생활 유물 전시공간으로 돼 있다. 한 벽면에 전 세계 그림동화 번역 책이 전시돼 있었는데 우리나라 책도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이 재현되어 있었고 말하는 검은 모자에 대고 말을 하면 재미와 공포의 짜릿함을 맛보게 하는 대답을 했다.

■하멜른과 피리 부는 사나이

우리는 ‘쥐를 잡으러’ 하멜른으로 갔다. ‘피리 부는 사나이’ 테마거리 바닥에 드문드문 동판에 새긴 쥐들이 ‘돌아다녔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1284년 6월 26일, 아이 130명이 사라졌다는 기록에서 유래했다. 하멜른에는 고양이도 무서워할 만큼 쥐 떼가 들끓었는데 시장은 쥐를 없애주는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고 했다. 이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피리를 불어 쥐를 유인해 모두 강물에 빠뜨렸다. 쥐가 사라지자 시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나이를 내쫓았다. 화가 난 사나이가 또 피리를 불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사나이를 따라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지도자가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고하는 무서운 이야기다. 마르크트 광장 야외무대 벽에 크기가 다양한 종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축제 기간에는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종이 울린다. 그러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그 공연을 못 봐 아쉬웠다. 우리는 브레멘으로 출발했다.

■동물들은 왜 브레멘으로

브레멘에서 만난 ‘브레멘 음악대’ 조형물.
어린 시절 ‘브레멘 음악대’를 읽으며 이야기 속 동물들은 왜 브레멘으로 가고 싶어 했을까 궁금했다. 그때는 답을 알지 못했다. 궁금증은 먼 거리를 날아 브레멘에 와서야 비로소 풀렸다. 브레멘은 독일 북서부에 있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유명한 도시다. 이곳에 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레멘 시청사와 롤랜드 동상이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브레멘 음악대’ 조각상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다.

브레멘은 10세기 무렵부터 베저강을 통해 노르웨이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무역하면서 부를 쌓았다. 부를 바탕으로 여러 특권을 누렸는데, 특히 브레멘 시내의 재산권 보호와 브레멘으로 도망쳐 온 농노의 신변상 자유를 인정하는 특권이 중세 농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영주들에게 빼앗긴 경제·신분상 자유를 브레멘에서 찾고자 했다.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 중세 독일 속담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Stadtluft macht frei)’가 유래됐다고 한다. 동물들이 브레멘으로 가게 한 것은 자유를 갈망하던 독일 농노의 애환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집으로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북부 독일 3곳의 공항 폐쇄로 일정 일부를 취소했다. 우리는 날마다 1만 보 이상의 동화가도를 걸으며 작가로서 나태한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가슴에 채웠다. 우리 일행 5인은 볼로냐에서 세계의 아동문학 흐름을 느꼈고, 그림 형제의 위대한 삶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우리 아동문학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작품을 써야겠다는 의지도 새롭게 다졌다.

참여 작가 허명남 안덕자 조윤주 김현정 정영혜

대표 집필 안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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